음악실의 유령
원본 시나리오 http://posty.pe/fixoq9
KPC 마엘 르루
PC 루크 제너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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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무지하여 눈치 채지 못했을 뿐, 실은.
무언가 바뀌기 시작했던 그 날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를 것 하나 없던 오전이었음이라고.
그러니까… 환기를 위해 열어두었던 베란다 창문 너머로,
통상 '여름 냄새'로 취급되곤 하는 오존 냄새가 조금 짙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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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실의 유령
w.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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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아침
BGM: ♪ BGM
삐이이이익.
...
코드를 꽂아두었던 유리 티포트의 주둥이에서 수증기가 빠지는 소리가 납니다.
오전 댓바람부터 틀어두었던 뉴스의 주제가 전환된 것은 그 때였습니다.
루크는 티포트의 코드를 뽑으며 TV 속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한 달 전부터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전염성 질병」.
속보를 따로 다루기 위해서 신설 편성된 채널이네요.
식탁에 앉아 이른 아침을 해결하고 있으면, TV 속 아나운서의 표정은 짐짓 심각합니다.
편성된 채널의 인트로격인 멘트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본격적인 보도가 시작됩니다.
그러고보니,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은데 ...
문득 TV의 볼륨을 낮춰두었던 것이 떠오릅니다.
루크 제너시스:그러고보니... (뉴스 속보를 듣기 위해 리모컨을 찾아 TV 볼륨을 높입니다.)
관찰 롤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5/42/17 |
굴림: | 6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루크는 소파 팔걸이 아래 나동그라져 있는 리모콘을 발견합니다.
TV의 볼륨을 키우면, 보도의 내용이 선명하게 들려옵니다.
정형화된 톤의 아나운서 멘트가 마무리되면, 화면이 뒤바뀝니다.
블러 처리된 대형 병원들의 외관이 줄지어 화면에 등장합니다.
이번 전염병에 감염되면 체중이 급격히 감소하고 피부가 트는 등의 면역력 결핍 증상을 보이지만,
대표적인 증상은 '서서히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하다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 이라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지능 롤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0/40/16 |
굴림: | 2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루크는 전세계를 강타한 이번 유행성 전염병의 병명이 아직까지 공식 발표되지 않았음을 떠올립니다.
증상이라 부를 것도 각기 다 다른 것이어서, 그나마 공통적인 증세라고는 고열을 앓게 된다는 점 말고는 밝혀지지 않았다니까요.
환자들은 해열제 섭취시 효과를 보였지만 일시적인 호전세를 보인 뒤, 다시 펄펄 끓는 열병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항간에서는 유행성 독감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던데…. 참 기묘한 병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생각에 잠기다 보면, 식탁 위에 남겨진 아침 식사가 식어가고 있습니다.
등교하기 전에 든든히 먹어둬야겠죠. 미리 오늘의 날씨를 체크해 보는 것도 좋겠고요.
루크 제너시스:(폰으로 날씨 앱을 켜 오늘의 날씨를 확인하며 아침 식사가 더 식기 전에 입에 넣어 꼭꼭 씹어 삼킵니다.)
오늘의 날씨는...
아침 기온 26 ℃에 미세먼지 수치 11㎍/㎥입니다.
시간당 강수량은 0mm로, 오존 지수가 다른 날보다 조금 높기는 하지만...
아주 맑고 화창한 하루가 될 거예요.
베이컨을 마저 입 안에 밀어넣고 나면, 이젠 정말 나가야 할 시간입니다.
신발끈을 묶고 현관 앞의 거울을 확인하면, 가슴팍에 간신히 달려 있는 교복 명찰에 눈이 갑니다.
곧 떨어질 것처럼 덜렁거리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루크 제너시스:음... 이거, 다시 만질 시간이 없는데. (곰곰) 달리면 떨어지려나? (하교한 뒤 손을 보기로 하며 우선... 명찰을 떼어내 주머니에 넣어두곤 현관문 밖으로 나섭니다.)
루크는 떨어진 명찰을 주머니에 넣곤 문 밖으로 나섭니다.
평소처럼 버스를 타고 등교하거나, 아니면 기분 전환 삼아 걸어서 등교해도 여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루크 제너시스:(오늘 날씨가 맑고 화창하다고 하니까... 간만에 걸어서 등교해보기로 합니다.)
루크는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 늘 다니던 길목으로 걸음을 내딛습니다.
한참 학교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으면, 화창하고 잔잔한 풍의 피아노 협주곡이 들려옵니다.
길가의 가게에서 들려오는 음악일까요, 여유로운 마음에 살며시 눈을 감으면...
정신력 롤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60/30/12 |
굴림: | 92 |
판정결과: | 실패 |
맑은 하늘에 가벼운 공기.
한창 상쾌한 아침을 만끽하며 잠시나마 붕 떠있던 기분이 노골적으로 가라앉습니다.
왜일까요?
피아노를 그만둔 뒤로 건반에 더 손을 댄 적은 없어도 곡을 듣는 것까지 거북했던 적은 없는데….
평소에 다니지 않던 다른 샛길을 이용해서라도 노래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길로 등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SanC 0/1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60/30/12 |
굴림: | 24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이미 한 번 음악에 대한 의지를 저버린 탓인지, 청각과 마음이 예전같지 않습니다.
방금 느꼈던 메스꺼움도 그만둬버린 음악에 대한 내면의 적개심일까요.
...적개심이라기보다는, 약한 미련일지도 모릅니다.
평소와는 다른 길을 따라 조금 늦게 도착한 시멘트 길의 인도를 따르면,
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등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씁쓸한 입맛을 돋굽니다. 여름이니까요.
.
BGM: ♪ BGM
정문 통과는 여유롭게 세이프.
...사실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았습니다. 빙 둘러 오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한 셈이죠.
루크의 반인 3학년 A반으로 향해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서면...
조례 직전 출석이 막 진행되려던 참입니다.
선생님: ...지각은 아니네. 빨리빨리 앉아라.
C반 선생님의 불꽃 어린 눈빛이... ...잠깐만.
C반 선생님이요? 여긴 A반인데요.
그러고 보니, 자리 배치도 어제와 묘하게 다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루크가 멍하니 선 채로 있으면, 선생님이 도끼눈을 뜹니다.
한 소리 더 듣기 전에 얼른 비어있는 자리를 찾는 편이 좋겠네요.
루크 제너시스:(이게 무슨 일이야 오늘 만우절인가요?)(선생님을 향해 머쓱하게 한 번 웃어보이곤 눈대중으로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앉아봅니다.)
관찰 롤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5/42/17 |
굴림: | 9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급한대로 빈 책상에 앉아 책가방을 내려둔 뒤 교실을 쭉 둘러보면,
한달 전부터 시작된 유행성 질병으로 인해 텅텅 비어있던 열댓 개의 책걸상이...
모르는 아이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어 있었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이들은 분명 본 적 없거나… 아니면 복도에서 한 번쯤 보았던 얼굴입니다.
역시 반을 잘못 들어온걸까요?
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도 교탁 앞에 서있는 저 사람은...
평소에 벌점을 남용하기로 유명한 그 C반의 담임 선생님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A반 아이들의 모습 또한 가득 찬 교실 속 틈바구니에 끼어 있네요.
이게 무슨 일인지...
다시금 교탁으로 눈을 돌리면, 출석체크 진행이 한창입니다.
주위를 살피면, 같은 반 친구가 앞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아무래도 C반 아이들과 한데 섞여 있는 모양인데, 어떡할까요.
루크 제너시스:(뭐지... 애들이 너무 많이 빠져서 합반 수업하기로 했는데 내가 까먹은건가..?) (앞자리 친구 톡톡) 오늘...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아? (소곤)
행운 롤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40/20/8 |
굴림: | 67 |
판정결과: | 실패 |
선생님: 어이, 거기 너. 지방 방송 꺼라! 벌점 3점이야.
조례 시간부터 벌점 3점을 부여받았습니다. 앞으로의 수업이 걱정되는 순간이네요.
선생님이 다시 출석에 열중한 찰나,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고개를 반쯤 돌려 속닥입니다.
친구: 뭐가 이상해? 오늘부터 C반 애들이랑 합반 수업한다고 했잖아. 아침부터 책걸상 옮기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늦게 올 걸.
루크 제너시스:아하하... 그랬나? (내가 까먹은 거였구나... 그냥 가만히 있을걸 그랬어... 벌점 3점이라니... 선생님... 그리워요...) 대신 넌 벌점 없잖아. (더 입 열었다간 또 벌점 받을것 같아서 금방 입을 다문다.)
친구: 그건 네가 타이밍을 잘 못 맞춰서 그렇지. (작게 너스레를 떨곤) ...하아... 담임 선생님 그립다. 병가 내셨다잖아. 다시 돌아오실 때까지 C반 호랑이가 통합 담임 맡는댄다... 아무리 요즘 유행하는 병에 전염성이 없다곤 하지만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서 수업 듣는 건 좀 그렇지 않냐?
아침부터 있었던 책상과의 씨름으로 무척 고단해보이는 친구가 하품을 하는 찰나,
선생님: 조용히 하랬지! 너, 벌점 5점이야.
결국 친구도 벌점을 받고야 맙니다. 더욱 피로해 보이는 친구가 칠판 앞으로 고개를 돌리면...
관찰 롤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5/42/17 |
굴림: | 90 |
판정결과: | 실패 |
...휘익.
커튼 너머로 휘몰아치던 바람이 뺨을 긋고 지나갑니다.
어찌나 미지근하고 달짝지근한지 갈증이 다 날 정도네요.
루크를 포함한 모든 학생의 출석 체크를 마치면,
임시 통합 담임을 맡은 C반의 호랑이 선생이 교탁 위로 출석부를 탕탕, 두어번 두드립니다.
선생님: 아까도 말했지만, 뒤늦게 등교해 듣지 못한 사람이 있을테니 다시 한 번 공지한다.
갑작스럽겠지만 오늘부터 결석생 수가 많은 반을 임의로 묶어 합반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어... 그러니까. (머리카락을 긁적이다) A반이랑 C반은 선택 과목이 음악이라서 묶은 거다. B반이랑 D반은 선택 과목이 미술이니까 묶었고.
A반 선생님이 이번에 병가를 내게 되셔서, 오늘부터 내가 너희들의 임시 담임이다.
참고로, 우리 반은 지금부터 A-1반이다. 이상, 조례 끝. 다들 조용히 1교시 준비하도록.
성황리에 황당한 공지를 일단락한 선생님은 안내를 끝마친 직후 교실 앞문 너머로 사라집니다.
몇몇 아이들의 얼굴에 불만의 기색이 내비쳐지는 한편,
원래 알던 사이인지 옆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아이들도 눈에 띕니다.
바뀐 임시 시간표에 따르면 1교시는 수학이라고 하네요.
비어있던 자리가 마침 루크의 책상이었던 모양인지, 책상 서랍에 손을 넣어보면 루크의 이름이 적힌 교과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
`PM 12:40
점심시간 종료 20분 전.
BGM: ♪ BGM
여느 때처럼 따분한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한 뒤 교실로 돌아오면.
칠판 옆에 붙어 있는 임시 시간표가 보입니다.
5교시는 음악 수업이라고 하네요.
아니나 다를까, 교실 칠판에 노란색 분필로 작성된 커다란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5교시 음악이래~! 교과서 챙겨서 음악실로 이동할 것!'
음악 수업...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이동해야겠죠.
그러고 보니, 음악 교과서를 어디에 뒀던가요. 교실 사물함? 책상 서랍?
루크 제너시스:어디다 뒀더라? (으음... 우선 교실 사물함부터 살펴보기로 합니다.)
교실 사물함을 뒤적이면, 가지런히 정리된 교과서들 사이에 음악 책이 꽂혀 있습니다.
음악 교과서를 꺼내 들면, 어쩐지... 낯익지 못한 사용감입니다.
루크 제너시스:(내 교과서 맞나? 싶어서 적어둔 이름을 확인해봅니다. 사물함에 있는게 바뀌긴 어렵다지만 그래도...)
교과서를 뒤집어 살펴보면... 책 모서리에 낯선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동그랗고 살짝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3학년 C반 마엘 르루' 라고 적혀 있네요.
아침부터 합반 수업을 위해 교실 기물을 이리저리 옮겼다더니... 그 소란 틈에 교과서가 뒤섞였나 봅니다.
...마엘 르루?
들어본 적 없는 이름입니다.
오늘부터 전체 합반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으니, 이 교과서의 주인도 5교시에 음악실에 있겠죠.
가져다 줘도 괜찮겠지만... 그럼 루크의 교과서는 어디로 간 걸까요.
루크 제너시스:교과서가 바뀐것 같은데... 이렇게 바뀔수도 있나? (마지막으로 책상 서랍도 한 번 살펴봅니다.)
책상 서랍도, 가방 안도, 사물함도 다시 뒤져봤지만...
정작 루크의 음악 교과서의 행방은 묘연합니다.
시계를 보면 50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5층에 있는 음악실까지 서두르지 않으면 수업에 늦겠네요.
루크 제너시스:오늘따라 운이 정말 안 따라주네... (시계를 확인하곤 마엘의 교과서를 챙겨 다급하게 5층 음악실로 향합니다.)
3학년 A반은 3층, 음악실은 5층.
엘리베이터는 한 달 전에 고장난 뒤로 여지껏 수리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는 수 없이 계단으로 향하면, 종울림을 목전에 둔 시간이라 복도는 한적하기만 합니다.
주욱 시원하게 뻗은 복도 창 너머로 초록이 우거지고 청음이 기승을 부립니다.
여름이 불시에 목구멍에 들이닥친 듯한 기분.
그 막연함을 가르고 어디선가 나지막한 악기 소리가 들려옵니다.
BGM: ♪ BGM
듣기 롤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70/35/14 |
굴림: | 6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끊길듯 가냘픈 소리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연주를 재개합니다.
당연하게도 저 복도 끝에 자리하고 있는 음악실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어쩐지, 아침에 들었던 노랫소리와는 다르게 속이 메스껍거나 신경이 날카로워지지 않습니다.
흘러나오고 있는 피아노 소리가 꽤 좋아했던 작곡가의 곡을 연주해서일까요.
...
마치 태엽을 감듯 부드럽고 유연한 악상이 여운처럼 귓전을 맴돕니다.
흡사 굳어버린 고목나무처럼 못 박힌 듯 서서, 이어지는 곡조를 관청하다 보면…
꼭 본능처럼 되새겨지는 감상이랄 것이 남는 법입니다.
지능 롤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0/40/16 |
굴림: | 4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순간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곡의 완성도가 훌륭하기 때문일까요.
연주는 템포와 리듬감 할 것 없이, 악상의 표현이나 곡의 이해도 또한 뛰어난 편입니다.
이 피아노의 연주자는… 고등학생이 아니지 않을까요.
루크가 알기로는, 이 학교에 이만큼이나 피아노를 잘 치는 학생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먼저 도착한 음악 선생님일지도 모르겠죠.
루크 제너시스:(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연주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음악실 문을 열어봅니다. 합반 첫날이라고 이렇게 연주해주시는건가? 보통 음악 시간에 이런 연주 들을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루크가 조심스럽게 음악실의 문을 여는 그 순간,
BGM: ♪ BGM
점심을 해결하고 뒤늦게 몰려온 아이들이 루크의 등 뒤로 우르르 쏟아져 들어옵니다.
