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latte 프사 / 헤더 @말차님

최강의 클리셰 데우스 SF 마키나

 

원본 시나리오 https://dear-heresy.postype.com/post/7288683

 

KPC 러셀 데클란 켄트

PC 리디안 K. 엔데

 

 
리디안 K. 엔데:
위협
기준치: 45/22/9
굴림: 65
판정결과: 실패
 
.
 
얼음송곳 같은 눈발이 흩날리고
 
칼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휘몰아칩니다.
 
바닥에 널브러진 몸은 얼어붙은 설원에 버려진 채 시체가 되겠지요.
 
최강의 인류라는 명성이 애석하게도,
 
무덤 하나 없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입니다.
 
가물가물해지는 시야 사이로, 당신은 말했습니다.
 
.
 
.
 
사진
 
╔═══ -ˋˏ .·:·.⟐.·:·. ˎˊ- ═══╗
 
최강의 클리셰
 
데우스 SF 마키나
 
╚═══ -ˋˏ .·:·.⟐.·:·. ˎˊ- ═══╝
 
.
 
KPC 러셀 데클란 켄트     PC 리디안 K. 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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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싸라기눈이 흩날리는 음울한 검은 숲.
 
이파리를 떨구고 빈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 위로 흰 눈이 소복하게 쌓였습니다.
 
설원이라고 불러도 모자람 없는 넓은 공터.
 
당신과 러셀은 새하얗게 얼은 바닥을 딛고 섭니다.
 
.
 
안전지대 탈환 작전으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간 잘 지냈나요?
 
두 사람은 도주 후, 정처없이 헤매던 중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서로의 안부를 물을 시간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시작부터 과격하지만... ...
 
두 사람의 맞은편에는 33마리의 크리처가 버티고 서 있습니다.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두 사람은 크리처 무리와 대치합니다.
 
.
 
 
약식 크리처 대항 전투 룰을 따릅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귀찮다는 듯, 제 손에 든 총의 탄환을 장전합니다) 야, 엔데. 저깟 놈들은 빨리 손 봐주고 가자!
 
리디안 K. 엔데:(숨을 내뱉자 짙은 흰 숨이 검은 숲으로 너울져 퍼집니다. 손끝이 아릴 정도의 추위이나, 제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입니다. 차가운 총신을 들어 크리처를 겨눕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대 크리처 살상탄
기준치: 75/37/15
고장: -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피해: 21
 
러셀 데클란 켄트:같은 생각이라며? (리디안이 쏜 살상탄이, 크리처 무리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가 터지는 것을 목도하며 혀를 찹니다)
이래서야. ...역시 나한테 평생 못 이기는 놈 답네. (성격 나쁜 미소를 지으며, 크리처에게 총구를 겨냥합니다)
 
리디안 K. 엔데:(총구를 내리며 어깨를 으쓱합니다) ...동족을 죽이는데 망설임이 들었나 보군요. (같잖은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며)
 
러셀 데클란 켄트:
대 크리처 살상탄
기준치: 75/37/15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13
지금 농담할 때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이를 빠득, 갈며 대꾸하면서도 정확히 목표를 조준합니다)
9
 
: 남은 크리처의 수 : 20
 
리디안 K. 엔데:(크리처를 물리치는 러셀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 여전한 실력이군. 그의 곁에서 지내게 된 지 한달이 되었음에도, 매번 놀라는 실력입니다)
(곧 크리처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옵니다.
 
크리처:그륵, 그르륵... ... (금속들이 맞부딪히며 기이한 소리를 내곤, 리디안에게 돌격합니다)
1
 
러셀 데클란 켄트:이제 최강의 크리처님이라도 된다고, 제대로 피하지도 않는 거냐? 참 나. (어깨를 으쓱합니다)
 
리디안 K. 엔데:(한 팔로 크리처를 막아낸 뒤, 걷어찹니다. 쓰라린 상처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총을 겨눕니다. 뒤처지고 있을 수만은 없지. 머리는 오직 제 목표만을 되뇌고 있습니다)
대 크리처 살상탄
기준치: 75/37/15
고장: -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17
 
딱히 어려울 것 없는 전투입니다.
 
리디안의 저격에 수많은 크리처들이 부서지고, 조각납니다.
 
그야, 이런 자잘한 전투는 두 사람이 내내 해오던 일인 걸요.
 
우지끈, 와장창, 뚝. 그리고 쿠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금속들이 흩어져 천지에 뿌려집니다.
 
고통도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것들은,
 
눈물 대신 윤활유 따위를 흘리며 눈밭을 더럽힐 뿐입니다.
 
.
 
여기까지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입니다.
 
그러나... ...
 
생존 크리처가 과반수 미만으로 떨어져도,
 
그것들은 도망가지 않습니다.
 
낡은 경첩이 흔들리는,
 
불길한 소리만 잿빛 하늘을 긁어댑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끝났네. 이제 슬슬 불 피워둔 데로 복귀하자고. 배고파 뒤지겠어. (기이함을 눈치채지 못한 채 하얀 입김을 퍼뜨립니다)
 
리디안 K. 엔데:... (말없이 연기가 가늘게 뿜어져 나오는 총구를 내려보다 거둡니다. 눈이 가늘게 뜨입니다. 어딘가 이상합니다. 고개를 들어 도망가지 않는 크리처를 응시하다 가리킵니다) ...저쪽을 보십쇼. 데클란. 이상하지 않습니까.
 
러셀 데클란 켄트:뭐가? 덜 부서진 놈들은 다 튀었겠지. 하여간 넌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다니까... (리디안을 흘겨보다, 곧 그가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두 사람이 이상함을 감지하는 순간.
 
분명 부서졌던 기계가 다시금 재생합니다.
 
똑똑히 핵을 파괴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체를 되찾은 것들은.
 
아까와 똑같이 날카롭고 흉흉한 금속 테두리를 빛내고 있습니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광경입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리디안 K. 엔데: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
 
이토록 확실한 대전제가 무너지다니.
 
그 사이 크리처가 진화한 걸까요.
 
아니면, 두 사람의 솜씨가 엉망으로 퇴화한 걸까요.
 
당신이 부활한 크리처를 자세히 살피면,
 
불규칙하고 정형화된 모양새 사이,
 
핵은 분명히 새빨갛게 빛나고 있습니다.
 
매끄러운 원기둥과 원뿔, 구로 이루어진 금속형 크리처는.
 
날카로운 가시를 표면에 두른 채, 수은처럼 자유자재로 형태를 변화시킵니다.
 
...
 
방금 전은 실수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부순다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소멸할지도 모르죠.
 
리디안 K. 엔데:(이런 일은.. 존재해선 안됩니다. 또한, 실수여도 안될 일입니다. 옅게 눈썹을 꿈틀거리다 러셀을 제 뒤로 보낸 뒤, 총을 들어 사격합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뭐, 뭐야...?! (조금은 당황한 모양새로, 항의할 새도 없이 리디안의 뒤로 밀려납니다)
 
리디안 K. 엔데:
사격(라/산)
기준치: 75/37/15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탕,
 
탄환은 완벽히 크리처의 핵에 직격합니다.
 
쾅!
 
폭탄이 터지는 듯 요란한 굉음과 함께,
 
크리처가 나가떨어집니다.
 
그리고, 부서진 파편 사이로... ...
 
리디안 K. 엔데: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75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핵의 생김새가 어딘가 이상합니다.
 
여태 당신이 알던 것과 달리,
 
긴 바늘과 둥근 태엽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꼭 ... ...
 
일전의 핵은 하나의 구로 이루어져 있어 바로 파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것은,
 
정교한 부품들이 얽힌 모양새로,
 
파괴하더라도 한 번에 박살내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 어떻게 해야 할까요.
 
리디안 K. 엔데:(힐끗 러셀을 바라봅니다) ...당신은 주의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러니 제가 4마리나 더 앞선 거겠죠. (고개를 까딱이며 크리처에게로 다가가 핵을 관찰합니다) 당신을 이길 날도 머지않았군요.
 
러셀 데클란 켄트:와... ... 쫌생이같이 구는 꼴이 딱 아재같네. (질렸다는 듯이 대꾸합니다)
 
리디안 K. 엔데:(가벼운 투로 중얼거리곤) 이쪽으로 오십쇼. 핵이지만, 핵이 아닙니다. ...시계처럼 보입니다만..
 
러셀 데클란 켄트:... 저번에는 내가 10마리 더 잡았거든? (결국 속 좁은 발언을 내뱉고는, 리디안의 곁으로 투덜거리며 다가갑니다)
핵이지만 핵이 아니라는 게 뭔 개소리야. 수수께끼 놀이라도 하냐? (팔짱을 낀 채로 핵을 내려다봅니다) ...언제까지 멀뚱히 보기만 할 거야? 부서질 때까지 터뜨려야지...!
 
