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latte 프사 / 헤더 @말차님

MIDNIGHT DRIVER

 

원본 시나리오 posty.pe/3g62uu

 

KPC 러셀 데클란 켄트

PC 리디안 K. 엔데

 

 
.
 
단 둘이 드라이브를 갈까요.
 
마지막처럼, 처음처럼.
 
.
 
.
 
 
MIDNIGHT DRIVER
 
W. S2
 
.
 
똑, 똑, 똑.
 
수액이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즐비한 의료장치들의 균일한 백색소음과 스스로의 숨소리 사이에서.
 
오로지 당신만이 눈을 뜨고 있습니다.
 
건강 판정
 
리디안 K. 엔데:
건강
기준치: 1/0/0
굴림: 14
판정결과: 실패
건강
기준치: 10/5/2
굴림: 15
판정결과: 실패
 
…!
 
순간 가열찬 흉통이 엄습합니다.
 
벼린 날이었다가, 무딘 손톱이었다가,
 
갈가리 찢는 감각이 가슴을 한바탕 헤집고 지나갑니다.
 
그 잠깐 새에 온몸에 식은땀이 배어납니다.
 
...
 
푹신한 베개며 담요 속, 꼭 스스로의 무게만큼 깊이 묻힌 채.
 
끝과 시작, 삶과 죽음 따위에 대해 무던히 생각하다 보면,
 
시야 언저리에 러셀이 두고 간 화분들이 걸립니다.
 
처음 이곳에 온 날, 그가 등을 돌린 채 중얼거리던 말이 떠오릅니다.
 
이런 꽃 따위는 네가 여기서 일어나면 다 버리겠다는 둥.
 
괜히 신경질을 내던 그의 손 안에는 작은 헬리오트로프 화분이 들려 있었습니다.
 
...설마 직접 사온 건 아니었겠죠.
 
그간 병원만 세 차례 옮긴 끝에 겨우 이곳까지 도달했습니다.
 
의사가 마음에 안 든다며 러셀이 전부 반려한 탓이었죠.
 
어느덧 4대 째의 조그만 꽃잎이,
 
반쯤 열린 창문으로부터 드나드는 미풍에 부드럽게 흩날립니다.
 
상념 사이로 흐르는 초침 소리를 무상히 가늠하고 있을 즈음... ...
 
...
 
협탁에 놓인 유선 전화기가 별안간 울려대기 시작합니다.
 
따로 연락이 올 곳도 없는데. 이런 시간에 무슨 일일까요.
 
리디안 K. 엔데:.... (러셀이 가져온 보라색 꽃무덤을, 덧없는 눈으로 응시하다 시선을 거둡니다. 고통은 별게 아닙니다. 오히려 언제나 삶의 대부분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닌 것에 불과합니다. 다만,) ... (가슴께를 틀어쥐던 손을 옮겨 수화기를 듭니다)
 
수화기 너머로 귓가에 맺히는 목소리는, 익숙한 것입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깨어 있었어? 전화를 받았으면 먼저 그쪽에서 말을 해야지.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어조는 평소보다 약간 들떠 있는 것 같습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지금 병원 앞이니까. 잠깐 나와 봐.
 
그 말에 고개를 돌려 창가를 보면...
 
지금은 해가 진 것보다...동이 트는 것이 가까울 새벽입니다.
 
리디안 K. 엔데:...지금 말입니까. (어스름한 푸른빛에 눈살을 찌푸리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리운 이의 목소리에 고통이 사그라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부드러운 어조로) ...피곤하지 않습니까, 데클란.
 
러셀 데클란 켄트:난 별로. ...아무튼, 네가 안 나온다고 하면 그쪽으로 데리러 갈 거니까. 어떡할 거야? (조금은 막무가내로 대꾸합니다)
 
리디안 K. 엔데:(작게 웃습니다) 당신을 걸음 하게 할 수는 없으니, 기다리십쇼. (통증을 아무렇지 않게 견뎌내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러셀과의 만남은, 그의 삶에 있어서 이제 몇 남지 않은 긍정적인 사건입니다. 병실의 풍경이 고루하던 차입니다. 어차피 그마저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러셀 데클란 켄트:...응. 정문 쪽으로 나와. 기다릴게. (잠시 뜸을 들이다, 곧 먼저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허술한 셔츠 위로 외투를 걸칩니다.
 
병원에서 늘 신던 샌들을 아무렇게나 구겨 신고,
 
당신은 링겔대를 끌며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평소에도 러셀은 자주 이 병원을 찾곤 했었죠.
 
하지만, 이번 방문은 거의 몇 주는 지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연락도 없이 달려오다니. 그 답기는 하지만요.
 
사소한 의아함을 곱씹고 있자면, 곧 병원의 정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러셀은 언제나처럼 고개를 틀어 이 쪽을 바라봅니다.
 