곧 음악실 안이 우글거리는 아이들로 가득 차고, 뒤늦게 피아노 단상 쪽을 살펴보면... 텅 비어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피아노 연주도 끊겨 있습니다.
학생 A: 근데 누가 피아노 연주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
학생 B: 그러게? ...아니면. 야, 너 그거 아냐? 이 학교 원래 음악실에 귀신 나온대.
학생 A: 뭔 헛소리야... 너 귀신 같은 거 믿냐?
학생 B: 너야말로 못 들었어? 요즘 애들 없는 시간에 음악실에서 피아노 연주 소리 난다는 거…
왜, 나 작년에 클래식 동아리에 아는 선배 있었잖아. 그 선배가 축제 기간에 밤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달밤에 피아노 소리가 나서 눈 딱 감고 음악실 문을 열어봤더니...!
학생 B: 아무도 없었다는 거야!
학생 A: 야, 그만 앉아. 재미없어. 벌건 대낮부터 웬 귀신 얘기야?
학생 B: 진짜라니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주위를 살피면, 아직 음악 선생님은 도착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럼 선생님도 아닌 모양인데, ...대체 누구였을까요.
그 전에 왜 이런 걸 신경쓰고 있는 건지... 정말 귀신이었을까?
...허튼 데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해도 조금씩 신경이 쓰입니다.
...
BGM: ♪ BGM
때마침 수업 종이 울립니다.
마흔 명에 육박하는 아이들이 왁자지껄 음악실을 서성이다 각자 자리를 찾아 착석합니다.
루크도 적당히 빈 자리에 몸을 앉히고 선생님을 기다리다 보면...
톡톡. 누군가 어깨를 두드립니다.
루크 제너시스:응? (나란히 사이좋게 벌점을 받았던 앞자리 친구인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곤 고개를 돌려 바라봅니다.)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하면... 처음 보는 아이입니다.
목을 살짝 덮는 길이의 붉은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묶은 소년이 회색빛 어린 눈동자로 루크를 바라봅니다.
셔츠를 풀어 헤친 옷차림새를 보면 꽤나 불량해 보입니다. 한쪽 귀엔 검은색 피어싱이 무려 하나, 둘, 셋...
피어싱의 개수를 헤아리고 있자니, 곧 소년은 루크의 옆에 털썩 앉고는 입을 엽니다.
마엘 르루:여기 자리 비었지? 그럼 내가 앉는다.
대답을 하기도 전에 루크의 옆자리를 꿰찬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도 전에 대뜸 책 한 권을 내밉니다.
마엘 르루:너, 루크 제너시스 맞지. 이거 네 책이야.
루크 제너시스:아, 아아. (당황스러운 얼굴로 내밀어진 책을 받아들곤 고개를 끄덕인다.) 맞긴 맞는데... 어떻게 알았어?
마엘 르루:내 책상 서랍에서 이 책이 나왔거든.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네가 루크 제너시스라더라. (심드렁한 얼굴로 대꾸하고는 턱을 굅니다)
턱을 괸 마엘의 손목에, 그 손목 둘레를 따라 채워진 손목시계의 테가 단정하게 빛을 반사합니다.
시중에 저런 디자인의 시계를 팔던가요. 꼭 처음 접해 생소한 이계의 보석처럼 느껴집니다.
문득 소년의 가슴팍에 붙어 있는 명찰에 시선이 갑니다.
광택 없이 매끈한 명찰 위로 새겨진 이름은... '마엘 르루'.
어디선가 본 이름 같은데요, 분명.
루크 제너시스:아, (명찰에 새겨진 이름을 보곤 밝게 화색을 띄며 웃어보이며 챙겨왔던 교과서를 건넵니다.) 이건 네 책이겠다. 내 사물함에 있더라고. 아무래도 합반하면서 이래저래 섞였나봐, 신기한 우연이네.
마엘 르루:...아. 내 책은 거기 있었어? ...고마워.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곤 책을 건네받습니다)
루크 제너시스:뭘 이런걸로. 네가 먼저 내 책 전해줬잖아. 난 너인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내가 더 고마워해야지. 아, 그럼 넌 C반인건가? ...지금은 A-1인가 뭔가하는 반이지만. (선생님들도 참 반 이름을 이상하게 지어놓으셨다니까. 작게 덧붙였다.)
마엘 르루:응. C반. ...귀찮게 됐어. (눈썹을 찡그리곤) 학교는 정말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니까.
대화를 이어가다보면, 어쩐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능 롤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0/40/16 |
굴림: | 22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문득 마엘에게서 건네 받은 자신의 음악 책 뒷면에 시선이 갑니다.
3-A, L.
그제서야, 자신의 교과서엔 이름 대신 이니셜만 적어두었단 사실이 떠오릅니다.
대체 어떻게 이 교과서가 자신의 것이란 걸 알고 있는 걸까요.
루크 제너시스:아, 그러고보니까... 교과서에 내 이름이 아니라 이니셜만 적혀있었을텐데. 친구가 교과서만 보고 나인줄 알았던거야? (문득 떠오르는 궁금증에 말을 건넵니다.)
마엘 르루:그건... ... (살짝 당황한 기색으로 열심히 눈동자를 굴리다, 곧 루크를 빤히 바라봅니다) ...그냥. 오래 전부터 널 알고 있었거든.
그 순간,
음악실의 문이 열리며 음악 선생님이 들어옵니다.
마엘은 어느새 몸을 돌린 채 턱을 괴고 칠판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잠시간의 의문만을 남긴 채, 대화는 흐지부지 종결됩니다.
.
PM 13:08
5교시 음악시간
BGM: ♪ BGM
음악 선생님: 자, 오늘 78p 바로크 시대 작곡가 파트 진도 나갈 차례지? 내가 알기로 A반 C반 진도가 비슷했거든? 모두 책 펼치자.
유럽 문명사에서 지칭되는 바로크 시대란 보통 17세기를 가리킨다는 거, 저번 시간에 먼저 이야기했었지? 17세기의 예술을 가리킨다고…
점심시간 종료 이후, 선생님이 음악실에 등판함과 동시에 수업이 시작됩니다.
점심 식사 직후인지라 어마어마한 식곤증이 밀려옵니다.
벌써부터 꾸벅꾸벅 조는 등 시동을 걸고 있는 아이들의 수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78p를 펼치기 위해 교과서 페이지를 넘기던 루크는… 어라?
60p 즈음에서 전에 본 적 없던 작곡가의 이름을 발견합니다.
소제목은... 'A에 대하여'.
원래 음악책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던가요? A라는 작곡가가 존재했던가요?
과거에 나름 피아노를 전공했던 자신이, 교과서에 실릴 만큼 이름난 작곡가를 모를리 없는데…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듭니다.
SanC 0/1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60/30/12 |
굴림: | 70 |
판정결과: | 실패 |
이성 -1
손 놓고 지내는 동안 머리가 굳어버린 건가, 의문이 듭니다.
교과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비교적 최근에 발견되었다는 A의 곡에 대한 기사 내용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관찰 혹은 자료조사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70/35/14 |
굴림: | 4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사 내용이 적힌 박스 하단에, 작은 글씨로 새겨진 메모가 보입니다.
실제로 <겨울이 흘린 눈물>의 원본을 보았다는 예술가의 증언에 따르면...
악보 <겨울이 흘린 눈물>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특이한 인장이 찍혀 있었다고 합니다.
형태가 무척 조악했으며 세월에 바래 누렇게 떠있었다고요.
달리 흥미로운 내용은 아닙니다. 아마 작곡가 A의 자필 사인이었겠죠.
지능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0/40/16 |
굴림: | 6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마침 몇년 전,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A에 대한 기사를 접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음악에 문외한인 인물도 단숨에 사로잡을 수 있을 만큼 매혹적인 악보였다는 뜬소문이 내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그의 존재를 거의 잊어버렸던 것도 무리는 아니죠.
그런데 그 악보가 도둑을 맞았었나 봅니다.
심지어 나머지 한 곡은 분실되었고요.
...
어쨌든, 도둑 엔딩이라니 별 대단한 내용도 아니네요.
악보 원본이 공개된 것도 아닌데... 별 게 다 교과서에 실린다는 느낌입니다.
그 두 곡을 제외하곤 여지껏 악보랄게 발견되지도 않았던 무명 작곡가가 어째서 교과서에 나왔는지 의문이 듭니다.
루크 제너시스:(내가 관심이 없던 작곡가라 다른... 뭔가가 더 있는건가? 그런데 교과서에도 별다른 말이 있는 것 같진 않은데.)(교과서만 괜히 팔랑거려봅니다.)
자료조사 롤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70/35/14 |
굴림: | 7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교과서를 팔랑거리다 보면, 추가적인 정보가 눈에 들어옵니다.
마지막으로 도둑맞은 악보를 목격했다던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알려지지 않은 환상곡 악보의 제목이... '여름'과 관련이 있었다고 하네요.
문득 옆자리를 보면, 팔짱을 낀 채 꾸벅꾸벅 졸던 마엘은 아예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버립니다.
말랑한 목덜미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에 시선이 갔다가도 쉬이 흩어집니다.
음악실의 에어컨이 고장난 걸까요... 너무... 덥습니다.
바깥에서는 매미가 울고 풀벌레가 나무를 깁니다.
방충망에 달라붙어 있던 나비 하나는, 창틀을 타고 오르다 이내 나뭇잎 너머로 자취를 감춥니다.
이 따사로운 더위에도 아랑곳않고, 여전히 수업을 계속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점차 희미해져만 갑니다.
...
종례, 방과 후
.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염증이 날 만큼 물러 터졌는데 시간은 너무나도 착실히 흐릅니다.
집에 갈 준비를 하며 가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선생님: 루크 제너시스.
담임 선생님이 갑작스레 루크의 이름을 부릅니다.
각자 떠들던 아이들의 시선이 루크의 자리에 고였다가도 빠르게 흩어집니다.
루크 제너시스:어, 넵? (무슨 일이신가 싶지만 호다닥 대답합니다.)
선생님: 아무래도 음악 선생님이 임시 출석부를 돌려놓는 걸 깜박하신 것 같은데...
여기 반장들이 전부 결석했네. 네가 음악실에 있는 출석부 교무실에 가져다 둬라. 그러고 나선 돌아가도 좋아.
왜 하필 전데요?
반문하고 싶지만 선생님은 루크의 책상 위에 음악실 열쇠를 내려두고,
종례 선언을 끝마친 뒤 교무실로 사라집니다.
하는 수 없이... 음악실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가야겠네요.
루크 제너시스:아침에 벌점 받았다고 시키시는건가... (벌점 생각에 드는 묘한 우울감을 떨치곤 음악실로 향합니다.)
마스터키를 들고 5층으로 향하면, 음악실의 방음 문이 좁은 틈을 벌리고 열려 있습니다.
그 사이로 오후 다섯 시의 비산하는 빛줄기가 묘연히 바닥을 적십니다.
누군가 음악실에 있는 걸까요?
마지막으로 음악실을 사용했던 다른 반의 주번이 잠그는 일을 깜빡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저런 가능성을 유추하고 있노라면...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작달만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곡은... 어쩐지 귀에 익은 곡입니다.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누구인지 모를 연주자의 손끝에 의거하여 피아노 독주가 막 시작되는 찰나입니다.
BGM: ♪ BGM
지능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0/40/16 |
굴림: | 32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부유하던 먼지와 공기가 미세한 파동이 되어 호수 밑바닥까지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부터였습니다.
종례를 할 때면 계단은 한적했고, 꽤 아득히 느껴지는 상층에서는...
늘 정체 모를 누군가의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상대는 어쩌면 오늘 음악 시간 시작 전, 문 너머에 있었던 그 사람일지도 모르죠.
루크 제너시스:(이번에는 웅성거릴 친구들도 없으니 다시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조용히 문을 열어 피아노 쪽을 바라봅니다.)
조용히 문을 열고 접어든 공간의 꼭 닫혀있던 커튼이 말갛게 걷힌 가운데,
잠시 눈 앞이 하얗게 정전합니다.
산발하는 태양 빛은 이따금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구석이 있습니다.
눈부신 빛에 적응한 시야 너머로 들어오는 것은 예의 그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
투명한 햇빛을 눈부시게 반사해 고아한 빛을 뿜는 악기 너머 건반을 다루고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오늘 음악 시간에 옆자리에 앉았던 C반의 마엘입니다.
막연히 듣기에도 굉장히 탁월한 실력입니다.
청명한 수풀이 푸르른 가운데 녹색으로 물든 빛이 등 뒤를 적시고 있습니다.
순간 넋이 나갈 뻔했습니다.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 당신이 그만 둔 피아노를 정성껏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당신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나요.
루크 제너시스:(조용히 숨을 죽인채 마엘의 연주를 감상합니다. 아무리 피아노를 그만두었다고 해도, 피아노가 싫어 그만둔 것은 아니기에.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채 울려퍼지는 악상을, 순간을 담아냅니다.) ...아,
마엘 르루:... (분명 인기척을 느꼈지만서도 제일 좋아하는 곡의 연주를 방해받고 싶지 않은 듯, 눈을 감고 건반에 손을 올려 연주를 이어나갑니다)
...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손가락이 건반에서 떨어져 나오면, 마엘은 곧 피아노 위에 세워두었던 녹음기의 정지 버튼을 누릅니다.
그리고 곧 녹음기를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고개를 돌려 루크와 눈을 마주합니다.
...
BGM: ♪ BGM
(To GM): 피아노 기능 + 26
마엘 르루:...여긴 왜 왔어?
루크 제너시스:그, 선생님이... 출석부 가져다두라고 심부름을 시키셨거든. (눈만 데구르르 굴리며 눈치를 보다가) 음악 시간 전에 피아노 치던것도 너야?
마엘 르루:아, 그래.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나 쭉 기지개를 펴고는) 응. 그거 나였어. (별다른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루크 제너시스:... (힐끔힐끔) 그래? 우리 학교에 이정도로 잘 치는 사람이 있다고 들어본 적이 없어서, 선생님인줄 알았는데. 너였구나... ...매번 이렇게 방과후에 와서 피아노 연주하는거야?
마엘 르루:응. 방과 후마다 연주하고 있었는데. ...너 피아노 치지? (대뜸 질문을 던집니다)
루크 제너시스:(앞으로 나도 방과후에 좀 남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날아온 질문에 퍼뜩 당황하지 않은척 대꾸한다.) 어,어어... 피아노 쳤지...? 지금은 관뒀지만 말야. (머쓱하게 웃어보인다.)
마엘 르루:...그래? 왜 관뒀는데? (마음에 안 드는 듯 팔짱을 끼곤 루크를 빤히 바라봅니다)
루크 제너시스:(나... 무슨 실수라도 한걸까? 그치만 뭔가 잘못한 기억은 없는데. 몰래 들어서 그런가?) 아하하. 너처럼 나보다 잘 치는 사람들도 많고, 여러가지로... 조금 문제가 있어서? 피아노 치는 것보다 잘하는 것도 찾아서 그래.
마엘 르루:문제가 있다고... (괜히 다시 중얼거리다) 뭐, 그래. 그 잘하는 걸, 피아노 연주보다 더 좋아하는 거지.
루크 제너시스:으응? 뭐, 꼭 그렇다 단정하긴 좀 그렇지만. 연주보다 싫어하는건 아니니까. (애매하게 말끝을 흐린다.)