리디안 K. 엔데:...조금 더 자세히 접근해보죠. (핵을 들어 이리저리 만져봅니다)
손놀림
기준치: 10/5/2
굴림: 16
판정결과: 실패
 
러셀 데클란 켄트:(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리디안의 행동을 빤히 노려봅니다)
 
리디안 K. 엔데:(러셀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1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시계와 같은 형태의 핵이라면,
 
저 세밀한 부품들을 모두 흩어두면 핵으로서 기능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재생에는 기껏해야 3분 남짓이 소요됩니다.
 
개체에 따라 월등히 빠른 예도 있으니,
 
결코 여유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내 말 안 들리냐? 당장 박살내자고!! (리디안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짜증이 솟구치는 듯 으르렁댑니다)
 
리디안 K. 엔데:(귀가 따가운지 눈가를 찌푸리고는) 알겠습니다. 당신답게 무식한 방법이군요. (핵을 바닥에 내려두고, 총을 듭니다)
부서질 때까지 공격하면 부서지겠죠. ...잘되지 않는다면, 의견을 낸 데클란의 책임입니다. (태연하게 책임을 전가하며 총을 연사합니다)
사격(라/산)
기준치: 75/37/15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러셀 데클란 켄트:지금 협박하는 거냐, 새꺄...?! (눈밭에 우수수 박히는 총알에 주먹을 쥐고 흔듭니다)
 
리디안 K. 엔데:(탕, 위협하듯 총알이 비껴갑니다만 본인은 괘념치 않습니다. 어차피 이런 무식한 방법에 정교하게 힘을 들인다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여하간 시끄러운 성격이라니까.. 같이 다니면 다닐수록 제가 가졌던 환상이 사라지는 기분입니다. 분명히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상대이지만, 지금은 그저 챙겨줘야 할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협박이 통하기나 하는 상대입니까. 당신이. (난사를 멈추고, 잠시 러셀을 돌아 봤다가 다시 총알을 박아 넣습니다)
사격(라/산)
기준치: 75/37/15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사격(라/산)
기준치: 75/37/15
굴림: 79, 58, 43
+2: 보통 성공
+1: 보통 성공
  0: 실패
-1: 실패
-2: 실패
 
숱한 난사 끝에,
 
최강의 크리처인 당신이 기어코 핵을 박살 내는 순간.
 
...
 
.
 
긴 이명이 들리고,
 
심장이 쿵쾅거리더니.
 
"야, 엔데...!"
 
비명 같은 외침과 함께,
 
눈앞이 핑 돌며... ...
 
.
 
.
 
...
 
⋆⍋ ︻╦╤─ ⍋⋆
 
...
 
폐부에서부터 강한 압력이 치솟고,
 
이내 거센 기침 소리와 함께.
 
어떤 덩어리가 목구멍을 열고 왈칵 쏟아집니다.
 
그와 동시에,
 
당신은 하이얀 눈밭에서 눈을 뜹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을 듯한 겨울날의 추위 속,
 
회색 하늘 위로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송이들.
 
심장은 여전히 정신없이 쿵쾅쿵쾅 날뛰고.
 
끔찍한 비린내에 머리가 아픕니다.
 
불쾌한 기분에 두 팔과 다리를 움직여보면,
 
다행일지, 당연한 것일지. 전부 멀쩡합니다.
 
.
 
펼쳐진 설원은 꽤 익숙한 광경이지만,
 
리디안 K. 엔데:....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봅니다. 익숙한 광경입니다. 하지만, 누워 있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데클란이 아니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봅니다)
 
주변은 온통 눈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나무 한 그루는 커녕,
 
시야를 들고, 들어도.
 
끝없이 펼쳐진 설원이 전부입니다.
 
아까 그곳에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진 걸까요.
 
바람의 냄새가 전혀 다릅니다.
 
더 건조하고, 더욱 차가운 내음.
 
리디안 K. 엔데:... (데클란은 어디에 있지, 그를 찾아 주위를 둘러봅니다) ...데클란, 거기 있습니까.
 
대답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눈밭에 파묻히기라도 한 걸까요?
 
최악의 상황이라면,
 
폭발에 휘말려 흩어지고 만 것일지도 모릅니다.
 
...
 
몸을 일으키면, 문득 자신이 입고 있는 복장이 눈에 띕니다.
 
여태 입고 있던 군복은 온데간데없고,
 
낡은 자켓과 검은 티셔츠 차림입니다.
 
어쩐지 낯익은 복장이기도 한데... ...
 
날이 춥네요.
 
리디안 K. 엔데:(인간인 그가 폭발에 휘말렸다면, 무사할 리가 없습니다. 크리처였다면 모를까. 혀를 차며 눈에 묻히지 않았을 흔적을 찾습니다)
(옷차림은 아무렴 상관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흰 설원을 살펴봅니다)
 
하얀 눈밭을 살피면.
 
당신이 토해낸 덩어리가 보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
 
시계입니다.
 
금속 재질로 은색을 띠고 있으며,
 
내부에 든 것은 새빨갛게 빛나는 점액질과... ...
 
복잡다단한 태엽들입니다.
 
크리처의 핵과 똑같이 생겼군요.
 
작동하지 않습니다.
 
허리를 숙여 시계를 집어들다 보면,
 
리디안 K. 엔데:
건강
기준치: 99/49/19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상합니다.
 
귀는 먹먹하고,
 
심장은 쿵쿵 뛰는 데다.
 
머리는 조금 어지럽습니다.
 
속은 메슥거리고요.
 
얇은 옷매무새 사이로 스며드는 추위에,
 
오한과 소름이 오소소 돋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허기까지 찾아오네요.
 
리디안 K. 엔데:... (확실히,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합니다. 이곳이 현실인지도 확실치 않다고 느끼고는, 시계를 자세히 살핍니다)
 
왜 추위를 느끼는 걸까요?
 
고통은 왜 이렇게 날카로운 걸까요?
 
AOC의 정예 요원이 된 후 강도 높은 훈련을 거치며.
 
이런 감각에는 무척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심지어, 최강의 크리처가 되어버린 후로는 더더욱.
 
기이함과 함께 시계를 살펴도,
 
딱히 짐작 가는 구석은 없습니다.
 
일단 사라져 버린 러셀을 찾아야할지도 모릅니다.
 
리디안 K. 엔데: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쏟아지는 눈 사이로, 저 멀리...
 
무언가 반짝이는 게 보입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요.
 
리디안 K. 엔데: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 이제 제대로 보입니다.
 
저 아래에 있는 얼어붙은 호수가.
 
리디안 K. 엔데:(기묘하게도 피부를 저미는 추위를 느끼며, 눈발을 헤치고 호수를 향해 걸어갑니다. 아무리 폭발을 견뎠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동떨어진 곳까지 날아올 수가 있는 건가.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곧 모든 의문이 무의미해집니다)
(그래, 언제나 지옥이었지. 그렇게 생각하자 곧 차분해집니다. 사라진 러셀만이 단지 그 사실을 잊게 해주는 인물이었지만, 그가 사라진 지금은 도로 무기력한 엔데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호수를 둘러봅니다)
 
...
 
얼어붙은 호수까지 내려가는 동안,
 
세상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매서운 바람 소리만 귓가를 때립니다.
 
눈밭을 살펴도 자신의 것을 제외한,
 
발자국 따위는 보이지 않습니다.
 
크리처 특유의 작동음이나, 인기척 따위도.
 
눈은 높이도 쌓여 무릎까지 푹푹 빠집니다.
 
그것들을 헤치고 나아가자니 유난히 사지가 무겁고 축축 늘어집니다.
 
천 재질의 바지와 신발도 축축하게 젖어버려서 불편하고요.
 
균형을 잡기 어려워,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히 내려가면... ...
 
얼어붙은 호수의 테두리에 닿습니다.
 
표면은 단단하게 얼어 목을 축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 그래도.
 
호수 건너편 저 멀리에 검은 숲이 펼쳐져 있습니다.
 
호수를 가로질러 갈지, 에둘러 돌아가는 것이 나을지.
 
호수의 표면은 얼음 특유의 결이 생생해 꽤 깊게 언 모양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얼음 위로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봅니다.
 
조금은 앳된 얼굴이네요.
 
지금의 당신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
 
생각을 방해하는 것은 낯익은 기침 소리입니다.
 
뒤를 돌아보면,
 
내려오던 반대 방향으로 둥글게 솟은 눈무덤이 있습니다.
 
딱 사람 하나가 묻힐 크기네요.
 
리디안 K. 엔데:(빤히 호수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다, 기침소리에 고개를 돌립니다. 한결같은 자신의 얼굴입니다. 외양에 신경을 쓴 적이 없으니, 상관이 없다는 얼굴입니다. 미간을 찌푸리며 눈 무덤을 향해 다가가 파헤쳐 봅니다) ...데클란입니까.
 
눈무덤을 헤집으면 그 안에 쓰러진 것은.
 