한편으론 바짝 긴장한 듯한 모습으로.
 
머잖아, 그 입이 눈에 익은 궤적을 그리며 사뭇 조심스레 여닫힙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드라이브 가자. (손가락에 걸린 차키를 한 차례 빙글 돌립니다)
 
리디안 K. 엔데:....이 시각에, 말이죠. (문득 그의 모습을 보자 맥이 탁하고 풀립니다. 모습을 보이지 않아 신경이 쓰였는데, 여느 때의 그와 같습니다. 차 키를 돌리고 있는 러셀의 손가락을 봅니다)
심리학
기준치: 50/25/10
굴림: 52
판정결과: 실패
심리학
기준치: 50/25/10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면, 곧 그 움직임이 멈춥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시간은 상관없잖아? (멋대로 엉킨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정돈하며 중얼거리곤) ...그건 여기 두고 가는 게 낫겠네. (리디안의 링겔대에서 수액 팩을 꺼내 손에 쥐곤, 거치대를 한 구석에 치워 놓습니다)
 
리디안 K. 엔데:...제멋대로인 도련님이군. (작게 중얼거립니다. 하기야, 병원의 치료는 더 이상 효과가 없는 것을 직감하고 있습니다. 재킷을 벗어 러셀의 어깨에 둘러주고는 차로 다가갑니다) 키, 넘겨주시죠.
 
러셀 데클란 켄트:됐어. 내가 어떻게 차를 여기까지 끌고 왔을 것 같아? (마음에 안 드는 듯 살짝 미간을 구기곤 차키를 손에 꾹 쥡니다) ...나도 이제 있거든. 면허. (검은색 차체의 롤스로이스로 다가섭니다)
 
짙게 선팅된 차창 위로 별들이 점점이 비칩니다.
 
팔에 매인 링거 줄이 한 번, 바람에 나부끼면.
 
공백을 더듬어 메우는 밤공기가 달고 찹니다.
 
마치 무언가로부터의 은밀한 도피 같은,
 
이 순간이 썩 나쁘지 않게 느껴집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타.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조용한 새벽 사이로 잔잔하게 울립니다)
 
리디안 K. 엔데:아, 하하. (작게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고 그의 에스코트를 따라 차에 올라탑니다. 얼마 남지 않은 죽음 이전에, 러셀이 차를 몰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조수석에 앉아 눈으로 차량 내부를 구경합니다)
 
당신이 조수석에 앉으면,
 
러셀이 다가와 쥐고 있던 수액 팩의 후크를 손잡이에 단단히 걸어 둡니다.
 
그리고 몸을 숙이는가 싶더니, ...안전벨트를 매주려는 것 같네요.
 
그 옆모습을 일방적인 시야로 바라보고 있으면.
 
관찰 혹은 심리학 판정
 
리디안 K. 엔데: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미미하게 열이 오른 뺨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이어 낮게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는 들떠 있는 동시에 어딘지 초조해 보이기도 합니다.
 
평소 그리 보지 못했던 복잡한 얼굴.
 
몇 번인가 달칵이는 소리가 이어진 끝에... 안전벨트가 단단히 매입니다.
 
그는 두어 번씩 벨트를 재차 당겨가며 확인하다,
 
곧 운전석으로 가 앉습니다.
 
리디안 K. 엔데:....데클란. 무리하는 것 아닙니까? (러셀의 뺨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고 떨어집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내가 무리할 게 뭐가 있어. (자신도 안전벨트를 매다 힐끔, 리디안 쪽을 바라보고는 다시 핸들에 손을 올린 채 차창 너머로 시선을 둡니다) 너야말로... ...어디 불편하면 말해.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 곧 러셀은 라디오의 전원을 켭니다.
 
잡음 섞인 피아노의 선율이 부드럽게 흐르고,
 
핸들을 장식한 작은 십자가 장식이 반짝입니다.
 
차창 밖으로는 숨죽여 엎드린 교외의 정경이 비칩니다.
 
어쨌거나, 아름다운 새벽이네요.
 
그가 시동을 걸고, 엑셀러레이터를 눌러 밟음과 동시에.
 
차체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
 
두 사람을 태운 차는 도시를 향해 달립니다.
 
조금 열어둔 차창의 틈새로부터 기분 좋은 세기의 바람이 불어듭니다.
 
코끝이 달고, 또 시리고, 어쩐지 그리운 기분이 드네요.
 
그와 보냈던 추억들은 결코 달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요.
 
그간 못 다한 이야기를, 천천히 나누어 볼까요.
 