마엘 르루:(한동안 루크를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숙여 피아노 옆에 내려둔 가방을 듭니다) 이제 돌아가는 거지? 나도 이제 집 갈 거니까. 같이 가자.
루크 제너시스:어? 응. (고개를 서둘러 끄덕인다.) 이 출석부만 교무실에 가져다두고. 애초에 이것 때문에 온거라서... (하하, 괜히 한번 웃고는 호다닥 출석부를 가지고 옵니다.)
뒤늦게 교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출석부를 가져오자, 마엘이 가방을 들고 다가옵니다.
마엘 르루:알았어. 그럼 교무실 들렀다 가면 되는 거지?
같이 교무실에 출석부를 반납한 뒤, 두 사람은 교문을 나섭니다.
어쩐지 집에 가는 길이 꽤나 비슷한 것 같네요.
가벼운 잡담을 나누다, 곧 마엘이 입을 엽니다.
마엘 르루:내일 조례 전 아침에 음악실로 와줄 수 있어?
루크 제너시스:내일 조례 시간 전에? (무슨 일인가 싶지만... 음악실이라면 혹시 피아노 연주 들려줄 생각인가? 그런거라면...) 조금 일찍 나오면 되는거니까. 좋아.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마엘 르루:...콩쿨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연주에 피드백을 듣고 싶어서. 7시에 오면 돼. (여전히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알 수 없는 뚱한 얼굴로 대답합니다)
루크 제너시스:아, 맞다. 콩쿨이 있겠구나. (그만둔지 얼마나 됐다고. 새삼스럽게 잊고 있던 사실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런거라면 내가 더 영광이지. 일찍 갈게. (뚱한 얼굴에도 그저 웃어보입니다.)
마엘 르루:근데, (잠시 걸음을 멈추곤 루크의 웃는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조금 문제가 있어서 피아노 그만뒀다고 했지. 그 문제가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 안 해줄 거야?
루크 제너시스:...어, 어어. 그, 내일... 네가 연주 잘하면 말해줄게...? (집안 사정이 조금 어려워져서? 이런 말하면 조금... 분위기 싸해지고 그렇지 않나... 혼자 눈치를 보다 대충 얼버무립니다.)
마엘 르루:(왠지 더 화난 눈썹처럼 보이는 인상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입니다) 알았어. 그럼 내일 봐.
그 말을 끝으로, 마엘은 루크에게 짧은 인사를 한 뒤 다른 골목길로 사라집니다.
내일은 늦잠자지 않도록 일찍 자야겠네요.
.
둘째날 아침
BGM: ♪ BGM
루크는 아침 일찍 눈을 뜹니다.
다행히 약속한 오전 7시까지는 여유롭습니다.
제대로 준비를 마친 뒤 집을 나서면, 등교하기에는 제법 이른 시간입니다.
나뭇잎 사이를 걸러 들어온 햇빛이 묘하게 어슴푸레하게 느껴지는 오전,
교실에 들어서면 공기는 제법 서늘하고... 묶어놓지 않은 커튼이 바람에 나부낍니다.
암막 커튼과 그 위에 이중으로 쳐놓은 쉬폰 커튼이 펄럭일 때마다,
텅 빈 사각형의 교실 위로 유령의 몸짓같은 그림자가 일렁이길 반복합니다.
...
오늘은 내가 가장 빨리 등교한 건가?
그런 생각과 함께 책가방을 내려놓고 교실을 둘러보면...
텅 빈 서른 대여섯 개의 책상 중 유일하게 책가방이 올라와 있는 책상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루크 제너시스:(어... 저기가 마엘 책상인가?)
무심코 그 책상으로 다가가면,
눈에 익은 책가방이 올려진 나무로 만들어진 책걸상 모서리에 임시 시간표가 붙어 있습니다.
왼쪽 상단에는 반과 번호를 묶어놓은 학번과 자리 주인의 이름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네요.
...'마엘 르루'. 역시나, 마엘의 자리였던 모양입니다.
루크 제너시스:(책가방... 슬쩍... 진짜 슬쩍 봐요)
책가방으로 시선을 돌리면, 내려 놓은 직후 무언가를 꺼내 갔는지 가방 지퍼가 대놓고 열려 있습니다.
가볍게 살피면 눈에 띄는 것은 평범합니다.
네다섯권 정도의 얇은 악보집들과 필기 노트, 교과서 몇 권, 필통 따위의 학용품들...
관찰 롤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5/42/17 |
굴림: | 89 |
판정결과: | 실패 |
가방 안에 켜켜이 쌓여 있는 악보집들 사이로, 표지가 누렇게 떠있는 악보집 하나가 보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악보집을 꺼내면, 꽤 오래 되었는지 표지만 들여다보아도 꼬질꼬질하고 기스가 잔뜩 나 있습니다.
루크 제너시스:어... 되게 열심히 치는 악보인가. (콩쿨 예정곡? 근데 왜 안들고 갔지? 의문만 품은채로 음악실로 향합니다.)
루크는 악보집을 든 채로 약속 시간에 맞춰 음악실로 향합니다.
...
오전의 음악실
BGM: ♪ BGM
마치 그 누구도 손대지 않은 것처럼 음악실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귀를 기울여보지만... 오늘은 이 너머에서 달리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지는 않네요.
문고리를 잡아 돌리면, 부드럽게 문이 열립니다.
음악실로 들어서자 어제와 같이 환하고 눈부신 여름의 햇살이 루크의 전신을 덮칩니다.
이름난 과거 음악가들의 초상화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방음벽 어귀에 붙어 있고,
교탁 너머의 칠판에는 분필 가루가 얕게 묻어나긴 했으나 그 나름대로 깨끗하고 푸르기만 합니다.
오래된 악기만이 머금은 특유의 냄새는 익숙한 종류여서,
늘 이 냄새를 기억하고 있던 심장만이 조용히 두방망이질 칩니다.
창틀 너머로 풀잎의 싱그럽고도 비릿한 향기를 머금은 바람이 콧잔등을 건드리면.
그제서야 정신이 듭니다.
그 단정하고 고요한 음악실 가운데 그랜드피아노 앞에는...
약속처럼 마엘이 앉아 있습니다.
마엘은 뚜껑이 닫힌 피아노에 팔꿈치를 기댄 채, 눈가를 짚고 있습니다.
루크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어떤 인사도 건네오지 않습니다.
그는 몸이 좋지 않은 듯 창백한 안색으로, 무언가 중얼거리는 듯 입술을 달싹입니다.
그 안색은 비단 오전의 하얀 백색광선 탓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To GM): 0
루크 제너시스:(으음... 어디 아픈가? 안그래도 열병 때문에 합반까지 할 지경인데.) 저기, 마엘? (조심스레 다가가 어깨를 툭툭 건들여봅니다.)
마엘의 어깨를 건드리면, ...꽤나 뜨거운 열기가 손가락 끝을 타고 흐릅니다.
체온이 상당히 뜨거운 것 같네요.
마엘은 그제서야 루크의 기척을 눈치 챘는지, 눈을 크게 뜨고는 고개를 듭니다.
마엘 르루:왔어? 미안. ...잠깐 생각 좀 하느라. (눈가를 두어 번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곤 뗍니다)
루크 제너시스:아니, 마엘... 생각하는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걱정되는 듯 눈쌀을 찌푸립니다.) 콩쿨이 앞인데, 일단 몸부터 챙겨야지.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 단순한 감기가 아니라 그 열병이면 어떡하려고 그래? 보건실부터 가는게... (아직 보건실이 열려있지 않을 것 같긴 한데. 걱정이네.)
마엘 르루:열병? ...그런 거 아냐. 그냥 요즘 연습을 많이 했더니 피곤해졌어. 그것보다, 아직 콩쿨에서 무슨 곡을 연주할지 고민 중인데. 여기서 좋아하는 곡 있어? (분철해 둔 파일에서 악보를 몇 장 넘겨 보여줍니다) 베토벤 템페스트도 나쁘지 않고, 드뷔시의 Clair le Lune이라던가. ...아니면 브람스는 어때. 피아노 소품곡에 괜찮은 곡들이 있었어. (곁눈질로 루크의 반응을 살핍니다)
루크 제너시스:...그래? 아니라면야 다행이지만. (그래도 피곤할 것 같은데. 작게 말을 덧붙이곤 넘겨받은 악보를 살핍니다.) 템페스트랑 Clair le Lune... 소나타 좋아해? 너라면 뭐든 잘 칠 것 같지만, 쇼팽도 잘 어울려. 전에 치던 곡이 쇼팽 곡 아니었던가? (가물가물) ...브람스, 아. 헝가리 무곡 5번도 괜찮긴 하지. (간만에 피아노 악보를 들고 떠드는 것이 신나는 모양인지 조금 들뜬 어조.)
마엘 르루:... (쇼팽 얘기를 꺼내자 잠시 움찔하고는) ...헝가리 무곡 5번? 유명해서 더 나쁘지 않네. (잠시 파일철을 뒤적입니다) 곡조가 자유분방해서 연주의 템포도 내 취향껏 조절할 수 있을 것 같고. 그걸로 할까...
행운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40/20/8 |
굴림: | 5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마엘 르루:
기준치: | 50/25/10 |
굴림: | 7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1D2 롤
루크 제너시스:2
마엘 르루:2
콩쿨 연주곡의 선정으로 들떠 있던 분위기에,
파일철을 뒤적이던 마엘이 실수로 피아노 뒤편의 간이 책상을 팔꿈치로 건드립니다.
덜컹!
일말의 소음과 함께, 간이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악보집들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섞입니다.
마엘 르루:...아. 젠장. 귀찮게...
책상 위에 쌓여 있던 내용물이 바닥에 쏟아지면, 마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흩어진 악보집들을 주섬주섬 줍기 시작합니다.
낱장의 악보가 발치에 채입니다.
바닥에 엉망으로 흩어진 내용물들을 언뜻 보면, 마엘이 보여준 악보를 제외하고서도 그 수가 꽤 많았네요.
훑어보면 마엘의 이름이 적혀있는 책도 눈에 들어오지만...
구매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포장조차 뜯지 않은 악보집도 더러 보입니다.
루크 제너시스:(이거다.. 후보곡들이었나? 주섬주섬 악보집과 악보들을 주워듭니다.)
관찰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5/42/17 |
굴림: | 36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건...
그 틈에 거꾸로 뒤집혀 있던 낡은 악보집 한 권입니다.
마엘의 책가방에서 발견해 들고 온 악보집처럼, 여기저기 낡아 있고 기스가 나 있는 듯 합니다.
뒤집혀 있던 탓에 곡명을 읽지는 못했지만...
아주 찰나의 순간, 악보집의 어귀에 자리한.
은은하게 빛나는 모양새가 특이한 문양을 발견합니다.
일견 누군가의 자필 사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손을 뻗으면, 마엘이 잽싸게 낡은 악보집을 주워 정리합니다.
(To GM): 이성 판정 0
(To GM): 이성 - 3
루크 제너시스:어... 그것도 콩쿨 예비곡 같은거 아니야? (불현듯 생각이 나 교실에서 챙겨왔던 낡은 악보집을 꺼내 마엘에게 건넵니다.) 이건, 교실에 두고 왔길래. 아까 그 악보랑 비슷한 것 같던데, 좀 낡은걸 보면 많이 연습했던 곡이야?
마엘 르루:콩쿨 예비곡은 아니고... 그냥 내가 연주할 수 없는 곡이야. 연주해서도 안 되는 곡이고.
...?! 그걸 네가 왜 가지고 있어?! (깜짝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곤 루크가 건넨 악보집을 낚아챕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루크 제너시스:세상에 그런 곡은 없을텐데... 무슨 곡이길래 그래? (피아노를 관둔 사람이 할 말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음... 재능 낭비는 슬프니까.)
(그래... 사실 이걸 내가 들고오면 안되는거긴 한데.)(눈만 데굴데굴 굴리다가 허망하게 악보집을 내주며...) 아니, 그래도.
마엘 르루:연주를 못한다는 건, 있잖아, 그... (잠시 눈동자를 굴리다) 그렇지. <엘리제를 위하여>에 얽힌 괴담 같은 거. 아무도 없는 음악실에서 연주되는 <엘리제를 위하여>를 네 번 연속으로 들으면 죽는다던지... 뭐, 그런 거야.
악보 정리가 끝나면, 마엘은 피아노 의자 아래 수납공간에 정리한 악보집을 넣어둡니다.
관찰 롤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5/42/17 |
굴림: | 7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언뜻 보면, 방금 루크가 마엘에게 건네준 악보집은 수납공간에 넣어 두지 않은 채입니다.
표지에 무언가 자필로 적혀 있는 것 같은데...곡의 이름일까요.
교육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70/35/14 |
굴림: | 4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곡명은... <여름의 유령>이네요.
정신력 롤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60/30/12 |
굴림: | 94 |
판정결과: | 실패 |
...그런데, 어라?
이 장면...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뜬금없이 데자뷰? 물론 데자뷰는 본래 뜬금없는 현상이긴 하지만...
마엘 르루:거기 멀뚱히 서서 뭐 하는 거야. (어느새 피아노 의자에 앉은 채로 루크를 바라봅니다)
루크 제너시스:으응? (멍하니 눈만 깜빡이다 고개를 돌려 마엘과 시선을 마주합니다.) 아니, 뭔가 익숙하다 싶어서... 그보다, 괴담 같은거 믿는 타입이었어? 의외네.
마엘 르루:... ...괴담... 이겠지. (어딘지 으스스한 얼굴로 고개를 젓습니다) 악보는 다 외웠으니까, 이제 연주할게.
마엘은 주머니에서 어제 봤던 녹음기를 꺼내 버튼을 누른 뒤 피아노 위에 올려놓습니다.
...
BGM: ♪ BGM
여지껏 들어 본 적 없는 템포의 피아노 연주.
건반 위를 훑는 마엘의 손가락이 감미로운 음색을 연주합니다.
장난스러운 듯이 스타카토를 넣다가도, 어느새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잔잔한 곡조를 자아냅니다.
마엘은 연주에 집중한 듯 때때로 눈을 감습니다.
피아노 소리 말고는 아무 것도 흘러넘치지 않는 음악실 안.
...
연주를 끝마치면, 힘겹게 팔을 뻗은 마엘이 녹음기의 정지 버튼을 누릅니다.
(To GM): 피아노 기능 + 23
어쩐지 처음 봤을 때보다 마엘의 상태가 더 나빠 보입니다.
루크 제너시스:(언젠가 그만두었던 피아노, 이번에는 반대로 '언젠가 시작했던 피아노'에 대해 떠올립니다.
새로운 시도에 기뻤거나, 벅찼거나, 혹은 자신만만했을 지도 모를 과거를.
막연한 감상은 그곳에서 흩어집니다.
세상에 용기만큼이나 덧없는 기개가 또 있을까요.
여전히 피아노를 연주하는 건 썩 내키지 않습니다.)
(From 루크 제너시스): ??? 판정 1
마엘 르루:어땠어? ...좀 바보같은 표정인데. (녹음기를 주머니에 집어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루크 제너시스:바보같다니... 너무하네. (표정을 정리하듯 제 얼굴을 한번 쓸어내립니다.) 응, 네 연주는 최고였어. 내가 들어본 것 중에서 제일 좋았다고 하면 믿어줄래? (점짓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그건 그렇지만... 어째 많이 아파보이는데. 진짜 괜찮아, 마엘?