뺨이 차갑게 얼어버린 러셀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러셀이지만, 러셀이 아닙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앳된 얼굴.
 
그리고, ... 익숙한 군복.
 
AOC의 군복을 입고 있는 러셀은 대 크리처용 살상 무기를 쥔 채 눈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다행히 미약하게나마 숨이 붙어 있군요.
 
리디안 K. 엔데:(러셀을 안고 옷에 묻은 눈을 털어줍니다. 이 정도로 죽을 리가 없는데도, 문득 싸늘해져 숨이 붙어 있는지를 제대로 확인합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 ... (시체처럼 차가운 체온 사이로, 오르내리는 미약한 숨소리가 들립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눈 속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던 걸까요.
 
아무리 흔들고 깨워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선 몸을 데우는 게 급선무일지도 모릅니다.
 
그가 꼭 쥔 채 놓지 않는 대 크리처용 살상 무기에 시선이 가면,
 
당신은 그것을 보는 순간 직감합니다.
 
이건 현재 보급되는 무기가 아닙니다.
 
몸체에 쓰인 모델 넘버는 A-O19-C1015.
 
낡은 자켓과 셔츠.
 
해진 신발마저 어쩐지 낯익습니다.
 
앳된 얼굴의 두 사람은 아무리 봐도 조금 전과는 다르고,
 
무기의 연식은 분명히 4년 전의 것입니다.
 
...
 
리디안 K. 엔데: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크리처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고는 보고받지 못했습니다. 아니면 제 머리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거라고 직감합니다. 편리한 방법이라면, 러셀의 총으로 자살하여 리셋하는 것입니다)
(빤히 품 안에 쓰러진 러셀을 내려보다 총을 집어 듭니다)
 
당신은 그의 총을 집어들며,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갑니다.
 
.
 
...
 
⋆⍋ ︻╦╤─ ⍋⋆
 
...
 
4년 전,
 
당신이 아직 AOC 산하 조직의 말단 군인에 불과했던 어느 날.
 
10년 전 안전지대가 지정되고 생존자들의 대이동이 시작됐습니다.
 
당신 또한 안전지대로 이동 후 보초 생활로 간신히 안온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만……
 
당신이 머물던 안전지대 L시를 담당하던 AOC 정예 요원들은,
 
처음 등장한 생체형 크리쳐로 인해 전멸합니다.
 
방어선이 무너진 안전지대의 지상에는 생체형 크리쳐와 금속형 크리쳐가 어슬렁거리고.
 
당신의 일상이었던 풍경과 문명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
 
그곳에 남은 이들만로는 역부족이었던 탓에,
 
당시 최강의 AOC 요원이었던 러셀은 L시의 피난민을 보호하고 이송하기 위하여 파견됐습니다.
 
이동 도중 예상치 못한 블리자드에 휩쓸려 조난하지만 않았다면 완벽했을 텐데요!
 
.
 
아직 생사를 파악하지 못한 동료를 찾기 위해 벙커에 들어가지 못했던 당신은,
 
크리처를 피하다 안전지대 외곽의 호수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러셀을 처음 만났었습니다.
 
4년 전 일이기에 기억이 완전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이건 결코 잊을 수 없던 기억입니다.
 
러셀과의 첫만남이기도 할 뿐더러, 뼈에 사무치는 추위였는걸요.
 
당신은 기억을 가다듬을 필요도 없이 이다음의 일을 떠올립니다.
 
...
 
이곳에서 왼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커다란 동굴이 있습니다.
 
겨울에 먹을거리가 모자라 동료들과 사냥을 나오게 되면 사용하던 쉼터이기도 했었죠.
 
그때 분명히, 러셀을 업은 채로 그 동굴로 향했습니다.
 
추위를 피하고, 불을 때고... ...
 
그렇게 간신히 러셀을 살려, 다른 AOC 요원들과 합류 후 L시의 피난민을 보호, 이송했었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허무함이 마무리되는 미묘한 감정과 함께 L시를 떠나던, 그 마지막 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것이 당신이 AOC의 더 높은 곳,
 
더 큰 힘을 동경하게 된 계기였을 수도 있겠죠.
 
...
 
.
 
자, 이제 어떻게 할까요.
 
당신은 이제 그 때의 당신이 아닙니다.
 
얼음송곳 같은 눈발이 흩날리고,
 
칼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휘몰아칩니다.
 
품 안에 있는 이는 당신이 구하지 않는다면 얼어붙은 설원에 버려진 채 시체가 되겠죠.
 
최강의 인류라는 명성이 애석하게도,
 
무덤 하나 없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최강의 크리처니 뭐니 하는 끔찍한 실험의 희생자가 되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리디안 K. 엔데:... (끔찍한 꿈입니다. 아니, 설령, 알 수 없는 크리처의 능력이 맞아 되돌아온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앗아간. 자신의 전부를 잃은 날을. 괴로움에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더라도, 상처는 흉터로 남아 지워지지 않습니다. 제 얼굴에 붉게 그인 흉한 것처럼..)
(이미 소중한 것들은 전부 잃은 채입니다.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자신이 발버둥 쳐봐야 어느 것이 나아지겠습니까. 품 안의 러셀을 안고 일어섭니다)
(그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갈망했는지도, AOC에게 유린당해 끔찍한 시간을 보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이대로 잃는다면 자신에게는 더욱이 남은 것이 없습니다. 동경추악한 질투를 원동력으로 4년을 죽은 것처럼 살지 않았습니까)
(그마저 없다면, 혼자 살아남은 죄를 갚아야 할 의지가 들지 않습니다. 이기적이지만, 러셀의 의지는 무시합니다. 그를 데리고 동굴로 향합니다. 품에 닿는 싸늘한 온기에 심장이 옥죄입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릅니다. 이 걸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되돌아가는 일은 없습니다. 아, 결국 나는 죄를 짓는 생이로군)
...미안합니다. 데클란.
 
리디안 K. 엔데:(죄악감이 전신을 짓누릅니다)
 
...
 
당신의 속삭임은, 과연 그에게 닿았을까요.
 
결국, 당신은 이기적으로 결정지은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피부가 갈라지는 것처럼 고통스럽습니다.
 
최강의 인류도, 최강의 크리처도 되지 못한 신체는 연약하기 짝이 없네요.
 
안아 든 러셀의 무게가 자꾸만 무릎을 꺾습니다.
 
.
 
걷고, 또 걸음을 옮기고.
 
기억을 따라 걸어도 동굴은 나오지 않습니다.
 
분명 얼마 걷지 않았던 것 같은데... ...
 
기억이 흐려진 걸까요.
 
정신을 잃은 러셀은 갈수록 무겁고 걸리적거리기만 합니다.
 
당신의 체력이 혹독한 추위 속에서 한계치에 다다랐을 때,
 
커다란 동굴의 입구가 보입니다.
 
저곳에서 눈과 바람을 피할 수 있을 거예요.
 
바닥이 좀 딱딱하겠지만...
 
설원에 눕는 것보단 훨씬 호사스럽겠죠.
 
...
 
동굴의 내부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어둑하고 서늘합니다.
 
벽에는 꺼진 횃불이 걸려 있고,
 
짐승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높은 곳에 선반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모포, 난로와 비상식량 따위도 군데군데 흩어져 있습니다.
 
리디안 K. 엔데:(사람은 모두 스러져 빛을 잃었는데, 공간만은 제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와 동일합니다. 향수가 슬픔이 되어 자신을 좀먹기 전에 러셀을 모포 위에 올려둡니다. 불을 피우기 위한 기름과 장작을 구비해 두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기억이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기준치: 60/30/12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당신은 낡고 얇은 모포 위에 러셀을 내려둡니다.
 
몇 장 남지 않은 모포에선 케케묵은 냄새가 조금 풍깁니다.
 
기름을 넣어 불을 때는 구식 간이 난로 안에... 안타깝게도 기름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대신 한쪽에 쌓인 마른 장작 더미는 보이네요.
 
리디안 K. 엔데:(자켓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찾아봅니다. 흡연자인 자신이 라이터를 두고 다닐 리 없습니다)
기준치: 60/30/12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다급히 이동하는 사이 주머니에서 떨어진 모양인지,
 
라이터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리디안 K. 엔데:(선반을 확인합니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높은 선반에 손을 뻗어 훑으면,
 
기름이 얼마 남지 않은 라이터 하나가 손에 잡힙니다.
 
리디안 K. 엔데:..비품은 반드시 채워 두라고 했지 않습니까...(듣는 이가 없는 푸념을 중얼거리고는 라이터를 집어 횃불에 불을 붙입니다. 또한 장작더미를 가져와 러셀의 근처에 모닥불을 땝니다)
 
횃불에 불을 붙이면 천천히 내부가 밝아져옵니다.
 
모닥불을 땐 덕에, 추위도 한결 가십니다.
 
물론 몸이 아직도 으슬으슬 떨리긴 하지만... ...
 