러셀 데클란 켄트:... (입술을 꾹 다문 채로, 핸들을 톡톡, 두드리며 정면을 빤히 응시합니다)
 
리디안 K. 엔데:달을 보는 건 꽤 간만이군요. (부드러운 바람 사이로 희미하게 빛나는 달을, 자신 치고는 기분 좋은 얼굴로 바라봅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아. 미안. 방금 뭐라 그랬어? 제대로 못 들어서. (뜸을 들이고는, 조금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대꾸합니다)
 
리디안 K. 엔데:....글쎄요. 별 말은 아니었습니다. (눈을 가늘게 뜨며 러셀에게로 시선을 돌립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별 말이 아니었다... 라. ...그렇게 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거지. 넌 항상 그랬으니까. (조금 고개를 숙이곤) ...처음에도, 별 일은 아닐 거라고 했잖아.
 
리디안 K. 엔데:.... (짧게 침묵합니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 손을 가볍게 쥡니다) ...병 말입니까.
 
러셀 데클란 켄트:그렇게 말해놓곤, 다음 날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널 봤을 때... 내 기분이 어땠을 것 같냐? ...아냐. 지금은... 이런 이야기는 별로 안 하고 싶어. (핸들을 쥔 손등에 혈관이 푸르스름하게 두드러집니다)
...어때? 요즘은. 뭐 하고 지냈어? 병원에서 할 것도 없잖아. 거긴 따분한 노인네들 투성이니까...
 
리디안 K. 엔데:.... (러셀의 말에 짧게 침묵합니다. 혼자 남겨지는 것의 두려움과, 타인의 죽음이라는 공포를 저 역시 뼈저리게 느꼈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불거진 핏줄에서 시선을 거둡니다) 병문안을 오지 않은 건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러셀 데클란 켄트:... ...일이 있었어. 네가 없어도 빌어먹을 연주회는 계속 해야 하니까. 혼자서 가느라 여러모로 귀찮은 일 투성이라고. (퉁명스레 대꾸하곤) ...면허도 따야 했고.
 
리디안 K. 엔데:데클란치고는 기특한 생각입니다. (자신이 없더라도, 멀쩡히 살아가야 할 러셀입니다. 남겨지는 쪽의 고충을 절실히 알고 있기에, 그에게 자신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조용히 대꾸합니다) 앞으로도 그렇게만 하면 됩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후견인처럼 말하는 건 관두지 그래? (그의 말에 가만히 쏘아붙입니다) ...그것보다, 내 이야기 말고. 난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사소한 거라도 상관 없으니까.
 
리디안 K. 엔데:들어서 무얼합니까. 앞으로의 당신에게는 필요 없는 정보입니다. (차창에 느슨하게 기댑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그걸 왜 네 멋대로 정해? (간신히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온 말이 희미하게 떨립니다)
 
리디안 K. 엔데:....그러면? 누구에게 답을 구해야 합니까. (무표정한 눈으로 러셀의 얼굴을 담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미련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게다가 불확실한 것이라면 더욱.
 
러셀 데클란 켄트:불확실한 것. ...하, 하... ...그래, 내가 너한테 그 정도밖에 안 됐다면... 그렇겠지. (비꼬는 듯한 어조로 대꾸하지만, 그 눈빛에 무언가 희미하게 감돌던 빛이 힘을 잃고 꺼져갑니다)
 
리디안 K. 엔데:(힘을 잃은 러셀의 모습에 섣불리 손을 뻗었다가 도로 거둡니다)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것의 반이라도, 당신이 나를 생각했다면. 이렇게 어린아이같이 굴지 못할 겁니다 데클란.
 
러셀 데클란 켄트:너는 어른이고, 제멋대로 구는 나는 한낱 애새끼다 이거지. (핸들 위로 주먹을 꾹 쥡니다) ...여전히, 넌 정말 짜증나는 자식이야...
 
리디안 K. 엔데:(느리게 눈을 깜빡입니다. 달빛을 받은 차체에 시간이 정지한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현실입니다. 러셀과 러셀의 모든 것을 제외하면 여전히 끔찍하고 답답한 현실) ....그 정도면 됩니다. 원한다면 나를 증오해도 좋고요.
 
러셀 데클란 켄트:...개자식. (쾅, 하고 대시보드 하단을 무릎으로 걷어차는 소리가 울립니다)
... ...그게 생각처럼 됐으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지도 않겠지. (미간을 짙게 구기곤) ...진심으로 널 증오할 수 있었다면.
 
리디안 K. 엔데:... 한때는 이 손으로 죽고 싶었죠.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는, 희고 곧은 손을 기억합니다. 영영 보지 못할, 사랑하던 그 손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분노한 앳된 얼굴을 응시합니다) 지금은 곁에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뿐입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그런 식으로 세상에 미련따위 하나 없다는 듯이 굴어도 듣는 쪽은 짜증만 치민다고. (시선을 틀어 차분한 리디안의 보랏빛 눈과 마주하고는) ...당장 뒤질 것도 아니잖아. 좀 더 해보고 싶은 건 없어? 뭐라도 좋으니까.
 