마엘 르루:그래? 네가 좋아하는 작곡가라서 그런 거 아냐? (칭찬에 희미하게 웃고는 금세 고개를 돌립니다) 글쎄...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은데. (활짝 열린 커튼에 다가가 커튼을 칩니다)
루크 제너시스:부정할 순 없지만.. 그걸 제외해도 완벽했어. (내가 다시 연주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뒷말은 조용이 삼킵니다.) 으음... 곧 휘청거릴지도 모른다는 소리 아니야? 조례 끝나면 보건실 가봐. (가만히 마엘을 바라봅니다.)
마엘 르루:알았어. ...이제 가자. (딱 봐도 성의없게 대꾸하고는, 루크가 건네줬던 낡은 악보집을 품에 안고 바깥으로 향하다 발걸음을 멈춥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해가 지고 나서 학교의 음악실에 들어오면 안 돼.
음악실에 귀신이 나오거든. 괴담 아니야. ...마주치면 큰일 날 걸. (다시 음악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섭니다)
루크 제너시스:엘리제를 위하여도 그렇고... 의외로 괴담같은거에 약하구나. (딱히 믿는 눈치는 아닌지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여름이니까 해는 긴 걸. 그 때까지 학교에 있을 리는 없을테니까... (근데 이런 말하면 꼭 갈 일이 생기던데. 작게 흥얼거리며 마엘을 따라 음악실 밖으로 나섭니다.)
정신력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60/30/12 |
굴림: | 2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마엘 르루:괴담 아니거든.
자존심이 상한 듯한 마엘이 음악실의 문을 잠그며 퉁명스럽게 대꾸합니다.
이제 조례 시간이 다 되었네요. ...교실로 돌아갈까요.
.
5교시 과학시간
BGM: ♪ BGM
점심 시간이 종료되고, 또 다시 식곤증이 학생들의 수면욕을 지배하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오후 1시 20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은 5교시. 물리 시간입니다.
해가 중천에 떠있고 불어오는 바람의 빛은 투명합니다.
미지근한 공기가 뺨을 건드릴 때마다 어떻게 된 게 졸음만 쏟아집니다.
선생님: 아... 그러니까, 거시 세계를 다루는 이론을 뭐라고 한다? 그렇지. 시간의 상대성 이론이라고 한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관찰자나 광원의 속도에 관계 없이 진행중인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고 설명 해줬었지?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속도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어이, 거기. 왜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어?
적어도 강한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한다는 이야기는 기억하고 있겠지? 시험 문제라고 그렇게 강조했는데.
블랙홀은 시공간에 구멍을 뚫는다고 별표까지 달아줬을 거야. 교과서 확인해 봐.
졸린 눈으로 주변을 살피면, 이미 학생들의 반절은 깊은 졸음에 빠져든 것 같습니다.
선생님: ...다들 졸고 있는 것 같으니 잠깐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볼까?
다들 어렸을 적에 시간 여행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 있지?
실제로 과거로의 시간여행의 경우 광속에 가까워질 수록 시간이 느려지니까, 아...그러니까. 빛보다 빨리 나아가면 시간이 거꾸로 흐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해.
하지만 빛보다 빠른 물질이 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지. 2011년에 유럽 입자물리 연구소 CERN에서 초광속입자 해프닝이 있기도 했는데, ...여기서 따로 설명하긴 귀찮으니 궁금한 녀석은 학교 끝나고 찾아보도록 해라.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했는데... 잠을 불러오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 공부를 제대로 한 녀석들은 알겠지만, 시간과 공간이 속도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빛보다 빠르게 나아갈 경우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게 아니라 허수의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즉,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을 위해선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소리지. 우주 끈이나 웜홀을 사용한다거나.
하지만 웜홀이 그저 가상의 이론 상태일 뿐인 지금, 시간여행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
어딘가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미지의 구멍이 생겨나지 않는 이상 말이야.
자, 그럼... 과연 미래에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할까? 그럼 미래에서 건너온 사람은 과거의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교탁을 책으로 두어 번 칩니다)
...
선생님은 질문을 던지는 것을 끝으로 샛길로 빠졌던 수업을 재개합니다.
선생님: 다음 시간까지 시간여행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해 제출하도록. 숙제다!
뒤늦게 파격적인 숙제의 내용을 공개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꾸벅꾸벅 졸던 학생들이 잠에서 깨어나 작게 야유합니다.
정신력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60/30/12 |
굴림: | 66 |
판정결과: | 실패 |
선생님: 거기, 루크 제너시스! 합반 시작하는 날부터 늦게 오더니... 이번엔 또 조는 거냐? 벌점 2점.
아니, 다른 애들도 전부 다시 졸기 시작했는데... 왜 나만?
억울함이 고개를 치켜드는 그 때 ...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는 마엘이 눈에 들어옵니다.
열은 조금 내린 걸까요.
1D2 롤
루크 제너시스:1
얼마 있지 않아 옆 분단에 있던 마엘이 선생님의 눈치를 보더니,
슬쩍 루크의 교과서 위에 뜯어진 메모 조각을 올려놓습니다.
제자리로 돌아간 마엘은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칠판 쪽을 응시합니다.
루크 제너시스:(또 벌점이라뇨... 물론 졸긴 졸았지만...)(속으로 투덜거리다가 교과서 위에 놓여진 메모를 펼쳐봅니다.)
책 위에 놓인 메모지 조각으로 시선을 내리면,
...아무래도 방과 후에 시간을 내 달라는 것 같네요.
관찰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5/42/17 |
굴림: | 3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쪽지의 귀퉁이가 다소 엉성하게 찢겨 나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 들킬까봐 어지간히도 급했던 모양이네요.
쪽지에 답을 해 줄까요, 아니면 이 지루한 수업이 끝나면 말을 걸까요?
루크 제너시스:(으음... 이왕 쪽지가 왔으니 쪽지로 답해봅시다.)(방과후에 딱히 들릴 곳은 없으니까 괜찮긴한데... 어디 가려고?)
민첩 혹은 은밀행동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55/27/11 |
굴림: | 78 |
판정결과: | 실패 |
선생님: 루크 제너시스... 수업시간에 쪽지나 주고받고 뭐 하는 거야? 연애질은 하교 후에나 해. 벌점 2점 추가.
억울한 벌점은 받았지만... 쪽지는 무사히 마엘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선생님: 아... 그러니까. 이 부분은 무조건 시험에 나오니까 꼭 암기하고...
선생님이 다시 칠판으로 고개를 돌린 틈을 타, 마엘이 잽싸게 답을 적은 쪽지를 루크의 책상 위에 올려둡니다.
[ 시내로 갈 거야. ]
짧고 굵은 내용이네요.
다시 고개를 들면, 이 쪽을 바라보고 있던 마엘과 눈이 마주칩니다.
마엘은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고개를 돌리고는 창 밖을 보는 듯 턱을 괴어버립니다.
... 지금은 이 기나긴 수업시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네요.
...
방과 후
BGM: ♪ BGM
방과 후, 두 사람은 함께 하교길에 접어듭니다.
해 지는 속도가 느린 여름인지라, 오후 다섯 시가 넘어가는 이릇임에도 쨍한 햇빛이 어깨를 데웁니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로 배경을 일렁이는 아지랑이가 연기처럼 자리합니다.
마엘 르루:...더워. (반쯤 풀린 머리카락을 다시 고무줄로 묶으며 중얼거립니다)
루크 제너시스:여름이니까... 하고 넘기기엔 벌써 아지랑이가 올라오네. (셔츠를 펄럭이다 손을 들어 부채질을 해줍니다.) 시내 간다고 했지?
마엘 르루:응. ...걷기 귀찮은데 버스 타고 갈까. (루크의 부채질을 힐끔 보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담임은 숙제나 잔뜩 내 주고 말야...
루크 제너시스:난... 우리 담임쌤이 좀 그리워. (오늘만 해도 4점이나 추가된 벌점 은은하게 떠올림) 이번 숙제는 또 뭐였지.. 시간여행이던가. 음, 시내에서도 좀 돌아다닐거면 버스 탈까?
마엘 르루:(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하긴, 너... 벌점 엄청 먹었지. 숙제로 뭐 쓸 거야? 시간 여행에 관한 생각이면... 과거로 돌아가면 하고 싶은 거라도 써야 하나. 넌 하고 싶은 거 있어?
루크 제너시스:그렇게 벌점을 한 번에 팍팍 주실줄은 몰랐지... 인심이 너무 후하시더라. (절레절레) 글쎄? 과거로 돌아가서 하고 싶은게 또 있는진 모르겠다. 차라리 미래로 가보는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 과거로 가도 뭔가 바꾸면... 뭐라고 하지? 패러독스? 그런거 생긴다고들 하잖아. (어깨를 으쓱인다.)
마엘 르루:그 벌점이면 내일 벌 청소 하라고 할지도 몰라. 그래? 난 미래는 별로 안 궁금한데. (뚱한 얼굴로 루크를 바라보다 곧 시선을 앞으로 향하곤) ... 저거 타고 가자. (눈 앞의 버스정류장에 막 도착한 버스 쪽으로 루크의 손목을 잡고 뛰어갑니다)
상태가 나쁘지 않아 보였던 겉모습과는 달리, 손목에 닿는 마엘의 체온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아슬하게 버스를 타고 이동한 두 사람은 머지않아 학교 근처의 상가 거리에 들어섭니다.
상가 거리는 이 근방에서 가장 훌륭한 발전이 이루어진 곳으로 특히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몇 달 전에 비해 돌아다니는 유동객의 수는 눈에 띌 만큼 줄었지만, 그런대로 여전히 붐비는 장소네요.
사거리에 접어들자 때마침 초록불이 점등합니다.
간만에 나온 거리의 풍경이지만 무언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루크는 흐릿하나마 기억을 되살려 근처 상점가별 위치를 도식화시켜봅니다.
왼쪽 인도로 접어들면, 그러니까... 뭐가 있더라.
[식당], [카페], [영화관], [백화점], 혹은 [서점] 으로 가볼 수 있겠네요.
마엘 르루:(버스에서 내려 상점가를 둘러봅니다) 여기도 꽤 오랜만에 오네.
루크 제너시스:그러게... 확실히 사람도 좀 줄어든 느낌인데. (마엘을 따라 상점가를 둘러봅니다.) 음, 어디 들릴 곳 있어?
마엘 르루:너는? 난...잠깐 더위라도 식힐 수 있으면 좋겠는데. (연신 손부채질을 하며 중얼거립니다)
루크 제너시스:그럼 카페부터 잠깐 들렀다 갈래? 에어컨도 틀었을거고, 뭐 시원한거라도 좀 마시자. 그럼 좀 나아지겠지. (뜨거웠던 마엘의 체온을 떠올리며 냉큼 손을 잡아 카페로 향합니다.)
BGM: ♪ BGM
여전히 뜨겁고 흐물흐물한 마엘을 데리고,
루크는 코너 한구석에 세워져 있는 작은 카페로 향합니다.
건물 외벽을 장식한 벽돌 무늬와,
입구의 난간 곁에 일렬로 도열된 고양이 모양 피규어들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카페에 들어서면 친절한 직원이 자리로 안내하며 메뉴판을 건네줍니다.
아기자기한 메뉴판은 여느 카페가 그렇듯 평범한 커피류, 에이드류, 쥬스가 있네요.
조각케이크나 타르트와 같은 간단한 디저트류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메뉴판을 아래로 훑다 보면, 어쩐지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이벤트 항목이 눈에 띕니다.
✦
카페 리뉴얼 기념 학생 커플 할인 이벤트!
저희 카페의 커플 메뉴를 주문하시면 무려 50% 만큼 할인해 드립니다.
✦
커플 메뉴의 이미지를 살펴보면... ...
간단한 디저트 종류와, 도저히 1인용으로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잔에 담긴 에이드에 하트 빨대가 한 개 꽂혀 있습니다.
...
이벤트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직원이 말을 건넵니다.
직원: 아, 커플이신가요? (직업정신 투철)
루크 제너시스:아, 음, 넵? (어..어떡하지? 어떡할래? 같은 표정으로 다급하게 마엘을 바라봅니다.)
마엘 르루:커플?!?! (온 카페에 당황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고는 황급히 입을 막습니다) 아, 어, 그, 그러니까...그런 거에 넘어갈 줄 알아요?! (갑자기 직원을 추궁합니다)
루크 제너시스:그, 아니, 마엘...? (식은땀이 목 뒤로 흐르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애매하게 웃는 얼굴로 직원을 바라봅니다.) 아뇨! 아니, 그게 아니라요! 메뉴는 좀 더 고민해보고 고를테니까요! 신경쓰지 않으셔도! 넵! 괜찮답니다! 아하하...! (직원 추궁하는 마엘 텁 붙잡아요)
직원: 네, 그럼 다 고르시면 불러주세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 위의 호출벨을 가리키곤, 메뉴판을 놓고 자리에서 떠납니다)
마엘 르루:... ... ... (직원이 떠나자 딱 보기에도 더위 먹은 듯한 얼굴로 머리를 감싸쥡니다) 어떻게... (희미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루크 제너시스:... ... (한차례 폭풍같은게 지나간 기분) 으응, 일단... 메뉴 좀 고르고 머리랑 몸 둘 다 식히는 걸로 할까? 하하... 학생 커플 할인 이벤트라 이거 찾는 애들이 많았나봐. 그래서 그런게 아니려나....? (슬쩍 마엘을 바라보다 메뉴판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마엘 르루:...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슬쩍 루크 쪽을 바라봅니다) 너 괜찮으면 나도 상관없는데. ...딱히, 커, 커플 같은 게 아니어도 50%나 할인해 준다잖아? 그러니까... 요즘 지갑 사정 좀 별로기도 하고...
루크 제너시스:어? (메뉴판에 꽂혀있던 고개를 들어 마엘을 바라봅니다.) 어, 어. 나도 너만 괜찮으면..? 디저트도 있고, 에이드 양도 많아보이니까. (묘하게 간질거리는 상황에 그저 작게 웃어보인다.) 그럼 시킬게? (큼, 표정을 가다듬고 호출벨을 눌러 직원을 부릅니다.)
직원: 주문하시겠어요? (미소어린 얼굴로 펜과 주문용 용지를 들고 돌아옵니다)
루크 제너시스:(서비스 정신이 묘하게 부끄러워지는 순간) 그... 어, 여기 이벤트 메뉴로 주세요. (메뉴판의 커플 메뉴 이미지를 가리킵니다.)
직원: 커플 메뉴 말씀이시죠? 네, 알겠습니다. 자리로 가져다 드릴게요~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 뒤...
곧 직원이 마카롱 몇 개와 초콜릿 브라우니가 담긴 귀여운 고양이 모양 접시, 그리고...
거대한 딸기에이드 한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습니다.
마엘 르루:... ... 진짜 크다. (에이드 잔의 크기에 조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루크 제너시스:... ...어, 이렇게 커도 괜찮은건가? 아무리봐도 2인분 양은 아닌 것... 같은데. (간식은 귀여운데 양이 귀엽지가 않아요 사장님) 여러모로 확실히 시원해지긴 하겠네...