러셀의 상태를 보면,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입니다.
 
꽁꽁 언 몸으로 젖은 옷을 계속 입고 있어 체온이 계속 떨어지는 듯하네요.
 
리디안 K. 엔데:... (작게 한숨을 내쉬곤 러셀의 젖은 군복을 벗겨내 한쪽에 둡니다. 제 겉옷도 벗어 모닥불에 말리며, 러셀을 품에 안고 모포를 덮습니다)
(일어난다면 한소리 듣겠군. 그러나 이 외에 효과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러셀의 찬 피부를 제 체온으로 녹입니다)
(물끄러미 내려본 얼굴은, 무척이나 앳되고 어려. 그에게 기대고, 원망하며 분노를 삭인 세월이 민망하게 느껴집니다)
 
당신은 러셀과 모포를 덮은 채, 생각에 잠깁니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당신은 분명히 숲에서 크리처와 마주했었죠.
 
그리고 핵을 부숴도 되살아나는 변종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핵의 부품을 흩어 놓기 위해 사격한 순간... ...
 
요란한 초침 소리와 함께, 암전.
 
그 다음은 4년 전의 어느 날.
 
핵을 박살내던 순간 신체 내부에서 격렬한 반응이 일었던 것으로 보아,
 
크리처 간의 무언가가 공명을 일으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토해낸 시계는,
 
...역시 크리처의 핵이겠죠.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바늘은 어디 있는 걸까요.
 
아직 뱃속에 있을까요?
 
마저 토해내서, 합체해야 돌아갈 수 있다거나?
 
그런 헛된 의문을 품은 채,
 
눈꺼풀이 조금씩 무거워집니다.
 
...
 
.
 
보글보글.
 
타닥타닥.
 
눈보라와 어울리지 않는 조용하고 얌전한 효과음이 동굴 안을 채웁니다.
 
잠깐, 무언가 이상한 것 같은데... ...
 
무거운 눈꺼풀을 들면, 당신 품에 있던 이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 ...깼냐?
 
고개를 들면,
 
모닥불 앞에 앉아 있는 러셀이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바라봅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죽다 살아나니까 존X 허기지네. (비상식량을 집어넣은 듯, 보글보글 끓는 냄비의 내용물을 훑어봅니다) ...그래서, 넌 누구냐?
 
리디안 K. 엔데:(눈꺼풀을 비비고 늘어진 앞머리를 쓸어 넘깁니다. 그저 몸을 녹여줄 생각이었는데, 저도 모르게 잠이 든 모양입니다. 이러니, 이러니 시간이 지나도 러셀의 발끝에 미치지 못하는 모자란 사람인 채인 거겠지)
... (멍한 얼굴로 러셀의 말을 듣다가 눈을 감습니다. 아무래도 데클란은, 기억이 있는 채는 아니군.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깁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 줄 모르고 있으니)
(자신을 원망하는 그의 표정은 어째서인지, 보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되살아나지 못함을 앎에도 리셋의 충동이 일 것 같다고. 그래봐야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크리처를 피해 도망가려다 당신을 발견했습니다. 누구냐고 묻는다면.. 일반 시민이라고 해두죠.
 
러셀 데클란 켄트:겨우 눈떠보니까... 웬 미친 변태 새끼가 벌거벗고 날 끌어안고 있는데. 그대로 모가지를 비틀어버리려고 한 걸 간신히 참았다, 새꺄. (뜨거운 냄비 안을 휘저으며 투덜거립니다)
...뭐, 아무튼 살았으니 된 거지. (턱을 괴곤 자연스레 욕지기를 읊습니다) 미친 눈보라 때문에 송장 될 뻔했잖아. 담배도 다 푹 젖었고.
너, 내가 누군지는 아냐? (돌연 질문을 던집니다)
 
리디안 K. 엔데:(고요에 익숙해져 있던 귀가 따갑습니다.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의 목소리에 안정감을 얻습니다)
... 그렇죠. 당신이 누군진 몰라도 은인을 보고 변태 새끼라고 칭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겁니다.
(상황을 가벼이 즐깁니다. 긴장과 죄악감으로 힘이 들어간 몸이 느슨해집니다) ...말투를 보니 알겠군요. 싹수없기로 유명한 아이돌... 어거스트 아닙니까?
 
러셀 데클란 켄트:내 손짓 하나에 네 심장이 꿰뚫릴 수도 있거든? 오히려 내가 널 살려준 걸 고맙게 여기라고. (초콜릿 바를 뜯어 입에 넣으며 대꾸합니다)
... ...뭔 X소리야? (리디안의 대답에 눈을 게슴츠레 뜨곤) 날 모르는 걸 보니, 뇌에 든 게 없는 건 알겠네. (아주 당당한 태도로 셔츠 위에 다 마른 군복을 걸칩니다)
L시에서 온 거냐? 마침 그쪽으로 가고 있었으니 잘 됐네. 내가 친히 보호해주는 걸 영광으로 여겨. (초콜릿 바를 우물거리며) ...뭘 꾸물거려? 빨리 처먹어. 곧 이동할 거니까.
 
리디안 K. 엔데:... (그가 도착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만, 일부러 개입하지 않습니다. 마른 옷을 주워 입고 비상식량으로 배를 채웁니다)
 
당신은 동결 건조된 식량과 냄비 속에서 끓던 수프로 끼니를 때웁니다.
 
그저 그런 푸석한 맛이지만,
 
어떤 의미에선 특별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네요.
 
리디안 K. 엔데:1
 
러셀 데클란 켄트:배 다 채웠냐? 그럼 가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기를 손에 쥔 채 군화로 리디안을 툭 차고 앞서 걸어나갑니다)
 
리디안 K. 엔데:.... (제게는 어떤 음식이든 그저 그렇지만. 확실히 특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막 동굴을 나가기 직전, 불씨가 있던 자리를 돌아봅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장소입니다. 이곳에서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안녕히 계십쇼. 작게 입술을 달싹거리다 러셀을 따릅니다)
 
.
 
...
 
⋆⍋ ︻╦╤─ ⍋⋆
 
...
 
최강의 인류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러셀의 회복력은 가히 놀라울 정도입니다.
 
꽁꽁 얼어서 괴사를 걱정해야 했던 피부는 금세 핏기가 돌고,
 
뻣뻣하던 손끝은 부드럽게 총을 움켜쥡니다.
 
동굴 밖으로 향하면,
 
블리자드는 지나갔지만 바람은 여전히 흉흉합니다.
 
눈이 멎은 게 그나마 다행인 수준이네요.
 
러셀 데클란 켄트:... (앞장서 걷다가, 아무래도 비실비실해보이는 리디안이 신경쓰이는 듯 힐끔 뒤를 돌아봅니다) 야, 좀 가까이 와 봐.
 
리디안 K. 엔데:민간인을 방패로 쓸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무표정하게 러셀의 곁으로 척척 걸어갑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입만 산 녀석을 살려놓기도 피곤하네... ... (미간을 잔뜩 구기며 짜증을 냅니다)
그래서, 지금 L시 상태는 어떠냐? 하여간, AOC 새끼들은 후처리가 똘추라니까. (마구잡이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넘기며 말을 겁니다)
 
리디안 K. 엔데:... ...어떻냐니. (울컥, 하고 발끝부터 무언가 일렁이는 거북한 감정을 느낍니다. 불시에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엉망으로 된 폐허, 나뒹구는 시신들과 크리처의 잔해. 그 참혹하고 비참한 광경을)
그쪽을 구제하기 위해 오셨다면, 이미 늦었습니다. ...크리처의 공격으로,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테니까요. (턱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끼며, 단어를 끊어 짓씹듯 발음합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늦었어? 난 그런 말이 존X 지겹더라. 세상에 늦은 일 따위는 없어. 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면 별 수 없지만. (태연하게 대꾸합니다)
구제 좀 못하면 어떠냐? 어쨌든 내 임무는 피난민 보호 및 이송이니까. 적어도 한 놈은 건졌네. (힐끔, 리디안 쪽을 보곤) ...네 목숨은 부지했으니 좀 더 안도하지 그래? (의아한 목소리로)
어쨌든 L시 작전 본부까지는 가야 해. 난 여기서 뒤지게 걸어서 안전지대인 O시까지 갈 생각 따위 없다고.
... ...그나저나, 길이 대체 어디야?! X발, 다 똑같이 생겨먹어서 X도 모르겠네...!! (설원 위에서 분개합니다)
 
리디안 K. 엔데:하.. (웃는 듯, 우는 듯 일그러진 얼굴이 실소를 뱉자 흰 숨이 퍼집니다. 당신이라면 그렇게 속 편하게 말할 수 있겠지. 이해합니다. 타인의 일이기에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러셀의 입으로 나선 말은 머리로는 이해하나, 감성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의 입이기에 더욱 아프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내가 아니라 그들을 살리지 그랬습니까. (갈무리하지 못한 원망을 쏟아내고는, 눈가를 꾹 누릅니다. 또다시 못난 모습을. 혀를 차며 손을 떼니 본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옵니다)
(이곳이 4년 전의 L시라면) ...길은 내가 압니다. 안내할 테니 따라오십쇼.
 