리디안 K. 엔데:....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시선을 마주합니다) 없습니다. 갈망하는 것들은 이미 전부 버렸습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 ... (그의 대답에, 할 말을 잃은 듯 순간 시선이 흔들립니다. 곧, 정면을 응시하고는) ...그게 뭐야. ... (손을 내려 라디오의 볼륨을 높이자, 한적한 선율이 다시금 두 사람 사이의 공백을 메웁니다)
 
...
 
 
어느덧, 창문 너머로 흘러간 다리만 세 개째입니다.
 
창밖으로 비치는 누군가가 강변에서 비눗방울을 불고 있네요.
 
그렇게 하릴없이 밖을 내다보고 있던 사이,
 
불현듯 딸각, 소리와 함께 러셀이 당신 쪽의 차창을 올립니다.
 
민첩 판정
 
리디안 K. 엔데: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 얼른 고개를 뒤로 뺍니다.
 
달리는 차창 밖을 내다보면 위험하니까요.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
 
백미러에 비치는 러셀의 얼굴은 아주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것만 같습니다.
 
주변 환경에 감응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듯.
 
버튼을 기계적으로 만지작거리는 손등 위로,
 
가는 힘줄이 불거졌다가 누그러지기를 반복합니다.
 
...
 
머잖아, 그가 다시 당신을 돌아봅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정말 아무것도 없어? 갈망하는 것도, 하다못해 증오하는 것도. ...네가 버리고 싶어서 버린 거냐고.
 
리디안 K. 엔데:.... (여즉 침묵하던 입술을 달싹입니다) 마지막으로, 원하는 것. (느릿하게 러셀의 붉은 눈동자를 응시합니다. 문득, 그리운 꽃향기가 났던 것도 같습니다)
....당신이 나와 같지 않기를 원합니다. (덤덤한 투로 읊조립니다. 그것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나처럼 절망하고, 슬퍼하고, 괴로워 목숨을 가벼이 여기지 않기를 원합니다. 데클란.
 
러셀 데클란 켄트:... ... 난 너랑은 달라. 난... 너처럼 그딴 식으로 굴어본 적도, 굴 생각도 없어. (깨문 입술이 희게 바랩니다)
 
리디안 K. 엔데:당신이 나의 죽음을, 유일하게 기억해 주고 천천히 잊어주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건조한 눈이 차량 너머의 우주를 배회하다 붉은 고향에 머물렀습니다) 데클란이 매년 나의 무덤에 꽃을 바쳐준다면, 혹은 나를 잊고 행복해 준다면 정말 기쁠 것 같군요.
 
러셀 데클란 켄트:(이야기를 들으며, 핸들에 장식된 십자가를 손끝으로 덧그립니다. 마치, 무언가에 기도하는 듯한 모양새로) 그건... ... 솔직히,
 
끼익 ─────────!
 
귀를 찢는 소리와 함께, 차가 급정거합니다.
 
애초에 천천히 나아가고 있던 만큼, 반동이 크진 않았으나... ...
 
옆을 보면, 그는 놀랐는지 핸들 위로 고개를 수그리고 있습니다.
 
관찰 판정
 
리디안 K. 엔데: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희끄무레한 형체가 윤곽을 식별하기도 전에,
 
헤드라이트 앞을 지나쳐 사라집니다.
 
아마 저것 때문에 멈추었나 보네요.
 
...
 
고개를 들어 창밖을 살피다, 다시 러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입니다.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
 
아니, 아무래도 영 심상치 않습니다.
 
그의 어깨며 손이, 눈에 띌 정도로 심하게 떨리고 있습니다.
 
리디안 K. 엔데:...데클란, 괜찮습니까. (핸들 위로 쓰러진 러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립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 ...무리야. 나는... ... (제멋대로 시야를 가린 흑색의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붉은 빛이 어른거립니다)
 
리디안 K. 엔데:....많이 놀란 모양입니다. (그의 용태를 살피다, 머리칼을 쓸어 넘겨줍니다) 괜찮습니다. 자리를 옮겨주십쇼. 병원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난... 네 무덤에 꽃 같은 건 못 놔줘.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손길에도 아랑곳않고 대꾸합니다) 잊는다느니, 그딴 짓은... 더더욱 못 하고.
 
리디안 K. 엔데:데클란. (나지막하게, 또 단호한 어투로 그의 이름을 부릅니다) ...병원으로 가겠습니다. (안전벨트를 끄르고 나서, 운전석의 문을 열었습니다)
 
안전벨트를 끄르려고 하자,
 
아주 단단하게 잠긴 듯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습니다.
 
근력 판정
 
리디안 K. 엔데:
근력
기준치: 70/35/14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안전벨트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기다려. (순간 손을 뻗어, 리디안의 팔을 단단히 붙듭니다) ...기다리라고 했잖아.
 