마엘 르루:(수상쩍게 생긴 2인용 하트 빨대에게 시비를 거는 듯 빤히 노려보다, 곧 빨대의 한쪽 끝을 잡고는 한 모금 마십니다) 맛은... 나쁘지 않네.
루크 제너시스:(2인용 하트 빨대에게 시비 거는 마엘의 모습에 그저 웃습니다.) 그래도 카페긴 하니까, 에이드가 맛 없진 않겠지. 어때, 좀 시원해? 달달한거 좋아하면 마카롱도 먹어봐. (냉큼 마카롱을 들어 권합니다.)
마엘 르루:단 걸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퉁명스러운 얼굴로 블루베리맛 마카롱을 받아들어 입에 넣고는, 우물우물...) ...괜찮네. 너도 먹어. (바닐라맛 마카롱을 대뜸 루크의 눈 앞에 내밉니다)
루크 제너시스:그래? 그래도 에이드랑 같이 먹으면 좀 덜 달지 않으려나. (더 달게 느껴지려나? 고개를 갸웃거리다 눈 앞에 내밀어진 마카롱을 받아먹는다. 우물 우물...) 바닐라는 그렇게까지 단 것 같진 않은데. 음, 괜찮다면 다행이야. 근데 아까도 열 나는것 같았는데... 지금은 좀 어때?
마엘 르루:날이 푹푹 쪄서 그래. 학교는 에어컨도 안 틀어 주고... 이제 좀 낫네. ...이거 다 못 마실 것 같지? (빨대를 문 채 에이드를 입 안 가득 밀어넣고는, 여전히 줄지 않은 에이드에 눈을 찡그립니다)
루크 제너시스:으음... 날씨 탓이어도 혹시 모르니까. 맞다. 조례 끝나고 보건실 들리라고 했었는데, 들렸어? 뭔가 그냥 수업 들었을 것 같았단 말이지. (브라우니 우물우물하다 에이드 쪽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 다 마시려면 좀, 걸릴 것 같긴 해.
마엘 르루:응. 들렀어. 해열제도 받아 왔고... (다른 생각을 하는 듯 설렁설렁 대답하고는 다시 에이드를 어떻게든 끝장내 보려는 듯 마시기 시작합니다)
관찰력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5/42/17 |
굴림: | 7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왼쪽 손으로 에이드 잔을 잡고 있는 마엘의 손목에 문득 시선이 갑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손목시계의 테에 숫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네요.
2023. 기념일이라도 되는 걸까요.
루크 제너시스:(2023... 손목을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합니다.) 음, 그런데 말야. 그... 손목 시계에 새겨진거. 무슨 뜻이라도 있는거야? 너무 뜬금없는 질문인 것 같긴 하지만...
마엘 르루:손목시계에? (에이드를 해치우다 시선이 마주치자 손목을 들어 확인합니다) 아... 별거 아니야. 그냥 선물 받았을 때부터 있었어.
...슬슬 갈까? 나 서점 들러야 하거든. 문제집 몇 권을 새로 사야해서... 잠깐, 조금만 더 마시고... (화제를 돌리려는 듯 왼손을 테이블 밑으로 숨기고는 오른손으로 빨대를 쥡니다)
루크 제너시스:아아, 그래? 선물 받았던 거구나. 난 네가 따로 사서 각인한건 줄 알았거든. (고개를 끄덕이곤 줄어들고는 있는 에이드를 마십니다. 이거 끝장은 못보겠네...)
빨대로 에이드를 마시고 있으면, 아슬아슬하게 두 사람의 이마가 닿을 듯 말 듯 합니다.
마엘이 잠시 이 쪽을 바라보는 듯 하다가 모른 척 에이드에 시선을 두네요.
...
결국 에이드와의 맞짱에서 져 버린 두 사람은 계산을 마친 뒤 다시 거리로 나섭니다.
마엘이 문제집을 산다고 했으니, 거리로 나선 둘은 자연스럽게 서점으로 향합니다.
BGM: ♪ BGM
서점의 자동문 너머로 들어서면,
새 책들이 모이고 고여 있는 장소 특유의 결좋은 나무 냄새와.
약간의 곰팡내가 섞인 에어컨 냄새가 느껴집니다.
잠시동안 거리를 걸어 햇빛에 절어 있던 몸이 다시 되살아 나는 기분이네요.
마엘은 지친 기색을 하고선 잠시 검색대에 책을 검색하더니, 신간 코너의 책 두어 권을 뽑아 펼쳐보기도 합니다.
루크도 잠시 고개를 돌려 베스트셀러 칸을 살펴봅니다.
<의지가 꺾인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 ...정도의 책이 눈에 띄네요.
잠시 책장을 훑어보던 찰나, 책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주위를 살피면...
마엘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운동장처럼 펼쳐진 서점을 휘 둘러보면, 서로 다른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가지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는 출입객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그 사이엔 책 정리로 분주한 직원들 또한 섞여있고요.
마엘은 어디로 갔을까요. 역시 [음악 코너]?
문제집을 몇 권 산다고 했으니 [문제집 코너]에 있을 수도 있겠네요.
오늘 생긴 과학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 코너]로 갔을지도 모릅니다.
루크 제너시스:(음... 문제집 코너로 먼저 가봅니다.)
문제집 코너로 향하면,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새 문제집을 보러 온 학생들이 각 책장마다 두셋 즐비합니다.
과목별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어디를 살펴도... 마엘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네요.
책장 사이로 섞여들어 코너를 살피던 중,
빽빽이 꽂혀있는 문제집들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책 한 권이 눈에 띕니다.
게으른 누군가 구매를 재고하며 아무렇게나 꽂아놓은 책일지도 모르죠.
루크 제너시스:(음?)(책을 다시 꽂기 위해 일단 꺼내봅니다.)
책을 돌려놓기 위해 꺼내보면,
<음악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네요.
음악 코너에나 있을 법한 책이 뜬금없이 문제집 코너에?
루크는 적당히 페이지를 넘겨봅니다.
루크 제너시스:(오염된 음악...? 음악은 그냥 음악 아니었던가? 좋지 않은 음악을 이렇게 표현하는 건가?)(음... 이런 책은 음악 코너인가 싶어 음악 코너로 향합니다.)
음악 코너에 들어서면 자연한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과거의 루크에게는 익숙한 장소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음악 코너의 맞는 책장에 책을 돌려놓으면, 그 옆 책장에 다른 악보집이나 책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삐죽 튀어나와 있는 책 한 권이 있습니다. 누군가 또 잘못 꽂아둔 걸까요.
책을 꺼내보면... 제목은,
<빠르고 쉽게 이해하는 재미있는 상대성 이론!>
...과학 코너에나 있을 법한 책의 제목입니다.
페이지를 넘기면, 어쩐지 익숙한 내용입니다. 오늘 졸면서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다음 페이지를 넘겨 보면,
여러가지 타임 패러독스에 관련된 내용들이 줄글 형식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자료조사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70/35/14 |
굴림: | 6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루크는 뒤이어 <할아버지 패러독스>와 <타임 리프>에 관련된 내용을 읽어내려갑니다.
책을 읽다 문득 주위를 살펴 봐도, 마엘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네요.
루크 제너시스:음... (이거 알바생들 유도하는.. 뭔가 그런건가? 근데 오늘 과제하기엔 좋은 내용이네.)(일단 책을 들고 과학 코너로 가봅니다.)
루크는 숙제 내용을 머릿속에 그리며 책을 들고 과학 코너로 향합니다.
과학 코너에는 다른 코너에 비해 상주하고 있는 사람의 수가 적습니다.
에어컨의 냉기가 속속이 섞여든 책장 틈을 둘러보면, 마찬가지로 마엘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군요.
가져온 책을 돌려놓고 다른 책장을 살펴봐도, 좀처럼 흥미로운 책은 보이지 않네요.
하지만... 그대로 스쳐 지나가려던 루크는 또 삐죽 튀어나온 책 한 권을 발견합니다.
슬슬 의심스러워지는 마음에 책을 꺼내보면, 책의 제목은 <전염의 역사> ...
질병학 코너에나 있을 법한 이름이네요.
한숨과 함께 책장을 넘기면 가름끈이 끼워져 있던 페이지가 펼쳐집니다.
책을 덮은 그 순간, 누군가 루크의 어깨를 두드립니다.
마엘 르루:...오늘 숙제에 참고할 책 찾고 있어? (손에 악보와 문제집 몇 권이 담긴 비닐 봉지를 든 채로 빤히 바라봅니다)
루크 제너시스:어? 그건 아니고... 너 찾고 있었는데. 뭔가 책장 책들이 이상한게 중간중간 꽂혀 있어서. 그거 좀 빼서 원래 자리로 돌려놓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네. 참고할 만한 책을 찾긴 했는데... (돌려놨던 책을 꺼내 보여줍니다.) 벌써 다 샀어?
마엘 르루:그래? 잘못 꽂힌 걸 다 돌려놓다니 너도 대단하네... (비닐 봉지에 시선을 둡니다) 응. 더 살 거 없으면 가자.
루크 제너시스:어쩌다 보니... 그냥 지나치기 좀 그래서? 뭐, 이것저것 많이 봐서 나쁘진 않았어. (고개를 끄덕이곤) 이제 가자.
...
BGM: ♪ BGM
서점에서 나와 시계를 보면 저녁 일곱 시가 넘어 가고 있습니다.
여름이 농익어가며 하늘에 해가 떠있는 시간이 부쩍 길어졌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 교연한 노을이 상공과 구름을 붉게 물들입니다.
마엘 르루:...꼭 들러야 할 곳이 있어.
마엘은 루크를 데리고 어느 외진 골목길로 향합니다.
주변을 살피면 양옆으로 붉은 벽돌이 고루 쌓여 있고,
그 표면을 담쟁이 넝쿨과 장미꽃이 똬리 틀고 있습니다.
요 근처에 이런 길이 있었는지… 금시초문입니다.
이곳은 하루가 다르게 바삐 변화하는 도시입니다.
도로 위에는 어제 보지 못했던 차량이 오늘의 배기음을 터뜨리며 지나다니고,
몇 달 새에 하늘을 찌를 듯 드높게 건축된 신설 빌딩이 세워지는 것이 예사인 곳.
으레 생기는 변화를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여야만 내일에 적응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니까요.
번화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 하나가 고스란히 남겨진 듯한 풍경은 꽤 낯설지도 모릅니다.
...
점점 더 좁아지는 골목을 나아가다 보면 머지 않아 그 끝에 당도합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귀퉁이에 세워진 다 낡은 악기상 앞에 머무릅니다.
쿰쿰한 나무썩은내, 비릿한 풀냄새와 한층 짙어진 여름의 오존 냄새가 머리맡을 맴돕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흰 울타리가 빙 둘러쳐진 악기상,
기스 투성이 전면유리창 너머로 갖가지 악기들이 모습을 뽐내고 있습니다.
루크가 무어라고 입을 열 새도 없이, 마엘은 악기상의 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딸랑,
계절의 구색을 맞추듯 청명한 현관벨소리가 귓전을 때립니다.
.
빛이 바랜 [카운터] 좌석에 앉아 있던 악기상의 주인은,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흘끗 확인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합니다.
교복 차림새의 학생 두 명이 무언가를 살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나봐요.
목재 구조의 악기상 내부는 흐릿하나마 찝찔한 먼지 냄새가 납니다.
벽면 가득히 들어찬 거대한 [책장]이 두 사람을 반깁니다.
악기상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갖가지 [악기들]은 진열대 위에 놓여 있거나, 벽에 걸려있습니다.
악기만큼은 애지중지 관리했는지 하나같이 먼지가 쌓이지 않은데다 광택이 돕니다.
마엘은 무언가를 찾는 눈치로 악기들 사이를 서성이고 있습니다.
루크 제너시스:어... 뭐 둘러보러 왔어? (얼떨떨한 표정으로 악기들을 두리번 거리며 살펴봅니다.)
마엘 르루:... (집중한 듯 대답 없이 눈을 반짝이며 악기들을 살펴봅니다)
현악기, 금관악기, 목관악기, 타악기… 타현악기인 피아노까지.
이 허름한 악기상에 어울리지 않을만큼 아름답고 반짝이는 악기들이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두 사람 사이에 자리합니다.
창측 한켠에는 들여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진열된 다른 악기들보다도 아름답고 깨끗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습니다.
루크 제너시스:(괜히 피아노를 힐끗거리다 카운터로 시선을 옮깁니다.)
어쩐지 바라보고 있던 피아노에서 시선을 떼고 카운터로 고개를 돌리면,
팔꿈치를 올린채 턱을 괴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악기상 주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카운터 위에는 낡아 빠진 [아날로그 시계]와 [라디오]가 올라와 있고, 그 옆에 읽다 만 [신문]이 놓여 있습니다.
루크 제너시스:(으음... 음... 신문을 살펴봅니다.)
잘 알려진 신문사의 주간 신문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최신호가 아니라 몇 주 전에 발행된 신문이네요.
루크 제너시스:(무슨 내용인가 싶어 확인해봅니다.)
지능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0/40/16 |
굴림: | 7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사 날짜를 재차 살피니, 이 신문은 3주 전에 인쇄된 호입니다.
'지난주'가 덧붙어 있는 것을 미루어 유추하건대...
그 매혹적이라는 B씨의 연주는 대략 한 달 전에 콘서트로 진행되었던 모양이에요.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듭니다.
혹은 위화감이거나, 어떤 감이 작용하며 드는 느낌일 지도 모르고요.
한 달 전이라면…
지금 유행 중인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최초로 전파되었던 시기와 맞아 떨어집니다.
루크 제너시스:...음, 으음. (우연인가? 우연이 아니면 아마 저 곳에서 전염병이 퍼졌다는 소리인데... 바이러스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찝찝한 감상을 안고 라디오를 살펴봅니다.)
척 보기에도 만들어진 지 기십 년은 되어 보이는 오래된 라디오입니다.
노이즈 낀 저음질의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있네요.
루크 제너시스:(아날로그 시계를 향해 고개를 돌립니다.)
라디오와 마찬가지로... 골동품 가게에서 주워올 법한 연식의 오래된 아날로그 시계입니다.
시계약은 꼬박꼬박 잘 갈아주고 있는 모양인지, 세 개의 침은 별 무리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루크 제너시스:(음.... 여긴 전체적으로 아날로그 컨셉인건가....)(카운터를 살펴봅니다.)
카운터에서 꾸벅꾸벅 졸던 악기상 주인이 눈을 슬며시 뜹니다.
그리고선... 귀찮은 듯 다시 눈을 감아버리네요.
벽면의 책장에 꽂혀 있는 악보집을 잠시 살피는 듯 싶던 마엘이 곧 루크의 곁에 다가옵니다.
마엘 르루:이제 돌아가자.
마엘은 곧 무언가 석연찮은 듯한 느낌으로 고개를 젓습니다.
마엘 르루:...찾는 악기가 있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없나 봐. 팔리지는 않았을 텐데. 이상해...
루크 제너시스:아, 따로 찾는 악기가 있었어? (눈만 데구르르 굴리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오자.
마엘 르루:...그래. (문을 열고 악기상 밖으로 나섭니다)
악기상 밖으로 나오면,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있는 시간입니다.
...
귀갓길과 광장
BGM: ♪ BGM
짙은 땅거미가 아스팔트와 돌바닥을 기기 시작한 저녁과 밤,
그 사이의 애매한 시간.