러셀 데클란 켄트:... ... (리디안의 중얼거림을 놓치지 않고, 마치 같잖은 것을 보는 듯한 시선을 보냅니다. 그야, 군사학교에 입학하고 지금껏 어떤 고민도 없이, 최강의 인류로서의 생활을 보냈기에. 민간인의 나약한 마음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있었다면, 아마 정신이 으깨진 제 몇몇 동료들처럼 금세 퇴역하고 말았을 겁니다)
(언제나, 오로지 내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인생 동안 단 한번도 꺾이지 않은 제 신념을 다시 떠올립니다) 이미 죽은 녀석들 따위 신경 써서 뭐하냐? 어쩌겠어, 살아버린 건 넌데. 오히려, 그 와중에 살아남았으니 기뻐야 하는 거 아냐? 웃기는 녀석.
그래, 이제야 쓸모가 생기네. (입꼬리를 올리며 리디안을 따라 걸어갑니다. 여전히, 주위를 경계하며 주시합니다.)
 
그렇게 L시로 향하다 보면,
 
리디안 K. 엔데: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3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의 시야에 무언가 밟힙니다.
 
눈에 파묻힌 나뭇가지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부자연스럽게 꺾여 있습니다.
 
마치, 어딘가로 향하는 길을 표시하는 듯이.
 
그 모습에 러셀이 조금 반가운 듯한 눈치를 보입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이거, 그 멍청이들이 표시해 둔 거네. (동료를 이야기하는 듯 어깨를 으쓱입니다) 후발 부대들 쫓아오라고 이런 식으로 흔적을 남겨놓거든. 녀석들, 눈밭에 코 박고 뒤져 나자빠진 줄 알았는데.
나뭇가지의 간격을 보면... 서쪽으로 조금 더 걸으면 되겠네. (눈밭을 확인하며 중얼거립니다. 아닌 척해도, 조금은 들뜬 목소리입니다)
 
리디안 K. 엔데:(러셀의 말에 쓴웃음을 삼킵니다. 보기 흔한 모습은 아닙니다. 동료로 인해 웃음을 지을 줄도 아는 사람이었나. 허나 곧 표정이 굳습니다. 잊으면 안 됩니다. 상기합니다. 이런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망친다는 것을. 데클란의 이런 순간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잘 됐군요. (마음과는 다른 말을 뱉으며, 스스로가 거짓말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를 따라 걷습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뭐, 여기서 뒈졌어도 그 녀석들의 수명이 다한 거였겠지만. 존X 질기기도 하네. (나뭇가지를 파삭, 밟으며 신호를 따라 걷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걷다 보면,
 
높은 절벽이 드러납니다.
 
길이랄 것이 없는 막다른 곳이네요.
 
러셀 데클란 켄트:... ...장난해?! (금세 울컥한 듯 소리지릅니다)
 
더 이상 꺾인 나뭇가지는 보이지 않네요.
 
절벽을 살펴보면... ...
 
일정한 간격으로 찍힌, 눈이 떨어져 나간 흔적이 이씃ㅂ니다.
 
리디안 K. 엔데:... (러셀을 힐끗 바라봅니다) 다들, 최강의 인류 시라 그런지 막힘없이 올라갔나 봅니다.
이 정도는 당신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절벽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먹먹하던 머리가 잠시 맑아집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하. (순간적으로 분노에 찬 나머지, 아주 당연한 길을 놓치고야 만 듯합니다. 민망함 따위는 없이, 절벽에 시선을 둡니다)
당연하지. 야, 미개한 민간인, 이쪽으로 와. (리디안의 어깨를 끌어당기곤, 품에서 익숙하게 긴 벨트를 꺼내 리디안을 꽁꽁 묶습니다)
널 묶어서, 매달고 올라갈 거야. (아주 당연하다는 듯 계획을 말해줍니다)
 
리디안 K. 엔데:... 꽤 무식한 방법이군요. 실패하면 제 허리가 반 토막 나는. (여전히 주의력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뭐 어때? (벨트를 둘러 자신의 등에 리디안을 단단하게 묶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거북이의 등딱지 같은 모양새입니다)
 
이 시절의 러셀은 최강의 인류일지는 몰라도, 최강의 크리처는 아닙니다.
 
괜찮을까요?
 
벨트를 완전히 장착하면, 두 사람은 무척 가깝게 밀착합니다.
 
최강의 인류이자, 최강의 크리처였던 당신에겐 낯선 자세입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리디안을 가뿐하게 등에 매단 채로, 절벽에 오직 팔 힘만으로 매달립니다) 그럼, 간다...!
 
리디안 K. 엔데:(낯설다기보단.. 민망하군)
 
러셀 데클란 켄트:(...뭐가 닿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도 잠시. 큰 고민 없이 절벽을 오릅니다. 크랙에 손을 걸고, 훌쩍 뛰어올라 기어올라갑니다)
 
리디안 K. 엔데:(이건.. 성추행을 당하는 기분이군..)
 
큰 움직임 탓에, 뒤에 매달린 리디안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점점 지면이 멀어집니다.
 
예전에는 이보다 높은 곳에서도,
 
러셀을 믿고 훌쩍 뛰어내릴 수 있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약간의 민망함과 함께 대롱대롱 매달려 가면,
 
리디안 K. 엔데:
기준치: 60/30/12
굴림: 3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덜컹,
 
러셀이 붙들고 있던 크랙이 갈라지며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집니다.
 
다행히도 재빨리 다른 크랙을 붙든 탓에 사고는 면할 수 있었습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하지만 그 덕에,
 
하지만 그 덕에,
 
당신을 단단히 지탱하고 있던 벨트가...
 
조금 느슨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휘청, 몸이 조금씩 아래로 기울던 찰나.
 
러셀 데클란 켄트:...야, 민간인! (미끄러지던 리디안의 허리를 한 손으로 붙잡고 단단히 지탱합니다. 다른 손은 꽤나 위태롭게 크랙에 걸쳐져 있습니다) 제대로 붙잡아...!
 
리디안 K. 엔데:... (흘끗 절벽 아래를 바라봅니다. 아득한 높이. 이대로 떨어져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런 죽음은 자신에게는 사치입니다)
...미안합니다. (러셀을 단단히 붙들어 매달립니다. 매달리는 것 외에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 ...큭, (리디안의 몸을 끌어당기며, 간신히 절벽을 오릅니다. 조금씩 찬 숨이 턱까지 차오릅니다)
 
...
 
칼날 같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헤집고,
 
눈 앞이 아득해질 찰나.
 
드디어 정상입니다.
 
평평한 땅에 몸을 올린 러셀은,
 
연결된 벨트를 풀어주지도 않고 드러눕습니다.
 
인간 샌드위치가 된 채로 호흡을 가다듬으면, 자연히.
 
당신의 시야에는 하늘이 들어옵니다.
 
회색 하늘, 흰색 눈송이.
 
4년 전이고, 후이고 조금도 다르지 않은 풍경.
 
그때 보았던 하늘이, 정말로 이랬던가요.
 
조금쯤 그리운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씩 웃으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러셀의 얼굴도.
 
리디안 K. 엔데:(무겁습니다만..)
 
러셀 데클란 켄트:내가 너 살렸다, 인마. 빨리 고마워해 봐. (리디안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칩니다)
 
리디안 K. 엔데:.... (하, 하고 짧은 숨을 내뱉습니다. 옅은 미소를 띤 얼굴입니다) 아까는, 살리는 것이 기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러셀 데클란 켄트:당연히 고마워하는 것도 기본 아니냐? (두꺼운 눈썹이 서서히 좁혀듭니다) ...아니. 너한테 그딴 말 들어도 그닥 즐겁지 않을 것 같네. 됐어. (연결된 버클을 끊어내고, 주섬주섬 리디안의 위에서 몸을 일으킵니다)
(장갑을 다시 고쳐 끼며 옷에 묻은 눈을 털어내다, 리디안을 봅니다) 재깍 일어나, 아직 더 가야 하니까.
 
리디안 K. 엔데:(고맙다고 할 자격이나 있을까. 덤덤하게 몸을 일으킵니다) ...거의 다 왔군요.
 
...
 
절벽 위도 눈투성이인 건 여전합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목이 빠질 정도로 켜켜이 쌓인 눈은 차고, 단단합니다.
 
나뭇가지는 여전히 한 방향으로 꺾여 있습니다.
 
두 사람이 떨어져서 그 간격을 따라 걸으면,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붑니다.
 
건조한 눈 냄새가 납니다.
 
술렁거리는 공기는 꼭 짐승의 울음소리 같이.
 