리디안 K. 엔데:....당신이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안전벨트를 풀다 멈춥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넌 왜 항상... 그딴 식으로 구는 거야? 날 생각한다느니, 날 위한다느니 궤변 따위나 늘어놓고. (여전히 핸들에 얼굴을 처박은 채 중얼거리며) ...결국 내 말 같은 건 들은 척도 안 하잖아? 그냥 내가 짜증난다고... 귀찮다고 말해. 그게 본심이잖아.
 
리디안 K. 엔데:... (눈이 크게 뜨였다가, 도로 줄어듭니다) ....아니, 아닙니다. (여전히 머뭇거리며, 손을 뻗지는 못합니다) ...귀찮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제가 뭔가 실수했나 보군요. (핸들을 가볍게 쥡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실수? 하, ...아니. 실수 따위가 아냐. 너랑 대화할 땐... 난 항상 빈 껍데기와 대화하는 것 같았어. 언제나 그랬지. 똑같은 대답, 똑같은 거절. ... ...X같아. (헛웃음이 섞인 문장들이 차내에 스며든 달빛과 공허하게 섞여듭니다)
기껏 늘어놓은 바램이라고는, 오로지 널 잘라낸 뒤의 나 혼자만의 것뿐이잖아. ...정말 그동안 내가 대해온 건 가 맞는 거야? 정말, 나는 계속... ... 계속, 널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럼, 내 의지도 네게 있어선 무가치한 게 되는 건가? (허탈한 듯, 지속되던 어깨의 떨림이 차차 멎어듭니다)
 
리디안 K. 엔데:... (핸들을 쥐고 몸을 가까이합니다) 그건, 그저 당신의 곁에 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러셀의 말들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째서, 무가치한 것에 가치를 두고, 어째서, 사랑하지 않는 것에도 열의를 두는지. 그리고 그에게서 자신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착각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고를 멈춘 머리가 그를 이해하는 걸 관두고 맙니다) 그게 아니라면,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겁니까.
 
러셀 데클란 켄트:... ...닥쳐. 너는, 정말... ...멍청한 쓰레기 자식이야. 리디안 엔데. (낮게 읊조리는 단어에서 어쩐지, 모멸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나도 어리석게 여겨질 무언가의 감정이 옅게 새어나옵니다)
(느릿하게 고개를 들면, 가까스로 떨어지지 않은 채 눈가에 맺힌 물방울이 달빛을 받아 아른거립니다) ...내가 옆에 있는 새끼들 아무한테나 이럴 줄 알아? 지금까지 살면서 가문의 단물 따위를 빨아먹으려고 붙었던 숱한 멍청이들을 지나쳤고, 쓸모를 다한 녀석들은 가차없이 내다 버렸어. 근데, ...넌 정말 X같았어. 멋대로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완전히 망친 데다가... ...한낱 사용인 주제에 내 전부를 달라는 헛소리나 지껄이고.
...그런데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널 버릴 수가 없었다고. 알겠어? 착각 따위일 리가 없어. 내가 널, 얼마나... ... (핸들을 쥔 리디안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치자, 여전히 높은 체온이 전해집니다) 네가 원했던 것처럼 너한테... 내 전부를 줬으니까. 너도 날 책임져야 하는 거 아냐? 전부 버렸다느니, 잊고 행복하라니. ...개소리 지껄이지 마.
... ...그래, 그렇다고 한다면,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 (조금은 울음 섞인 말투로, 마치 무언가에 매달리듯이 손을 겹쳐 쥐고는 낮게 속삭입니다) 그러면... ...말해줄게.
 
사진
 
러셀 데클란 켄트:...사랑해. 리디안.
 
리디안 K. 엔데:...나는, 데클란. 저는. (러셀의 눈꼬리에 숨이 멎었습니다. 무엇을 말해야 할까, 그토록 바라던 확신임에도 쉽사리 기뻐하지 못하는 마음은 어째서일까. 다만 손에 전해지는 러셀의 높은 온기가 자신을 현실로 잡아둡니다) ...곤란합니다. (차창 쪽으로 몸을 피하며 도망갑니다. 러셀에게 말려들 것만 같아서. 그에게 닿았던 손등으로 차체를 잡고 기댑니다. 러셀의 온기가 흉터처럼 욱신거리는 기분입니다)
나는, 곧 죽는단 말입니다. (내가 느끼는 것은, 분노인가. 기쁨인가, 당혹감인가. 혼란한 머리가 싸늘하게 식었습니다. 곧 당면할 미래를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죽습니다. 그리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도 진실입니다. (머리를 가볍게 감싸쥡니다) ...내가 바라는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당신이 절망에 남지 않았으면, 그랬으면 하는 게 내 마지막 사랑이었는데.
왜 나를 살고 싶게 합니까. 이제야, 이제야.. 모든 끝이 보이는데.. 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감정은 몸의 고통과 비할 수 없이 아프게 난도질합니다) 얻지도 못하는 행복을 바라게 하십니까. ....데클란.
 