소등되어 있던 가로등의 불빛이 하나씩 점등하며 온전히 어두워지진 않은 길을 비춥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한 이후, 도시는 저녁시간대 특유의 활기를 잃은지 오랩니다.
가로등 사이를 거닐다 보면, 곧 두 사람은 광장에 놓인 낡은 피아노 한 대와 마주합니다.
마엘은 마치 홀린 사람처럼 피아노를 향해 다가섭니다.
낡디 낡아 의자에 앉는 사람도,
건반에 손을 대는 사람도,
하다못해 눈길을 주는 사람도 없이.
분수대 맞은 편에 그저 장식물처럼 배치되어 있는 나무 피아노입니다.
마엘은 손끝으로 건반을 쓸어내리며 말합니다.
마엘 르루:이 피아노가 여기에 있었구나...
가로등의 불빛이 희미하게 비추는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할 때,
정신력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60/30/12 |
굴림: | 22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세상의 오류와 같은 현상,
다시 한 번 어쩐지 모를 데자뷰 현상에 사로잡힙니다.
이 장면, 어디선가 분명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꿈에서일까요.
SanC 0/1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59/29/11 |
굴림: | 5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마엘은 곧 피아노의 의자를 끌어 자리에 앉고는,
작은 녹음기를 꺼내 녹음 버튼을 누르곤 피아노 위에 올려둡니다.
조용히, 하지만 힘있게 연주하는 피아노의 선율은 처음 들어보는 음색입니다. 마엘의 자작곡일까요.
마엘이 연주를 시작하면, 잰걸음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의 이목이 광장의 피아노에 집중됩니다.
휴대폰을 들어 마엘의 연주를 촬영하거나 동영상으로 남기는 행인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그런 마엘의 연주를 바라보는 당신의 심정은 어떤가요.
당신도 언젠가 박수 갈채를 받으며 무대에 올랐던 적이 있을 터입니다.
해가 온전히 졌는데도 목구멍은 뜨겁고, 살갗은 익어버릴 듯 따갑습니다.
가로등의 적적한 불빛이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광장을 밝힙니다.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허름하고 볼품 없던 낡아 빠진 피아노일지라도,
그 정도의 연약한 빛을 반사할 수는 있는 모양이란 걸.
...
연주가 마무리되면, 마엘이 녹음기를 주머니에 집어넣곤 피아노의 뚜껑을 닫습니다.
(To GM): 피아노 기능 +23
그리고, 그를 지켜보고 있던 루크에게 다가와 조용히 묻습니다.
마엘 르루:...저번에, 조례 전 음악실에서 연주했을 때. 내 연주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잖아.
근데 아직... 네가 피아노 관둔 이유 못 들었는데. ...아직도 피아노는 치고 싶지 않아?
루크 제너시스:(순간 마음이 울렁입니다.
한참 좋아하던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던 지난 날들이 떠오릅니다.
어떤 작은 오류도 실수도 없이 연주를 끝마쳤던 순간에 꽤 기뻐했던 것도 같은데… 잘 생각나지는 않네요.
다만... 분명 무던히 노력하던 나날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피아노를 연주하는 건 내키지 않지만.)
(From 루크 제너시스): ??? 판정 1
루크 제너시스:... 그렇네. 관둔 이유를 들려주기로 했었나? (옅게 미소를 지어보이곤 제 손깍지를 낍니다.) 사실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야. 그냥... 좀 흔한 이야기지. 예전 음악 시작할 때랑 다르게 집안이 살짝 휘청했거든. 먹고 사는데 문제가 있는건 아니지만, 알잖아? 음악하는데 돈 많이 드는거.
그래서 그랬어. 나, 피아노보다 언어쪽에 더 재능이 있기도 하더라구. 피아노는 즐거웠고, 사실 아직도 네 연주를 듣다보면 아직도 즐거워하는 것 같긴 해. 이건 부정할 수 없네.
마엘 르루:...돈 문제, 그렇구나. (꽤나 실례가 될 지도 모르는 집요한 질문이었지만, 끝내 대답을 듣곤 피아노를 등진 채 고개를 작게 끄덕입니다) 맞아, 흔한 이야기야. 넌 확실히 다른 애들과는 다르게 머리 좋아 보이니까 뭐든 잘 할 것 같았어. ...우리 담임한테는 벌점 엄청 먹었지만. (결국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루크 제너시스:그건... 좀 봐줘. 너희 담임쌤이 나만 보고 계신것 같다니까. 원래 우리반 쌤이었을 때는 벌점 받고 다니지도 않았어. (장난스러운 어조) 최근 들어 왕창 받긴 했지만... 이정도는 좀, 애교로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마엘 르루:...그만큼 담임이 너한테 관심이 많은 거겠지. (특출난 학생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거니까, 같은 상투적인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고 말을 잇습니다) 애교는... ...음... 우리 담임한테는 안 먹힐 것 같으니까 그만두는 편이 좋겠는데. 그나저나, 조금 더 있으면 정말 깜깜해질거야. 이제 돌아가자.
루크 제너시스:으음... 조는 장면만 골라서 보시는게 슬프다고 생각해. 이왕이면 깨어있을 때 봐주셨으면 좋겠는데. ...역시 그런가? 숙제나 잘 해가야겠다. (고개를 끄덕이곤 발걸음을 옮깁니다.)
두 사람은 어둠이 내려앉는 광장에서 벗어나,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걷습니다.
같은 방향, 같은 길을 걸으며 당신은 어떤 생각을 했던가요.
...방금 전의 짧은 연주회가 아직 머릿속에 잔존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엘 르루:그럼, 내일 학교에서 보자. ...늦지 말고.
마엘은 짧은 인사를 건넨 뒤, 저번처럼 좁은 골목길 너머로 사라져 자취를 감춥니다.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진 그의 뒷모습을 지켜본 후, 루크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습니다.
...
며칠 뒤 아침
BGM: ♪ BGM
그로부터 며칠 뒤, 아침.
숨통을 불사르는 듯한 무더위와 함께 잠에서 깨어나면.
휴대폰에 맞춰두었던 알람이 루크의 귓가를 간지럽힙니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삐비비빅.
정신사나운 벨소리는 한참이고 이어집니다.
오전 댓바람부터 머리가 띵한 게… 밤새 열대야에 시달렸는지도 모릅니다.
...
등교 준비를 끝마치고 집 바깥으로 나서기 직전,
전원을 끄는 걸 잊어버린 TV에서 뉴스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퍽 익숙한 아나운서의 목소리네요.
정체불명의 전염성 질병에 대한 속보를 다루기 위해 신설 편성되었다던 그 코너임이 분명합니다.
듣기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70/35/14 |
굴림: | 4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70/35/14 |
굴림: | 6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다음 속보가 흘러나오기 전에 TV를 끈 뒤, 집을 나섭니다.
학교로 향하는 길은 평소보다 따사로운 햇빛에 녹아 일렁입니다.
피부에 내려앉는 더운 바람을 헤치고 늦지 않게 교실의 문을 열면, 마엘의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학교에 오면 늘 마엘의 자리에 가방이 놓여 있었는데 말이죠.
오늘은 조금 여유롭게 오는 걸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아 있으면...
조례 시간이 끝날 때까지도 마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고, 선생님은 교탁 앞에서 출석부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혹시 학교에 오지 않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요.
루크 제너시스:(음... 어제 계속 열 안 떨어지던데, 혹시 진짜 아파서 빠진건가? 콩쿨도 있는데...)
어쩌면 담임 선생님한테는 미리 결석의 이유를 말해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루크 제너시스:선생님~! (교탁 앞으로 걸어가며) 혹시... 오늘 마엘 왜 결석하셨는지 알고 계시나요? 어제 좀 아파보이길래 걱정돼서요.
선생님: 마엘 르루? (대충 출석부를 뒤적이다) 어, 병결이야. 요즘 유행하는 열병 때문이겠지.
그러고보니... 두 반이 묶인 뒤로부터 서넛의 아이들이 병결 처리 되었습니다.
메꿔두었던 책상은 다시금 주인을 잃고 방치되길 반복합니다.
곧 1교시의 종이 울리고, 루크는 수업 준비를 위해 자리에 앉습니다.
어쩐지 신경이 쓰입니다. ...비록 지난 며칠간의 만남이었지만, 질릴만치 그와 붙어 다녔으니까요.
주인을 잃은 책상에 잠시간 시선을 둔 채, 그렇게 오전 수업이 시작됩니다.
.
방과 후
BGM: ♪ BGM
하교를 알리는 묵직한 종례음과 함께,
번쩍!
마치 스위치를 올리듯 분산되어 있던 정신이 한 자리에 맞붙습니다.
뒤늦게 주변을 둘러보면 책가방을 싼 아이들이 교실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 들어옵니다.
어느틈에 종례가 이루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이 벌점이 몇 점이고 쌓였을 지도요.
오늘은... 하루종일 좀처럼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학교가 파했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죠.
학생: 빨리 나가, 문 잠글 거야!
늑장을 부리고 있으니, 오늘의 주번인 동급생이 톡 쏘아붙입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루크의 시선 끝에, 다시금 마엘의 빈 책상이 자리합니다.
어쩐지 모를 기묘한 이끌림에 그 책상으로 다가가면...
때마침 덜 닫힌 창문 가장자리에 불어온 오후의 설익은 바람에 가슴이 뻐근해집니다.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은 건조한 1인용 책걸상.
비어 있는 가방 걸이, 사물함 아래 가지런히 모여있는 교과서...
가장자리에 마엘의 이름이 적힌 코팅된 시간표까지.
기스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책상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전에 없던 기이한 감각마저 솟아납니다.
어제는 분명 이 자리에 책상 주인이 앉아 있었는데, 오늘은 하루종일 비어 있었습니다.
그 덧없는 사실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지던 그 때.
관찰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5/42/17 |
굴림: | 10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널빤지처럼 납작하고 어두운 책상 서랍 속,
켜켜이 정돈된 교과서 사이로부터 빼꼼 튀어나와 있는 찢어진 [작은 종잇조각]이 손에 잡힙니다.
잘 닦인 도자기처럼 맨질거리는 종이는 마치 하나의 단서처럼,
단조롭고 평화롭기 짝이 없는 교실의 풍경 속 우뚝 솟아난 돌부리처럼 당신의 눈에 걸립니다.
마치 결국에는 이 쪽지를 발견할 줄 알았다는 것처럼 그 자리에 놓여 있었으니까.
그래서, 기꺼이 걸려 넘어진 게 아니겠어요.
루크 제너시스:(작은 종잇조각을 꺼내들어 살펴봅니다.)
종잇조각에는, 꽤나 미려한 솜씨로 한 장소의 스케치가 작게 그려져 있습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흰 울타리와, 건물의 낡고 기스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옅은 악기들.
이 장소는... 의심할 여지 없이 며칠 전 마엘과 함께 방문했던 그 악기상입니다.
하염없이 스케치를 보다 시선을 내리면, 쪽지의 귀퉁이에 글귀가 휘갈겨져 있습니다.
이젠 눈에 익숙해진 마엘의 글씨체입니다.
루크 제너시스:으,으응...? 시간을 증명하고 기억을 되새길 물건? 시계 같은거 말하는건가? 그런데 이게 왜 필요한거지... (영문 모를 쪽지에 의아함을 느끼지만 종잇조각을 주머니에 챙겨둡니다.)
딱히 갈 곳도 없는데... 한 번 가볼까? (기억을 더듬어 악기상으로 가는 길을 찾아봅니다.)
지능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0/40/16 |
굴림: | 90 |
판정결과: | 실패 |
루크는 기억을 더듬어 시내로 향합니다.
쉽게 찾아갈 수 있을 줄 알았던 길목은 머릿속에서 흐려져,
몇 번이고 길을 헤메고 나서야 겨우 악기상으로 향하는 좁다란 골목을 걷습니다.
악기상 출입구에는 희끄무레하게 바래어 페인트칠이 벗겨진 '임시 휴업' 팻말이 걸려 있습니다.
루크는 새파란 싹이 이름 모를 들꽃이나, 잡초들과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울타리 근처를 서성입니다.
미련을 떨치지 못한 루크의 눈에 들어온 건... 악기상 바깥쪽의 자그맣게 무너진 울타리입니다.
그 사이로 어떤 계절의 매미 우는 소리가 이어집니다.
좁다란 공간은 마치 언젠가의 비밀스러운 길이 닦였다가 무산된 것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몸을 구겨본다면 간신히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은 샛길입니다.
루크 제너시스:(음.... 열심히 몸을 한 번 구겨봅니다.)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비밀의 장소로 인도하는 듯한 샛길을 타고 들어가면,
악기상 건물 외벽의 바깥을 지나 이어진 길의 끝에는 나무가 부자연스럽게 우거진 공터가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풀벌레 우는 소리만 선명합니다.
이곳에 사람의 흔적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만...
메마른 흙바닥의 정가운데 뻥 뚫린 싱크홀이 나있는 것만큼은 예삿 일이 아닌 것 같네요.
구멍의 가장자리는 마치 녹은 것처럼 보이며, 비정상적으로 일렁이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웜홀이라는 미지의 공간이 발치 아래 투영된 듯 합니다.
SanC 1/1d3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59/29/11 |
굴림: | 4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성 -1
38도를 웃도는 축축한 여름임에도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본능으로 말미암은 어떤 메시지가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이 구멍에 뛰어들어야만 해.'
누군가 루크를 위해 차곡차곡 쌓아 놓은 운명처럼, 이 곳에 이끌려 도착했습니다.
어쩌면 결국 이곳에 도착하기 위해 스스로 모르는 사이 오래도록 방황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
구덩이를 살피면 마치 하늘을 반사한 물이라도 투영하듯 희미한 빛이 텅 빈 공간을 떠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깊어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근방에선 강렬한 여름의 오존 냄새가 풍깁니다.
비릿하기도 하면서 싱그럽기도 한 특유의…
루크 제너시스:오존 냄새... (평소라면 애초에 오지도 않았을 곳이지만, 우연처럼, 운명처럼 도착했으니 한번쯤 모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하곤 발걸음을 옮겨 구멍으로 향합니다.)
기준치: | 80/40/16 |
굴림: | 9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발걸음을 내딛자, 문득 마엘이 남긴 쪽지의 추신이 떠오릅니다.
[ 네가 모르는 길을 발견하거든, 꼭 그 앞을 걸어나가야만 할 때 반드시 시간을 증명하고 기억을 되새길 물건 하나를 가지고 가야 해. ]
루크 제너시스:(시계... 음, 핸드폰 같은 것도 괜찮긴 한가?)(아리송...하지만 핸드폰도 시간을 증명할 순 있는걸... 내 메모랑 사진도 있다구...)
루크는 주머니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살펴봅니다.
...그러고 보니, 마엘과는 연락처도 주고받지 못했네요.
현대를 살아가는, 2020년의 루크의 모습이 핸드폰 액정에 비춰집니다.
이걸로도 괜찮지 않을까요. 지금의 자신을 또렷하게 기억할 수만 있다면.
...
다시 루크는 구덩이으로 걸어갑니다. 찰나의 모험심일지도 모르겠네요.
구멍에 한 발짝 내디디면, 찰나에 온몸을 거스를 듯 피부를 긁어대는 어떤 비인간적인 손길을 느낍니다.
전에 느껴본 적 없던 외계의 에너지가 강압적으로 몸을 잡아당기는, 그런 감각을.