.
 
이내 거센 눈보라가 밀려오고.
 
눈 앞이 온통 하얗게 물듭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도, 온통 순백 일색이라 원근감이 사라집니다.
 
흰 세상에 오점처럼 남은 것은 오직 두 사람뿐.
 
주위를 두르고 서 있던 나무들이 갑자기 창살처럼 당신의 주위를 둘러쌌다가,
 
손을 뻗으면 또 저 멀리 사라져 허공만 움켜쥡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한여름의 아지랑이처럼.
 
...
 
눈을 깜박이면,
 
러셀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까부터 점차 멀어지더니...
 
완전히 사라진 걸까요.
 
당신을 놓치고 홀로 나아가고 있거나, 헤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눈보라를 가르며 나아가고, 나아가도.
 
보이는 이가 없습니다.
 
이 설원에 다시 혼자 버려진 겁니다.
 
과연, 러셀 없이.
 
당신이 무사히 L시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요.
 
리디안 K. 엔데: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1
(데클란없이.. 도착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다시, 그를 찾기 위해 나아갑니다)
(이런 적막 속에서 그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것은 꽤나 큰 고역이기에) ....
 
대자연의 고요한 백색은 이토록 깨끗하고 순수합니다.
 
귀를 기울여봐도 바람 소리만 먹먹하게 귓가를 메웁니다.
 
완벽한 조난, 이라고.
 
당신이 현실을 직시한 순간,
 
러셀 데클란 켄트:...어딜 넋 놓고 다녀, 멍청한 자식이...!
 
윽박지르는 목소리와 동시에,
 
그저 하얀 세상 속에서, 그는 당신의 손을 억세게 쥐고 끌어당깁니다.
 
언제, 어느 때고 투덜거리면서도 당신의 곁에 섰던 사람.
 
폭주와 죽음 후 깨어날 때마다 자리를 지키던 파트너.
 
당신이 그의 소생을 지켜보듯,
 
그 또한 당신의 소생을 지켜보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몇 번이고 다시 만났던 그 얼굴입니다.
 
...
 
비록 4년 전이라 조금 앳되긴 하지만요.
 
러셀 데클란 켄트:(리디안을 끌어당겨 제 곁에 가져다 놓습니다) 화이트아웃이야. 안개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
또 어디 이상한 데로 튀지 말고. 잘 붙잡고 있어. (리디안의 손을 쥔 채로, 감각에 의존해 주변 나무를 더듬거리며 나아갑니다)
 
리디안 K. 엔데:(아, 익숙한 목소리. 비록 윽박이라고 해도 그 목소리가 자신을 이끕니다. 미세하게 떨리고 있던 것이 잦아듭니다)
...어디, 갔던 겁니까. 나를 두고. (제 파트너, 라고 부르기에도 아까운 이. 러셀의 뒤통수를 바라보다 맞잡은 손을 내려봅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네가 혼자서 뒤뚱뒤뚱 사라진 거잖아. ...내가 뭔 미아 찾으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짜증을 팍 드러내며 자신의 것보다 조금 큰 손을 꽉 눌러 잡습니다)
목숨 보전하기 쉽게, 얌전히 있어 봐. (꿍얼대며 커다란 나무 근처로 이동합니다)
 
새하얀 시야를 앞에 두고, 유일하게 새까만 나무.
 
빛이 들지 않아 거무죽죽한 뿌리 근처에 등을 기대고 앉으면,
 
영하의 날씨에 새삼스레 체온이 뚝뚝 떨어집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 ... (아직 화이트아웃이 끝나지도 않았으니 어쩔 수 없지만, 미묘한 감각에 맞잡은 손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립니다) ...또 얼어 죽을 위기는 사양인데.
 
리디안 K. 엔데:(자신보다 작은 손에는 전투의 흔적이 역력합니다.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러셀의 말을 따라 얌전히 있습니다) ...괜찮습니까?
 
러셀 데클란 켄트:당연히 괜찮지. 난 최강의 인류니까. (바로 대답해놓은 주제에 곧 조금씩 어깨를 떨다, 하는 수 없이 꼼지락대며 리디안의 옆에 붙어옵니다) ...넌 안 춥냐? 좀 붙어 봐.
 
리디안 K. 엔데:...추운 것 같습니다. (작게 중얼거리며 러셀의 곁으로 붙습니다. 실례합니다, 하고 말한 뒤 그의 어깨를 안아 체온을 나눕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 ... (리디안에게 안긴 채로 하얀 설원을 뚱하게 노려봅니다. 몇 시간 전에 처음 본 민간인 놈이랑 이렇게까지 붙어 있어야 한다니... 뭐, 조금은 따뜻하긴 하지만. 애초에 그의 첫인상이 상의를 탈의한 채로 제게 붙어 있던 모습이기도 합니다. 쓸데없는 생각을 이어가다, 곧 침묵을 깨뜨립니다) ...근데 너, 이름은 뭐야? 못 들었는데.
 
리디안 K. 엔데:...엔데. 리디안 엔데입니다. (크리처가 되기 전, 러셀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준 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대꾸합니다. 어쩐지 감회가 새롭습니다. 온통 시린 흰색뿐인 이 광경에, 발버둥이라도 치듯 눈에 띄는 검은 것은 등을 기댄 나무뿐이 아닙니다. 코끝이 붉어진 러셀을 빤히 바라봅니다) ...당신은 뭐라고 부르면 됩니까.
 
러셀 데클란 켄트:계속 민간인이라고 부르면 헷갈릴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스쳐 지나갈 녀석들 중 하나고, 곧 잊어버리겠지만. 별 뜻 없이 대꾸합니다) 귀찮으니 리디안으로 기억해둘게.
...애초에, 날 모르는 인류가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너, 모르는 척한 거 아냐? (괜히 신경질을 내곤) ...러셀 데클란 켄트. 앞으로 데클란 님이라고 해라.
 
리디안 K. 엔데:...그러죠. 데클란. (작게 그 이름을 되뇝니다. 평생을 뒤쫓게 될 그 이름을..)
 
러셀 데클란 켄트:...야, '님'이 빠졌는데? (아플 정도로 리디안의 손을 세게 움켜쥡니다)
 
...
 
시간이 흐르고, 흰 안개는 점차 걷혀갑니다.
 
화이트아웃이 끝난 후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나무 사이를 지나 저 반대편을 내려다보면,
 
저 멀리 도시가 보입니다.
 
당신이 나고 자랐던 L시.
 
동료들을 찾으려다, 크리처에게 쫓겨.
 
이만큼이나 멀리 떨어졌던 거네요.
 
새삼스레 그 거리가 실감이 납니다.
 
나뭇가지를 꺾은 흔적은 더 보이지 않습니다.
 
목적지가 이토록 선명하기 때문이겠죠.
 
러셀 데클란 켄트:(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흔적을 바라보며) L시 17번 게이트 근처에 작전 본부를 세우기로 했어. 가자.
 
다행히도 절벽을 다시 내려갈 필요는 없습니다.
 
완만한 비탈길이 나타났거든요.
 
두 사람이 부지런히 걸으면 곧 L시 외곽에 도착합니다.
 
당신이 동료들과 함께 높이 쌓았던 바리케이드는 무너지고.
 
뼈대를 드러낸 건물의 잔해 사이로는 크리처가 돌아다닙니다.
 
러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일지도 모르겠네요.
 
탄환이 모자랄 수도 있고, 민간인인 당신을 데리고 무리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
 
외곽에서 17번 게이트로 향하는 길은 세 갈래로 나뉩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리디안, 너 여기 출신이지. 어디가 제일 안전할 것 같냐? (세 갈래로 나뉜 길을 바라보다 묻습니다)
 
리디안 K. 엔데:... (러셀의 뒤를 부지런히 따르다 잠시 숨을 고릅니다) 제 생각에는..
2
...학교를 가로질러 가는 게 좋겠습니다. 은폐할 곳도 많고.
 
러셀 데클란 켄트:그래? 그럼 그러지. 민간인의 판단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꼭 한 마디를 덧붙이며, 학교를 가로지르는 길로 향합니다)
 
큰 길가를 따라 반파된 도시 안으로 이동하면,
 
리디안 K. 엔데:
기준치: 60/30/12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
 
학교의 건물이 막 시야에 드러날 무렵.
 
두 사람의 앞에 13마리의 크리처가 나타납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방해되니까 물러서! (리디안의 팔을 끌어 제 등 뒤로 물립니다)
 
리디안 K. 엔데:...데클란, 조심하십쇼. (러셀의 뒤로 거리를 두고 피합니다. 젠장, 도움을 줄 수 없다니. 그의 실력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지만, 늘 그의 곁에서 전투를 반복했던 것이 익숙한 터라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무기도 없는 민간인 상대로는 당연한 조치겠죠.
 
늘 옆에서 싸웠던 당신에게는 어색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4년 전에는 그랬습니다.
 