러셀 데클란 켄트:이게 네가 원했던 거 아냐? (붙잡은 손을 억세게 쥐곤 끌어당깁니다. 손잡이에 매달린 수액 팩이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채 흔들리고, 다시금 그와 시선을 마주합니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네가 날 두고 떠날 리가 없잖아? ...내가 허락하지도 않을 거고.
네 착각대로 날 재단하지 마. ...리디안. 난... 이게 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의 등을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억지로 안자, 빠르게 울리는 고동이 두 사람의 몸을 타고 전해져옵니다) 너랑은 다르다고 했잖아. ...난 이딴 일로 절망하지 않아. 사랑해. 그러니까... 그런 생각은 혼자서만 껴안고 있지 마. 답답해 죽을 것 같다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중얼거립니다)
 
리디안 K. 엔데:(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이 상황을 무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채 입술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자신은 이 온기에 묻혀 기어코 죽고 말 것이라고. 대꾸 대신 가늘게 떨리는 팔을 뻗어, 러셀의 허리를 안습니다. 자신에게 뻗어진 유일한 동아줄, 마다하기엔 너무나 달콤합니다) 매일 아침, 병실에서 눈을 뜨면 제 곁에 데클란이 있는 상상을 합니다. 저와 당신 둘만.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또 내일을 바라게 됩니다. ....전부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애정은 사람을 무디게 하는 모양입니다. 데클란.
....당신이 나로 인해 슬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아주 슬펐거든요. (손바닥으로 러셀의 등을 쓸다가 유리 인형을 안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꼭 끌어안았습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슬퍼하지 않아. ...네가 나를 생각해준다면. 네 욕심대로 내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면... (가까스로 멎었던 떨림이 다시금 되살아납니다. 그의 등을 품에 가득 안은 채로) 미안.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계속 거기 있고 싶었어. 네가 없어도 X같은 하루는 어떻게든 굴러가더라고. 혼자 지내는 데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네 허튼 소리라도 들을 수 있던 나날이 나한테 얼마나 소중했는지 이제야 깨닫게 된 거야. ...그래도, 괜찮아. 난 이제 계속... 네 곁에 있을 거니까.
(한동안 오랜 투병으로 앙상해진 그의 몸을 안고 있다, 곧 천천히 떨어집니다. 붉어진 눈가를 가볍게 쓸고는 다시 핸들을 잡습니다) ...조금 더...있고 싶지만. 아직 갈 길이 멀거든.
 
리디안 K. 엔데:.... (러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귀 뒤로 넘겨줍니다. 정말, 자신이 원해서 그의 곁에 있어도 되는지. 지옥에서 손짓하는 이들의 원망섞인 환청에 눈을 질끈 감습니다. 죄책감이 심장을 찌르는듯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려는 겁니까.
 
러셀 데클란 켄트:...해 뜰 때까지 도로에 묶여 있는 건 사양이잖아. 몰래 나온 걸 의사한테 들키면 귀찮기도 하고. (머리카락이 넘겨져 드러난 귀가 새빨갛게 물든 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리디안의 팔에 매인 링겔 줄을 흘겨보고는 엑셀을 밟습니다) ...피곤하면 한숨 자도 돼.
 
리디안 K. 엔데:...피곤하지 않습니다. (러셀의 눈꼬리에 입을 맞추고 떨어집니다. 쌉싸래한 물기가 느껴집니다. 다만 그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는 않으므로, 조수석에 몸을 기대고 창밖의 바람을 맞았습니다. 혼란스럽지만 어쩐지, 몇십 년 만에 평화롭다고 느낍니다)
...곁에 있겠습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 ... (그 말에, 어쩐지 안심한 듯한 눈이 느릿하게 감겼다, 다시 창 너머의 풍경을 마주합니다. 여전히 속도는 그리 높이지 않은 채 천천히 운전을 이어갑니다)
 
(To GM): ...나도, 이렇게 너와 둘이서만 있고 싶어. 영원히. 내 곁을 떠나지 마.
 
...
 
 
.
 
어느덧 지나쳐 온 다리가 여덟 개가 되어갑니다.
 
삶과 죽음.
 
그 언저리를 헤매는 당신의 외로운 사색과 이지러진 욕망들을 동력으로,
 
엔진은 역한 날숨을 토하고 두 사람은 나아갑니다.
 
조요한 새벽의 지평선과 부드럽게 얼룩진 소실점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어요.
 
마치 아득한 미래처럼. 이루지 못한 약속처럼.
 
또는 어떠한 가능성처럼.
 
선형적으로, 아니 비선형적으로…
 
...
 
도시 속.
 
덩그러니 빈 도로는 마치 이계로의 문턱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러셀은 아주 천천히 속도를 줄인 끝에 차를 멈춰 세웁니다.
 