.
.
BGM: ♪ BGM
...깜빡. 깜빡, 깜빡.
소용돌이치는 왜곡 속을 맨발로 건너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맞게 도착한 걸까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꽤 깊은 구덩이 안에 있습니다.
깊은 구멍 안에 머물고 있는 탓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꼭 천장같은 푸른 색의 하늘이 원형으로 오려져 있습니다.
오르기 혹은 근력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40/20/8 |
굴림: | 77 |
판정결과: | 실패 |
손톱 밑을 자잘한 흙이 파고드는 감촉과 함께,
루크는 다시 구멍 속으로 내동댕이쳐집니다.
체력 -1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40/20/8 |
굴림: | 2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루크는 사방이 꽉 막혀있던 구멍의 위로 간신히 기어 빠져나오는 데에 성곡합니다.
근처를 살피면... 구덩이에 뛰어들기 전에 보았던 그 공터입니다.
장소는 그대로인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이리저리 우거져있던 나무가 바싹 말라 타고 남은 잿더미처럼 바닥을 장악하고 있고,
맞은 편에 보이는 악기상의 벽면은 부식되어 이질적인 감상을 더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전혀 관리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네요.
...
공터에서 빠져나오면 악기상 입구에 다다릅니다.
길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나 굴곡진 모퉁이를 돌아보아도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발견할 수 없습니다.
공간 자체가 마치 노이즈낀 흑백 필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길로, 어떤 장소로 향하든 일말의 생명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저 전깃줄 위에 앉아 지저귀는 새들의 목소리나,
나무에 달라붙어 노래하는 매미의 우짖음만이 공허한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악기상으로 다가가면, 녹슨 초인종이 달린 문은 걸쇠가 고장나 살짝 열려 있습니다.
직전에 보았던 '임시 휴업' 팻말은 문간에 그대로 걸려 있네요.
'임시', '휴업', 하고 반으로 쪼개져 덜렁거리는 탓에 다소 음산한 기운을 더하고 있습니다.
닦지 않아 희뿌연 통유리 너머로 진열된 악기는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다 낡아가는 [피아노] 한 대만이 전시되어 있을 따름입니다.
루크 제너시스:..어라? 그,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찜찜한 표정으로 피아노 근처로 걸어가 살펴봅니다.)
지능 혹은 관찰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5/42/17 |
굴림: | 86 |
판정결과: | 실패 |
행운 -1
어쩐지 눈에 익은 피아노에 마음이 사로잡힙니다.
자세히 살피지 않아도 어딘지 눈에 걸리는 모양새.
이 피아노는… 며칠 전 마엘이 광장에서 연주했던 그 피아노입니다.
다 낡아 볼품 없어진 악기에 싸구려 페인트 칠을 해 디스플레이용 구색만을 갖추고 있었던 그 피아노.
이 피아노는 분명 광장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 악기상이 출처였던 모양입니다.
악기상의 유리창 앞에 서서 길거리를 둘러보면, 역시나 사람은 커녕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습니다.
가져온 휴대폰 액정을 확인해보면, 시계도 캘린더도 먹통입니다.
...이 악기상의 내부를 좀 더 살펴보는 편이 좋겠네요.
루크 제너시스:...모험은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았으려나? (공포영화는 다 이런 전개던데. 으스스한 기분을 느끼며 악기상 문을 열어 들어가봅니다.)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 [카운터]입니다.
좌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며 악기상을 지키고 있던 가게 주인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목재 구조의 악기상 내부는 텁텁하고 간지러운 먼지 냄새가 납니다.
어디에서도 악기는 찾아볼 수 없지만 벽면 가득 들어찬 거대한 [책장]은 그대로네요.
루크 제너시스:(카운터부터 한 번 살펴봅니다.)
쓸쓸한 카운터 위에는 다소 눈에 익은 물건들이 주인을 잃고 방치되어 있습니다.
[아날로그 시계]와 [라디오] 위엔 먼지가 그득 쌓여 있습니다.
루크 제너시스:(아날로그 시계를 살펴봅니다.)
먼지 쌓인 아날로그 시계를 들여다보면,
약이 거의 다 되어가는 모양인지 세 개의 침이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그러모아 간신히 뜀박질하고 있습니다.
하나 부자연스러운 점은, 바늘들이 하나같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본래 공전해야 할 궤도를 떠나지 못한 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일련의 반복된 패턴에 기이한 느낌이 스며듭니다.
SanC 0/1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58/29/11 |
굴림: | 23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시계가 고장났나... 하긴 가게가 이러니까... 라디오를 살펴봅니다.)
치직… 치지지직…
완전히 고장나버렸는지 탁한 백색소음을 흩뿌리고 있습니다.
주파를 맞춰보고 툭툭 두드려도 보지만... 고쳐질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기계수리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35/17/7 |
굴림: | 52 |
판정결과: | 실패 |
행운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39/19/7 |
굴림: | 96 |
판정결과: | 대실패 |
...이런.
라디오를 만지작거리다, 뭔가... 정말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더 이상 라디오에 손을 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라디오에서 눈을 돌리면,
희미한 진행자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옵니다.
루크 제너시스:으응? 저주로 인류 70%가 사망...? 진짜 공포영화 같은데. (재차 소름돋음) (이번엔 책장을 살펴보러 갑니다.)
수차례 도둑맞았는지 듬성듬성 비어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셀 수 없이 많은 악보집들이 책장 가득 꽂혀 있습니다.
걷어내지 못한 먼지는 더욱 무거워졌고,
제대로 자리잡지 못해 절반쯤 튀어나와 있는 책자도 여럿 보입니다.
불현듯 떠올립니다.
피아노를 그만둔 뒤 악보를 어떻게 관리해왔더라, 하고.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책장 모서리에 전에 보지 못했던 [달력] 하나가 박힌 못 위로 장식물처럼 걸려 있음을 발견합니다.
루크 제너시스:(달력을 살펴봅니다.)
책장 모서리에 걸린 달력은 7월에 펼쳐져 있습니다.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몸통만한 달력을 쳐다보던 루크는, 달력 어귀에 적혀있던 올해의 년도를 발견합니다.
그곳에는 큼지막한 네 개의 숫자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2023년.
지능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0/40/16 |
굴림: | 14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세상의 오류를 알리듯 거꾸로 돌아가는 아날로그 시계와,
루크가 살던 현재로부터 조금 동떨어진 세월의 흐름을 가리키는 달력.
길거리에는 사람 하나 오가지 않고 시야는 마치 흑백필름을 끼워 넣은 것처럼 생기가 없었습니다.
미지의 구멍, 그곳에 마치 운명같은 이끌림을 얻어 겁없이 뛰어든 당신.
이제야 눈치챕니다. 이 곳은 미래라는 걸.
2023년, 인구의 70%가 잠들어버린 뒤 고요한 멸망을 기다리고 있는 3년 후의 미래.
SanC 1/1d3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58/29/11 |
굴림: | 78 |
판정결과: | 실패 |
2
이성 -2
...
BGM: ♪ BGM
악기상의 문을 열고 나오면,
끝없는 열기에 데워진 아스팔트가 일렁이는 건너편 골목에서 누군가의 인영이 다가옵니다.
그 실루엣을 바라보고 있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목소리가 루크를 반깁니다.
???: 한참 찾았잖아요, 선배. 몸은 좀 괜찮아요?
생기 없는 시야에서도 반짝이는 붉은 빛의 머리카락. 마엘입니다.
대답을 바라고 건넨 말은 아니었는지, 그는 다시 말을 잇습니다.
마엘 르루:저, 과거로 가서 선배를 만나고 올게요. 생각해봤는데 별 문제 없을 것 같고. ...선배가 정말 피아노 치는 걸 싫어하면 집에서 쉬고 있겠지, 지금 여기 있지도 않을 거잖아요?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리며)
그런 마엘의 품에는 악보가 들려 있습니다.
조례 전, 이른 아침의 음악실에서 마엘에게 건네주었던 그 악보집이 틀림없습니다.
마엘 르루:...아, 저번에 선물해 줬던 시계도 고마워요. 그 뒤로 선배 상태가 별로 안 좋아 보여서 연락은 못 했지만 잘 쓰고 있거든요. (손목에 감싸인 시계에 넌지시 시선을 주곤) 그럼... 가볼게요. 몸조심하고요.
그 말을 끝으로, 마엘은 마치 모든 결정과 준비를 끝마친 사람처럼.
미련 없이 루크를 지나쳐 악보를 들고 커다란 구멍에 뛰어듭니다.
그런 그의 뒷모습에 어떤 말을 남겼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찰나의 순간 마엘은 시야에서 흩어져 사라집니다.
...
.
정신을 차리면, 2023년에 묶여 있던 몸은 다시금 2020년의 악기상 앞에 서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마엘은 보이지 않고, 한가로운 골목길을 누비는 어린 아이들이 종종 눈에 들어옵니다.
문득 핸드폰을 내려다보면... 액정이 처참하게 박살나 있습니다.
악기상 유리창 너머의 아날로그 시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정갈하게 돌아갑니다.
꿈이라도 꾼 걸까요.
단지 '꿈'이라는 한 단어로 축약하기엔, 보고 듣고 겪었던 모든 것들이 지나치게 현실적이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건가요.
루크 제너시스:... ...이게 무슨, 아니. (내가 보고 온게 진짜 환상같은게 아니란 말야? ) 마엘이랑 대화해보는게 가장 나을 것 같은데. 아프다고 하니까... (액정이 깨진 스마트폰만 황망하게 바라봅니다.)
기준치: | 80/40/16 |
굴림: | 5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황망하게 깨진 액정을 내려다보면, 문득 치직거리던 라디오의 음성이 머릿속에서 또렷해집니다.
[ ...저주를 세상에 퍼뜨린 원인이 되는
곡의 악보를 태우는 방법
만이... ]루크 제너시스:저주를 세상에 퍼트린 원인... 그, 뭐였더라. (전에 보았던 신문 기사를 머릿속으로 되짚어본다.) 아마... 겨울이 흘린 눈물이었던가? 근데 아까, 미래긴 하지만, 마엘이 들고 갔던 악보는 뭐였지. 그게 이거였나? 아무튼 마엘이 들고 있을텐데. ..미래에서 왔다는게 아직도 얼떨떨하지만...
분명... 교과서에서 읽은 <겨울이 흘린 눈물> 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특이한 인장이 찍혀 있다고 했죠.
그리고 음악실에서 마엘이 정리하던 악보집에도, 분명 은은한 모양새의 문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 악보집들은... 마엘이 어디에 정리해 두었던가요.
루크 제너시스:어... 음악실이었던가?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네. 서둘러 발걸음을 학교로 옮깁니다.)
...
밤의 음악실
BGM: ♪ BGM
어느덧 저녁이 쏟아지고 밤으로 물들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학교로 향하는 내내 무거운 습기가 발목을 잡는듯 합니다.
한밤중의 여름은 습하니까요.
매년 이맘때쯤 장마전선이 북상하고는 했으니, 시간이 부지런히 흐른다면 며칠 안 있어 많은 비가 쏟아질 터입니다.
루크는 학교로 향하던 도중, 여러 기현상을 목격합니다.
전봇대를 붙잡은 채 고열의 두통을 호소하다 잠들듯 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지나가던 행인이 일으켜 세우는 한편,
급히 출동하던 앰뷸런스가 어느 사거리에서 승용차와 부딪히는 등의 사고가 잇따라 발생합니다.
불가해하기 짝이 없는 세상의 불균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왜 전에는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하늘을 올려다보면 소름끼칠만큼 많은 별의 형상이 아른거립니다.
...
학교에 도착해 계단을 올라 음악실로 향하면,
정해져 있는 수순처럼 열려 있는 문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닫히지 않은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의 유영에 빼곡히 덮인 커튼이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하늘댑니다.
루크 제너시스:(열려 있는 음악실의 문 안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깁니다.)
마엘이 정리해 뒀던 악보집들은 분명...어디에 있던가요.
루크 제너시스:그러니까... 피아노 의자 아래였던가? (피아노 의자 아래 수납공간을 열어 확인해봅니다.)
그랜드 피아노 앞에 놓여 있는 피아노 의자 뚜껑을 열면,
수납서랍 한구석에 보관되어 있는 오래된 낡은 악보집 하나가 눈에 띕니다.
교육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70/35/14 |
굴림: | 76 |
판정결과: | 실패 |
기준치: | 70/35/14 |
굴림: | 2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잠시 흐릿해진 시야가 또렷해지면, 악보집의 제목은...
<겨울이 흘린 눈물>.
제목을 읽어냄과 동시에, 루크는 낡아빠진 악보집 어귀에 자리하고 있는 어떤 징표를 발견합니다.
정신력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60/30/12 |
굴림: | 93 |
판정결과: | 실패 |
그래요, 그 때 마엘이 쏟았던 악보집들 사이에 섞여있던 그 악보집에...
이런 조악한 문양이 박혀 있었습니다.
형편 없는 솜씨의 문장은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일견 누군가의 자필 사인처럼 보이는 문양은 꼭 도는 것 같기도 하고…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기이한 홀로그램같은 형상에 어쩐지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강하게 전해져옵니다.
SanC 0/1d3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56/28/11 |
굴림: | 88 |
판정결과: | 실패 |
1
이성 -1
지능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0/40/16 |
굴림: | 4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억을 더듬어보면... 분명 학교 1층에 소각장이 있었습니다.
루크 제너시스:(악보를 손에 쥐고 1층 소각장으로 달려갑니다.)
...
BGM: ♪ BGM
악보를 손에 쥐고 음악실을 벗어나려던 그 때,
눈 앞에 하얗게 아른대는 듯한 잔상이 보입니다.
...과연 잔상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물에서 올라오는 듯한 인광의 기둥은,
평범한 사람의 의식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떠한 영상도 초월하는 재앙과 비정상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단지, 빛은 이제 새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감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색깔의 형체 없는 흐름은 구덩이에서 곧장 천장을 향해 솟구쳐 올라가는 듯합니다.
순수한 색채의 형태로 나타난 이계의 지성체,
세상에 알려진 어떤 스펙트럼과도 닮지 않은 희미한 색을 내는 비실체.
아른거리던 「색채」는 곧 작은 개미지옥을 만들어낼듯 루크의 육신을 에워쌉니다.
SanC 0/1d4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55/27/11 |
굴림: | 4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순간, 머리가 반으로 쪼개질 듯한 역겨운 오존 냄새를 맡습니다.
올 여름 내내 맡아왔던 비리고도 싱그러운 냄새입니다.
지능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80/40/16 |
굴림: | 3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정신 공격 0
끈적하고 불쾌한 비실체가 몸 곳곳에 들러붙는 감각을 뿌리치고,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습니다.
간신히 색채에게서 벗어나 음악실 밖으로 대피하려던 찰나,
BGM: ♪ BGM
순간적으로 강한 힘이 루크의 팔을 잡아당겨 바깥으로 끌어냅니다.
마엘 르루:내가 밤에는 음악실에 오지 말라고 했잖아!
어두운 실내에서, 점차 익숙해지는 인영에 얼굴을 확인하면...
아니나다를까. 결석했던 마엘입니다.
잔뜩 화난 듯 매섭게 눈썹을 찡그리다가도, 루크가 손에 쥔 악보집에 시선이 멎자 곧 누그러듭니다.