...
 
 
러셀 데클란 켄트:(리디안이 제대로 숨었나 확인한 뒤, 무기를 들어 금속형 크리처의 표면을 겨눠 조준합니다)
대 크리처 살상탄
기준치: 75/37/15
굴림: 7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8
 
캉,
 
요란한 효과음과 함께 딱딱하게 마무리된 표면이 움푹 패입니다.
 
몇 번 탄환을 쏘아낸 뒤, 가까이 오는 크리처는 야구공처럼 저 멀리 쳐내버립니다.
 
총성이 터지는 동안 얼마나 천지가 시끄럽고 시야는 흔들리는지.
 
속이 다 울렁거릴 지경입니다.
 
이때의 몸이란, 이토록 약했던가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있을 무렵,
 
리디안 K. 엔데: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총성으로 얼얼한 귀를 매만집니다. 이명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에 손끝이 떨림을 느낍니다. 이상합니다, 수없이 겪어 익숙해진 무기인데. 몸이 돌아왔다고 해서 전부 잊었다는 것이)
(더 이상 짐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 감각을 곤두세웁니다)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63
판정결과: 실패
 
목덜미가 어쩐지 따뜻합니다.
 
이상합니다.
 
이런 날씨에 그럴 리가 없는데, ...
 
툭.
 
끈적끈적한 것이 어깨에 닿아 흘러내리고,
 
곧 악취가 치솟습니다.
 
기이한 감각에 당신이 돌아서면,
 
지척에 다가온 생체형 크리처가 보입니다.
 
입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구멍을 커다랗게 벌린 구체는.
 
자아를 잃고 허기에 몸부림칩니다.
 
당신과 크리처의 거리는 약 3cm.
 
무기도 없는 당신이 뭘 할 수 있겠어요.
 
지금 러셀을 불러봤자,
 
당신의 머리가 산성액에 뭉개지는 게 더 빠를 겁니다.
 
리디안 K. 엔데: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당신의 육체는 이전과 다르지만,
 
머릿속의 지식만은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자장가를 부르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리디안 K. 엔데:(러셀의 목소리로 들었던 자장가를 기억합니다. 위기의 상황에 머리가 빠르게 회전합니다. 변변찮은 무기라도 있었더라면, 생체형 크리처 하나쯤은 제 손에서 처리할 수 있었을 테지만..)
(주문을 사용합니다)
2
 
...
 
주문을 외우는 당신조차 알지 못하는 음율, 가사, 그리고 소리.
 
오직 괴물을 위한 자장가를 부르노라면,
 
고요한 목소리는 거대한 총성과 죽어가는 것의 울음에 파묻혀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그칩니다.
 
그러나.
 
쿵.
 
주문을 들은 생체형 크리처는 잠자코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중력을 거스르고 부유하던,
 
외계와 이 별의 끔찍한 혼합물은 아스팔트 도로에 누워 잠을 청합니다.
 
산성액이 검은 땅 위에 그어진 흰 선을 뭉개고, 지우며 흘러나옵니다.
 
신발 끝을 태우고 싶지 않다면 한 발 물러서는 게 좋겠어요.
 
리디안 K. 엔데:(빠르게 무거운 몸을 움직여 산성액을 피합니다)
 
죽지는 않았으나, 한동안 잠들어 일어나지 않을 존재입니다.
 
당신이 산성액을 피하던 찰나,
 
금속형 크리처와의 전투를 마무리한 러셀이 당신에게 급히 다가옵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괜찮냐? (파편에 긁힌 뺨을 대충 문지르다, 리디안의 옆에서 녹아내린 생체형 크리처에 흠칫합니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맨손으로 서 있는 리디안과, 크리처를 번갈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목소리를 흘립니다)
 
리디안 K. 엔데:네.. 어쩌다 보니. (무덤덤한 얼굴로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냅니다. 시선을 피하며 앞으로 다가섭니다) 글쎄요. 별것 아닙니다. 별종이라 스스로 죽어버렸나 보네요.
 
러셀 데클란 켄트:...그래? 뭐, 그럼 다행이지만.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리디안을 흘겨보다, 곧 손을 붙잡아 들어올려 리디안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핍니다) 사지만 멀쩡하게 잘 붙어 있으면 된 거지.
 
리디안 K. 엔데:(무력하게 붙들려 관찰당하니 눈이 가라앉습니다. 역으로 그의 몸을 당겨 확인합니다) ...당신은 괜찮습니까.
(손을 들어 러셀의 턱을 쥐고, 뺨에 난 생채기를 보고는) ...다쳤군요. 걱정을 해야 할 건 제 쪽 같습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네가 날 걱정해서 뭐 해? (순간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가, 곧 어이없어합니다) 말했잖아, 최강의 인류라고. 네 목숨 간수나 잘 해.
 
리디안 K. 엔데:최강의 인류라도, 고통은 느끼지 않습니까. (적어도 자신이 겪었을 적에는 그랬습니다)
기준치: 60/30/12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러셀 데클란 켄트:...딱히. 아무튼, 네가 신경 쓸 건 아냐. (꿍얼거리며 제 턱을 쥔 리디안의 팔을 떼어냅니다)
언제 또 크리처 무리들이 몰려들지 모르니까, 서둘러서 본부로 복귀하자고. (리디안의 손목을 그대로 쥐고 척척 앞서나갑니다)
 
.
 
...
 
⋆⍋ ︻╦╤─ ⍋⋆
 
...
 
폐허를 건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다 보면.
 
저 멀리 AOC 작전 본부가 보입니다.
 
몇 개의 텐트와, 바쁘게 오가며 무기의 상태를 확인하는 사람들은.
 
모두 AOC 엠블럼을 달고 있습니다.
 
러셀은 그들을 발견하고 당신에게 말합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다 왔어. 이제 넌 안전해.
 
안전지대의 최전방을 수호하는 인류의 영웅.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강의 인류.
 
그렇게 믿는 러셀의 눈동자는, 의심 한 점 없이 붉게 번뜩입니다.
 
AOC 요원: 살아 있었네, 데클란.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난 네가 살아 돌아온다에 걸었거든. (가까이 다가와, 러셀의 어깨를 툭툭 칩니다)
 
AOC 요원 2: 하... ...또 잃었네. (대놓고 장난스레 한숨을 내쉽니다)
 
몇몇 요원들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 반가운 얼굴로 다가옵니다.
 
당신이 아는 얼굴도, 모르는 얼굴도 섞여 있습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시끄러워. 너 아직 남은 거 있지? 그거나 내놔. (짜증 가득한 얼굴로, 요원에게 손을 내밉니다)
 
AOC 요원: 그래, 너 덕분에 땄으니까. 하나쯤은 줄까? (주머니에서 던힐 담배곽을 꺼내, 한 개비 내밉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고작 하나? (퉁명스레 대꾸하지만, 내민 담배를 뺏어들곤 입에 뭅니다) 불도 줘.
 
러셀을 둘러싼 채 잡담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당신은 오롯한 외부인입니다.
 
한참 시끄럽게 떠들던 사람들이 진정하면,
 
그제야 누군가 당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습니다.
 
AOC 요원 2: 뭐야, 생존자가 남아있었어?
 
러셀 데클란 켄트:(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곤, 연기를 내뱉으며 대꾸합니다) 어. ...오는 길에 내가 구해준 녀석이지.
 
리디안 K. 엔데:(순서가 반대라는 것은 굳이 지적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지금은 딱 이 정도의 거리감이 맞습니다. 서운하다거나, 질투를 느끼는 것은 과분하니. 그저 덤덤한 눈을 할 뿐입니다)
(자신에게 말을 건 AOC 요원을 바라봅니다) ...네. 지나가던 민간인입니다. 켄트씨에게 은혜를 입었죠.
때마침 그가 지나가서 다행입니다. 당신이 도착했다면, 생존자는 전멸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냉소합니다)
 
AOC 요원: 그래? 어떡하지... 쓸 만한 차량은 전부 O시로 복귀했는데. (곤란한 얼굴을 합니다)
 
AOC 요원 2: 지금 남은 인원은 전투에 투입될 소수 정예뿐이라, 일단 여기서 대기해야 할 것 같지. (뺨을 긁적입니다)
 
당신을 배제하고 몇 마디를 나누던 사람들은, 곧 대화를 마친 듯 흩어집니다.
 
그 이야기에 끼어들었던 러셀이 곧 당신에게 향합니다.
 
리디안 K. 엔데:(별 다른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곧 지루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봅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본부 경비로 소수 인원이 남아 있을 테니까, 넌 여기에서 기다려. (가까운 텐트를 가리킵니다) 전투가 끝나면 O시로 가자.
 
리디안 K. 엔데:...당신은요? (시선만을 돌려 러셀을 바라봅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당연히 크리처를 조지러 가야지. (당연하다는 듯 대꾸합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난 프로거든.
 