저 너머로 동이 터 오는데 세상은 놀랍도록 적막합니다.
 
서로의 숨소리만이 아주 크게 들린다는 착각을 자연히 일으킵니다.
 
마치 두 사람만이 텅 빈 우주에 버려진 것처럼,
 
... ...
 
핸들에 한 손을 얹은 러셀은 한참이나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몇 번인가 달싹이던 입 사이로 힘겹게 소리를 얻고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내 곁에, 있겠다고 했지. 리디안. 난 널 이대로... 잃어버릴 생각 따위 안 해.
한 인간의 지독한 열망을 우주가 들어준다는, 싸구려 영화에나 나올 법한 흔해 빠진 이야기. ...그딴 건 안 믿었는데 말이야. (헛웃음을 흘리며, 핸들의 십자가 장식을 매만집니다)
흔한 세월과 흔한 마음. 너덜너덜해진 채로 쓰레기장에나 뒹굴 법한 것들이지. ... ...하지만. 나도... 가끔씩은 그런 위안을 얻고 싶었던 때가 있었어. 나도, 살다살다 제 발로 성당에 걸어들어갈 줄은 몰랐지.
... ...그런데, 내가 말하려고 하는 건 그깟 위안 따위가 아냐. (십자가에서 손을 떼어놓곤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곁에 있는 이를 바라봅니다) 당장은 헛소리라고 여길진 몰라도, 우리는 실제로... 영원을 가질 수 있어.
 
리디안 K. 엔데:....제 허튼소리가 듣고 싶어서 하는 말입니까. (잠자코 듣다 대꾸합니다. 얇은 셔츠 차림으로 팔짱을 꼈습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아니. ...나는 네 진심을 듣고 싶어. (그의 말을 단호하게 잘라내고는) 간단히 말하자면, 끝나지 않는 드라이브를 하는 거야.
딱, 이 자동차 한 대 분의 공간. 난 이 공간을 완벽히 닫힌 시공간으로 만들 수 있어. ...네가 있을 자리를, 이 세상에서 오려내어 박제하는 거야.
그리고, 그 곁에... 나도 있을게. 우린 단 둘이서, 영원히 과거에 얽매여 괴로워하지도, 미래의 이별을 두려워하지도 않겠지. 허튼 소리라면 질리도록 들어줄 테니까. (손을 들어, 리디안의 뺨에 살며시 가져갑니다) 핏기가 도는 따뜻한 삶과 숨과 목소리와 생명. ...그게 영영 우리의 몫이 될 거야.
 
리디안 K. 엔데:(러셀의 손에 뺨을 기댑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군요. (그저 즐겁다는 듯 미비한 미소를 띤 채입니다) 데클란이 그런 바보 같은 말을, 대놓고 한 적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쩔까요. ....꿈이라고 해도 즐거운 말이네요. 데클란과 영원히 드라이브라니. (그의 말을 진심으로 믿지는 않지만, 우습게 여기지는 않는 투입니다. 이 지독한 현실도, 흉터도, 쉽게 끊지 못하는 과거도 모두 버리고.... 그리고,)
어디든 갈까요. 데클란, 제 전부를 당신이 가졌잖습니까. 원하는 대로 하죠. (나른한 눈을 감았다 뜨며, 맹목적인 사랑을 담아 대꾸합니다. 이것만큼은 명백한 진심입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그걸 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지도 몰라. 그래, 차라리 꿈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적어도 시답잖은 병 따위로 네가 사라지게 되는 일도 없을 거야. (뺨을 훑는 손길이, 곧 힘없이 떨어져 어깨에 닿습니다) ...그딴 건 전부 잊고, 영원 속으로 숨어 버리자. 시간도 세상도 등지고. ...도망치자.
...그건, (원하는 대로, 라는 말에 리디안의 어깨를 세게 움켜쥡니다) ...그 대답은. 네가 바라는 게 맞지? 그렇다면, ...정말로. 내가, 네 전부를 가져도 되는 거지. ...그렇지? (마치 애원하는 듯이, 몇 번이고 되묻습니다)
 