붙잡힌 팔 전체에 전해지는 체온이 36.5 ℃를 훌쩍 넘어 섰음을 눈치 채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마엘의 몸은 마치 불 위에 올려둔 물처럼 펄펄 끓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쭉 당신을 찾아 헤메고 있던 걸까요.
마엘 르루:...어디 다친 덴 없지? 그럼 다행이고. (걱정 어린 기색으로 루크를 이리 저리 살펴보다 작게 한숨을 내쉽니다)
루크 제너시스:으,으응.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다 느껴지는 체온에 화들짝 놀라 마엘의 손을 잡아옵니다.) 마엘?! 아니, 왜 지금 여기에 있어? 오늘 학교도 결석했으면서... 아픈건 내가 아니라 너잖아. 괜찮아? 안괜찮은 상태같긴 한데...
마엘 르루:그야... 이 한밤중에 널 찾으러 왔지. (또렷한 시선으로 루크를 응시하고는 슬쩍 손을 빼냅니다) 내 얘기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돌아가자.
루크 제너시스:이 한밤중에 나를...? (의아한 얼굴로 마엘을 바라봅니다.) 아무래도 좋은게 아닌데, 그럼 잠깐만. 이거 소각실에서 태우고 가자. (손에 쥔 악보를 가리킵니다.)
마엘 르루:... ... 그러자.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하곤 고개를 끄덕입니다)
소각장으로 향하는 길, 마엘이 문득 입을 엽니다.
마엘 르루:뜬금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담임이 내 준 과학 숙제 말야. 담임이 과연 미래에서 건너온 사람이 과거의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에 대해서 말했었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루크 제너시스:...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2023년의 단편을 떠올려본다.) 글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간단하게만 말해보자면... 가능할 수는 있다고 봐. 그런데 과거의 역사가 바뀌면 미래도 바뀌는거잖아. 그럼 그 미래에서 건너온 사람은 어떻게 되는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 잘 모르겠네. 음... 이건 왜?
마엘 르루:...미래에서 건너온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말이지. (멍하니 루크의 말을 되뇌이다) 글쎄.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한데.
난 역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만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은 없어.
그렇게 속삭이는 마엘의 목소리는 어쩐지 확신에 가득 차 있습니다.
꼭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것이 아닌, 세상의 진리를 설파하는 것처럼.
그렇게 두 사람은 교사 뒤편에 마련된 소각장 앞에 발걸음을 멈춥니다.
마엘 르루:...그거 태울 거지? (루크가 손에 쥔 악보에 시선을 줍니다)
루크 제너시스:응, 그런데 왜 태우냐곤 안 물어보는거야? (네 악보인데. 잠시 손에 쥔 악보를 만지작거린다.)
마엘 르루:...내가 그걸 바라고 있으니까. 자세히는 설명해 줄 수 없어. ...미안.
루크 제너시스:응? 아니, 미안해 할 필요는 없지. (옅게 웃어보이곤) 괜찮아. (악보를 소각장 안에 넣어 태워버립니다.)
악보집을 소각장의 불씨에 던져 넣으면,
화르륵, 하고.
옅은 불길이 타들어가는 악보를 휘감습니다.
하염없이 피어오르는 불꽃을 보고 있을 때,
한참을 그 광경을 마주하며 침묵하던 마엘이 입을 엽니다.
마엘 르루:있잖아, ...루크. 아직도 피아노 연주는 하고 싶지 않아?
루크 제너시스:음... 글쎄, 역시 피아노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은 그렇게 들지 않아. 집안 사정도 사정이고, 나름 공부도 크게 재미없지는 않더라.
그래도 말이지,
(어쩐지 아릿합니다. 줄곧 느껴왔기에 금세 깨달을 수 있는 감정입니다.
세상에 축적된 많은 문장의 표현을 빌려 설명하자면... 전조도 없이 가슴이 뛰었습니다.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려두는 것이 더는 두려운 일이 아니라는, 그런 확신이 듭니다.)
(From 루크 제너시스): ??? 판정 1
루크 제너시스:한번쯤 다시 무대 위에 올라가보고 싶기는 해. (무언가 후련한 얼굴로 마엘을 바라보며 웃어보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지만!
마엘 르루:(웃음 짓는 루크의 얼굴을 그저 바라보다, 어딘가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게 네 대답이라면, 부탁이 하나 있어.
지금은 늦었으니까... 내일 오후 6시에 내가 연주했던 피아노가 놓여 있는 광장에서, 이 악보를 연주해 줘.
마엘은 곧 악보집 하나를 가방에서 꺼내 건네줍니다.
낡고, 오래 되었고, 허름하며, 손때 묻었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을 건네받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어느새 눈빛이 흐려지고, 곧 쓰러질 것 같은 창백한 안색을 한 채로.
마엘은 떨리는 목소리를 쥐어 짜내 다시금 부탁해옵니다.
마치 이제 한계에 다다른 사람처럼.
마엘 르루:꼭 그 광장이어야 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그곳, 그 시간에, 반드시. 이 곡을 연주해 줘야 해. ...꼭이야. (한 번 놓았던 루크의 손에 악보를 쥐여 주고는, 떨어질 새 없이 손등에 손을 겹쳐옵니다)
루크 제너시스:...어, 오후 6시에? (이해할 수 없는 부탁이었지만 손에 쥐여진 악보를 놓지 않는다.) 방금 내가 한 말이 있으니까 어려운 부탁은 아니지만... 이것도 이유를 물어보면 대답은 못해주는거야? (네가 미래에서 와서 그런건지. 알고있으니 괜찮다고 해야할지. 그저 속으로 삼킨 채 입을 다뭅니다.)
마엘 르루:...응.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립니다) 그저, 한 번쯤은 다시 무대에 오르고 싶다면, 다시 전공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해도 피아노 연주가 싫지 않다면... 내 부탁을 들어주면 좋겠어.
루크 제너시스:(고개를 끄덕이곤 겹쳐있는 손을 힘주어 잡아옵니다.) 그런 부탁 어렵지 않으니까. 얼굴이 조금 팔릴 것 같은건 각오해야겠지만? (부러 농담삼아 가볍게 말을 던졌다.) 연주는 싫지 않아. 싫어했으면... 네 연주를 보고 그렇게 두근거리지도 않았을테니까. 좋아!
마엘 르루:(옆에서 타오르는 희미한 불꽃 탓인지, 언뜻 회색빛 눈동자가 반짝이고는) 고마워. (그리고 곧,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네 오랜만의 연주, 기대하고 있을게.
타들어가던 악보는 까만 잿더미로 자리하고,
그 말을 끝으로 마엘은 꼭 쥔 손의 온기를 느슨하게 풀고는, 루크를 잠시 바라보다 천천히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갑니다.
사라지는 마엘의 등은, 마치...
무지개를 잡을 수 없고, 햇빛의 뜨거움을 유리병 속에 담아낼 수 없듯이.
차마 붙잡을 수 없는 형태로 희미해져갑니다.
.
마지막 날
BGM: ♪ BGM
비가 퍼부을 듯 빽빽한 수증기가 마른 길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날씨 탓일까요, 오늘의 해는 일찍이 시들 요량인가 봅니다.
하늘을 켜켜이 감싼 먹구름이 기묘하게 반짝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주변을 살피면... 평소보다 적은 수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광장은 요 근방에서 유동객이 많은 장소로 손꼽히는 장소입니다.
중앙에 마련된 분수대 앞에 놓여 있는 낡아빠진 피아노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페인트 칠을 해두었지만,
좀처럼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하는 낡고 오래된 악기가 꼭 고물처럼 보입니다.
점점 더 무채색해지며, 점점 더 다채로워지는 모순적인 세계에 도태되어 있습니다.
그 허름한 피아노에 다가서는 것은 오로지 루크, 당신 뿐이겠죠.
연주를 마음먹었다면... 이제 피아노 의자에 앉을 차례입니다.
루크 제너시스:(조심스레 마엘이 전해준 악보를 들고 피아노에 다가가 자리를 잡습니다.)
피아노에 앉아 악보를 꺼내 놓으면, 시간은 점점 6시에 가까워지는 이릇입니다.
...그럼에도 행인 속에서 마엘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부탁받은 대로, 악보를 연주할까요.
루크 제너시스:(잠시 심호흡을 하며 숨을 가다듬고는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습니다. 마엘, 넌 어디서 이 연주를 듣고 있을까?)
...
BGM: ♪ BGM
루크는 악보대 위에 올려진, 셀 수 없이 많은 나이를 먹고 자란 곡에 시선을 둡니다.
음표를 빼곡히 채워 넣은 악보는 종이가 어찌나 얇고 덧없는지 바람 한 점에도 부서질 것처럼 가녀립니다.
이 악보의 어느 구석이 그렇게나 특별한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마엘은 당신에게 간곡히 부탁했었죠.
언젠가 당신이 최초로 건반에 손을 올려놓았을 때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로.
차가운 공기 한 품 찾아볼 수 없는 습하고 무더운 여름의 정가운데서 마침내 건반에 손을 올려둡니다.
잊고 살던 서늘한 냉기가 백건과 흑건 위에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깨를 익힐듯 강렬하던 더위가 한풀 꺾입니다.
추억으로 남길 뻔했던 감각들이 되살아남을 느낀 것은 그 때였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도 괜찮을까요.
한 번 연주를 그만두었던 당신이, 과연 이대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을까요.
굳어버린 손가락으로 다시 누군가의 발걸음을 멈춰 세울만한 연주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피아노 판정
루크 제너시스:
기준치: | 79/39/15 |
굴림: | 4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지금까지 들어왔던 마엘의 연주가, 손가락 사이사이 스며드는 듯한 옅은 바람 한 줄기에.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그럼요.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 절망과 꺾인 의지만이 잔재한다면, 이렇게 다시금 피아노 앞에 앉게 될 수 있었을 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젠가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선택을 번복하고 버텨내는 겁니다.
...
연주가 시작되면 바쁘게 거리를 활보하고,
때로는 흐릿한 풍경에서 벗어날듯 지나치던 사람들의 시선이 점차 광장에 모이기 시작합니다.
기이하게 물들었던 별빛 하늘이 풍향을 따라 꽃가루처럼 걷히고,
가슴 위에 얹힌 듯 반죽되어 있던 응어리와 한 때의 좌절이 단 하나의 점이 되어 흔적을 달리합니다.
곡이 끝맺음과 동시에 건반에서 손가락이 떨어지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박수로 화답합니다.
뉘엿뉘엿 져가던 하늘에 수놓였던 수억 개의 별들이.
세계를 숙주삼아 성장하던 색채의 무리가 모두 걷혔음을 깨닫습니다.
모든 인파가 흩어지고 나서야, 주위를 둘러보면...
그 어디에도 마엘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같은 자리에 앉아 기다렸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
.
마엘의 전학 소식을 듣게 된 것은 돌아온 월요일의 아침에서였습니다.
어쩌면 묘연히 사라져버린 마엘을 수소문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다시 마엘을 만나기 전의 평범했던 하루처럼...
모든 사건이 종식된 나날이 이어져갑니다.
고열에 시달려 병결했던 아이들도 모두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울다 지친 매미는 늦여름의 끝에서 기나긴 생의 종지부를 찍습니다.
...
시곗바늘은 부지런히 흐르고 계절이 순환합니다.
10대의 끝, 졸업식의 하루 전 날.
이제 마지막이 될 교실의 한 자락에서, 루크는 책상 서랍 깊은 곳에 있던...
멋대로 찢어진 메모지 한 장을 발견합니다.
눈에 익은 글씨. 분명 이 글씨체는, 그리고...
선명한 메모지 위에 흐릿하게 번진 연필 자국으로 새겨진...
한 마디의 글귀는, 마치.
반짝, 하고.
마치 빛을 받은 유령의 신호처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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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1. Da capo!
현재를 살아가던 루크의 개입과 선택으로, 모든 미래가 바뀌었습니다.
이성 +5, 체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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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BGM
장마전선 소식이 들려오던 여느 2023년의 여름.
세간에 알려진 '정체불명의 전염병' 사태가 종식된 날로부터 약 3년이 흘렀습니다.
좁디 좁은 골목을 돌아 울타리 어귀에 멈춰선 루크는,
영업 종료 팻말이 걸려 있는 악기상 건물을 바라봅니다.
관리 되지 않아 썩어가는 나무벽은 꼭...
악기상이 아닌 잊혀진 어딘가의 골동품 가게를 연상케 합니다.
그나마 빨갛게 돋아난 덩쿨장미가 건물 외벽을 타고 자라난 풍경만이 음산함을 닦아낼 뿐입니다.
루크는 걸쇠가 앞길을 가로막은 악기상 처마 아래서,
낡아빠진 [피아노] 한 대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피아노가... 3년 전의 '그 피아노'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챕니다.
그날 이후로 행방이 묘연했던 피아노가 이 곳에 자리했네요.
루크 제너시스:...오랜만이네. (피아노에 다가가 잠시 건반을 쓸어봅니다.)
피아노의 건반을 쓸어내리며 추억에 젖어 있으면,
곧 악보대 위에 반듯하게 펼쳐진 [악보] 와 더불어 사용감이 있는 [녹음기] 가 눈에 들어옵니다.
루크 제너시스:(펼쳐져 있는 악보를 들어 살펴봅니다.)
빼곡히 메모가 되어있는 악보를 들어 살펴보면,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의 악보입니다.
꽤나 익숙한 글씨체로 적힌 메모는 악보의 흰 부분을 뒤덮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좀 더 빠르게, 손끝에 힘을 줘서...'
루크 제너시스:마엘 악보인가? 그러고보면... 그때 항상 녹음하고 있었지. (녹음기를 손에 쥐고 재생해봅니다.)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누르면, 녹음된 마엘의 피아노 연주들이 흘러나옵니다.
분명... 3년 전에 당신도 이 연주들을 들어본 적이 있었죠.
녹음된 연주들이 끝을 맺자, 곧 한 음성 메시지가 순차적으로 재생됩니다.
노이즈가 껴 다소 좋지 않은 음질의 틈을 파고든 마엘의 목소리가,
새파란 여름의 골목길에 흩뿌려집니다.
...
안녕, 루크. 네 연주 잘 들었어.
이미 눈치챘을 것 같지만... 난 3년 후의 미래에서 왔어.
난 지금 내가 살던 미래로 돌아가. ...마지막 인사는 못 할 것 같아.
다시 네 얼굴을 보면, 그냥 과거에 머무르고 싶어질 것 같거든.
...지금에서야 깨달은 건데, 난 이미 한 번 '너'를 만난 적이 있었던 것 같아.
과거로 향하기 전에 악기상 앞에서 선배를 마주쳤던 적이 있어.
그런데 그게 실은... '너' 였던 거야. 내가 찾아 헤매길 자처했던 3년 전의...
신기하지 않아? 내가 헤매기도 전에 네가 먼저 나를 만나러 와줬다는 게.
음성 메시지가 종료되면,
어디선가 비릿하고 싱그러운 풀냄새가 불어옵니다.
멍하니 녹음된 메시지를 들으며 피아노 앞에 서 있던 당신의 어깨를,
누군가 톡톡, 두드립니다.
불현듯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하면, ...
2023년, 두 번째 첫 만남.
알고 있었나요.
두 사람은 괴멸해가던 일전의 미래에서도 2023년에 이 피아노 앞에서 마주쳤습니다.
어떤 악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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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