리디안 K. 엔데:....당신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러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삶이 부서져 내리고, 태양에서 등을 지고. 영원한 겨울로 도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빛나는 재능을 앗아가게 되는 일. 이런 망가진 인생에 그의 숨을 의탁하게 되는 일에도. 지금이라도 자신은 잊고 도망가라며 외치고 싶지만, 역시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그와 있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저를 비난하거나 모멸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마지막 남은 사랑을 저버리고 싶지 않기에. 그것이 가시밭길이라고 하더라도. 바르르 떨리는 주먹을 꾹 쥡니다. 미안합니다, 데클란) 네.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아. 이렇게라도 당신을 소유하고 싶어. 눈을 감고 어깨를 가만 맞붙입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 ...리디안. ...리디안... ... (소리 없이 흘러내린 눈물이 그의 어깨를 천천히 적십니다. 이다지도 소유하고 싶었던 것을 손에 넣었음에도, 어쩐지 먹먹한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 하염없이 슬픔이 쏟아져 내립니다. 그래, 이깟 슬픔 따위는 이 좆같은 세상에 전부 흘려보내고. 우리는 누구보다 깨끗해진 채로 우리만의 영원을 살아갈 테니까. 가족. 취미. 재능. ...피아노. 지금껏 누려왔던 건반 위의 세계 같은 건 희미하게 바스라져 기억 속에서 잊혀져갑니다. 오직 눈 앞의 상대와, 그와 함께했던 나날들. 기억. 추억. 씁쓸하게 잔존했던 감정들. 그것들만을 오롯이 끌어안은 채로. ...사랑해. 그러니, 영원이란 족쇄와 함께, 나와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줘. ■■의 ■■따위는 내 알 바 아니야. 그러니까... ...) ...응. 나도.
 
...
 
그래요, 도망쳐 버립시다.
 
낮밤없이 손목을 기워대는 바늘과, 그의 슬퍼하는 낯.
 
다가오는 종장에 쓰일 문장을 고르는 일 따위는 전부 내던지고.
 
이 빠진 영원 속으로 숨어 버립시다.
 
당신의 대답이 떨어지자, 그는 짙게 떨리는 한숨을 한참에 걸쳐 내쉬었습니다.
 
천천히 엑셀을 눌러 밟는 동작이.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드라이브의 처음과 꼭 닮아 있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도 모를 만큼.
 
현실감이라고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도, 이걸로 마지막일까요.
 
도시의 불빛으로 얼룩진 낯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갖은 감정이 빛과 그림자처럼 번져 흐릅니다.
 
불안한 환희, 애틋한 사랑, 처절한 맹목.
 
그 어떤 언어로도 이름붙일 수 없는, ... ...
 
한데 녹아 엉긴 색색의 사탕 같은 빛들을 봅니다.
 
두 사람을 태운 차는,
 
어느덧 시작으로부터 꼭 아홉 번째 다리에 이르릅니다.
 
녹인 태양을 엎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지평선 끄트머리가 온통 빛에 물들어 있습니다.
 
그 순간,
 
러셀이 당신의 한 손을 부드럽게 잡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궤적을 그리며, 그 입이 여닫힙니다.
 
(To GM): 미안. 이건, 내 지독한 이기심이었어. ...리드.
 
그게, 당신이 기억하는 한 마지막 시야였습니다.
 
...
 
.
 
눈을 감았다 뜨면, 일순 귀가 먹먹합니다.
 
어딘가에,
 
도달했습니다.
 
위화감이 엄습하고,
 
온몸의 신경이 곤두섭니다.
 
완벽한 고독 속에 버려진 것처럼,
 
광막한 우주에 홀로 남은 것처럼.
 
단정히도 자리하던 빗장 너머의 세계,
 
그 어떤 모독적인 상상으로도 구현할 수 없는 적막,
 
무한한 암흑과 정적인 혼돈,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공허 속에.
 
하염없이 이질적인 존재로,
 
맥박이나 호흡 따위를 가지고... ...
 
당신은, 존재합니다.
 
SanC 1d2/1d8
 
리디안 K. 엔데: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32
판정결과: 보통 성공
1
 
그리고.
 
끔찍하리만치 잔잔한 공허 속의 당신을 건져 올리듯,
 
붙잡은 손길을 느낍니다.
 
부드럽고 단단한 악력과 온기,
 
맥박이 차례차례 전해져옵니다.
 
흐린 시야를 닦아내려는 노력으로 연신 눈꺼풀을 여닫으면.
 
서서히 선명해지는 그가 눈 앞에 있습니다.
 
그는, 여지껏 본 적 없던 웃음을 지어보입니다.
 
이 작고 고독한, 통제된 영원 속에.
 
오로지 우리만이 서로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어쩌면,
 
방금까지 우리가 살던 세상도 꼭 이것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 않던가요.
 
무한한 공허 속에서,
 
오로지 작고 둥근 별 하나만이 우연히 젖고 태어나 숨을 쉬고.
 
누구도 듣지 않는 외침을 뱉듯이 ... ...
 
...
 
그러니 분명, 누구도 외롭지만은 않을 거라고.
 
신기루처럼 녹아 흐르는 마음들이 달고 찹니다.
 
단 둘의 드라이브는 마치 마지막처럼, 그리고 처음과도 같이.
 
...
 
.
 
사진
 
END 3
 
나를 거쳐서 길은 버림받은 자들 사이로
 
Per me si va tra la perduta gente.
 
 
 
러셀 데클란 켄트 생존?
 
리디안 K. 엔데 생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