리디안 K. 엔데:...네. (다시 무감각한 눈을 합니다) 당신을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걱정이 되는 것은 저쪽의 반푼이들이죠.
 
러셀 데클란 켄트:야, 네가 뭔데 정예 요원들한테 반푼이니 뭐니 하냐? (팔짱을 낀 채, 역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웃긴 녀석이라고 여깁니다)
아무튼, 난 이제 간다. 얌전히 있어. (끝까지 타들어간 담배 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짓이겨 밟습니다)
 
리디안 K. 엔데:(4년 뒤의 자신이, 저 치들을 합한 것보다 강해진다는 것을 눈앞의 맹랑한 이는 알지 못할 겁니다. 그래봐야 당신의 발끝을 따라가는 것이 고작이겠지만. 팔짱을 끼며 마주 봅니다)
...예. 다녀오십쇼. (몸을 조심하라는 말을 하려다가, 불쑥. 러셀의 손목을 잡습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 뭔데? (등을 돌려 떠나려다, 손목을 붙든 리디안에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립니다)
 
리디안 K. 엔데:..데클란, 조심하십쇼. (별 도움이 되지 못할 이야기라는 것을 알지만, 지우지 못한 미련이 입으로 튀어나옵니다)
..때로 크리처보다 사람이 무서울 때가 있더군요. (인상을 옅게 찡그리며 손목을 놓아줍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뭔 X소리인지는 몰라도, (멀뚱하게 리디안을 바라보다, 눈을 깜박입니다) ...들어가서 잠이나 자. 깰 즈음이면 다 끝나 있을 테니까. (풀려난 손목을 몇 번 매만지곤 다시금 등을 돌려 걷습니다)
 
.
 
...
 
⋆⍋ ︻╦╤─ ⍋⋆
 
...
 
탄창을 채우고, 무기와 군복의 상태를 점검한 AOC 요원들은 하나, 둘 헬기에 탑승합니다.
 
투두두두, 요란한 소리를 내며 프로펠러가 돌아갑니다.
 
귀를 때리는 굉음이지만 익숙해서 안정감이 들 지경이네요.
 
.
 
마지막으로 헬기에 타던 러셀은 당신에게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안심하라는 듯이 씨익 웃는 미소는 꽤나 활기가 넘칩니다.
 
눈보라가 약해져서 천만다행이네요.
 
인류의 희망을 태운 헬기는,
 
금세 하늘 위로 비상해선 저 멀리 온점보다 작은 구멍이 됩니다.
 
헬기가 큰바람을 몰고 사라지면,
 
AOC 작전 본부에는 당신을 비롯해 3명 남짓의 정찰 담당만 남았습니다.
 
임시로 세운 본부는 여러 개의 텐트가 듬성듬성 배치된 형태입니다.
 
가장 안쪽의 텐트는 리더의 것인지, AOC 마크가 커다랗게 찍혀 있습니다.
 
끄트머리에 헬기와 자동차가 몇 대 주차되어 있네요.
 
리디안 K. 엔데:... (러셀이 사라지니 왁자한 소음과 함께 활기도 사라진 기분입니다. 타인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것은 나쁜 버릇인 줄을 압니다만, 4년이 지나더라도 쉬이 적응되지 않습니다)
(목덜미를 매만지며 자동차로 다가갑니다)
 
주차된 헬기와 차량에 다가가면,
 
당신에게도 익숙한 모델입니다.
 
헬기와 자동차 운전쯤이야 AOC 훈련 튜토리얼 항목인걸요.
 
그리운 기분이 듭니다.
 
모두 시동이 걸린 상태로, 유사시에 언제든 출발할 수 있어 보입니다.
 
리디안 K. 엔데:(내부에는 아무것도 없는지 흘끗 살피빈다)
 
자동차의 좌석 위에는 지도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L시의 지도처럼 보이네요.
 
외곽에 AOC 작전 본부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광장, 병원, 백화점에 각각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1차 전투 예상 지역일까요.
 
리디안 K. 엔데:(자동차의 문을 열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근력
기준치: 80/40/16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힘을 주지 않아도, 복잡한 구조의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계폐됩니다.
 
리디안 K. 엔데:(쓸데없이 힘이 들어갔습니다. 내부의 지도를 꺼내 품에 넣습니다)
(그 곁의 헬기로 다가가봅니다)
 
헬기에도 여전히 시동이 걸린 채입니다.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어 보입니다.
 
리디안 K. 엔데:(운전을 해봐야 떠날 곳도 없으니, 순순히 정찰담당에게로 향합니다)
 
최전선에서 배제된 정찰 담당 요원들입니다.
 
대부분 신입으로, 당신을 크게 경계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야 당신은 민간인이니까요.
 
당신이 지나치게 당황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작전본부를 돌아다니거나 대화를 거는 것 정도는 묵인할 겁니다.
 
리디안 K. 엔데: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귀를 기울이면, 그들이 나누는 잡담이 들려옵니다.
 
정찰 요원 A: (작게 하품을 하고는 옆에 서 있는 요원에게 말을 겁니다) 그런데, L시 탈환... 가능한 거 맞아?
 
정찰 요원 B: '최종 목표'는 그렇지. ...최종 목표라는 건 역시, 어렵다에 가깝지 않겠어?
변종 생체형 크리처 때문에 난리니까. 일단 남은 사람들은 전부 O시로 이동했고, 1차 전투가 마무리되면 상황을 봐서 결정한다고 들었어.
 
정찰 요원 A: 그렇겠지. ...정말, 한 치 앞도 모르겠다니까.
 
정찰 요원 B: 이번에 나타난 변종은 금속형 크리처와는 달리 특수한 능력이 있어서 대응이 까다롭다나 봐. 아직 어떤 특성인지도 확인 안 됐다 그러고... 참 나. 다 죽어나가야 정신 차리려나.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습니다)
 
투덜거리는 목소리들은 이내 끝을 맺습니다.
 
리디안 K. 엔데:... (다가가서 말을 걸려다 곧 포기합니다. 시선을 돌려 텐트로 다가갑니다)
 
당신은 AOC 마크가 크게 새겨진, 가장 안쪽의 텐트로 향합니다.
 
그 앞을 정찰 담당 한 명이 지키고 서 있습니다.
 
리더의 공간이자 회의실로 사용되는 곳이기 때문에 외부인인 당신의 접근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리디안 K. 엔데:(데클란이었다면 차를 훔쳐 텐트를 들이 받았겠지. 실없는 생각을 하며 정찰 담당에게로 다가갑니다)
(만약 새로 나타났다는 변종 금속형 크리처가, 이 이상한 상황을 겪기 전 보았던 그것과 같은 종류라면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안녕하십니까. 수고가 많으십니다.
 
정찰 요원 C: ... (민간인인 리디안을 흘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리디안 K. 엔데:L 시의 내부 상황에 대해서.. 생존자로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만.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꾸며내 봅니다)
말재주
기준치: 45/22/9
굴림: 1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러셀 데클란 켄트:죄송합니다. 내부 상황은 민간인에게는 공개할 수 없는 정보입니다. (딱딱한 말투로 고개를 내젓습니다)
 
정찰 요원 C: 죄송합니다. 내부 상황은 민간인에게는 공개할 수 없는 정보입니다. (딱딱한 말투로 고개를 내젓습니다)
 
리디안 K. 엔데:(데클란과 닮은 요원이로군..)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꾸벅하고는 벗어납니다. 성가신 녀석들. 속으로 중얼거리다 숨어들어갈 만한 곳을 관찰합니다)
은밀행동
기준치: 50/25/10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은 정찰 요원의 시야를 피해,
 
텐트의 뒤쪽 틈새로 파고듭니다.
 
텐트의 안쪽에 들어가면, 별다를 건 없습니다.
 
회의 시에 사용한 건지 화이트보드 하나와, 몇 장의 보고서, 휘갈긴 메모가 남아있습니다.
 
리디안 K. 엔데:(혹여나 들킬까 숨을 죽이며 보고서를 살펴봅니다)
 
생체형 크리처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4년 전 정보이니, 당신이 아는 것보다 낙후되었습니다.
 
생체형 크리처의 발생 원인이 인간의 시체를 섭취한 것으로 예상된다거나,
 
A시 근처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거나... ...
 
아무것도 모르고 이런 정보들을 곧이곧대로 믿던 때가 있었죠.
 
이젠 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리디안 K. 엔데:
자료조사
기준치: 75/37/15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보고서들을 몇 장 넘겨보면,
 
눈에 띄는 문장이 있습니다.
 
리디안 K. 엔데:... (상급 크리처를 떠올립니다. 러셀과 A 시를 탈환하러 갔을 때 맞닥뜨렸던 녀석도 제 얼굴을 복사했었지)
(메모를 확인합니다)
 
휘갈긴 메모엔 몇 개의 단어가 보이지만,
 
필기체인 데다 휘갈긴 탓에 제대로 읽기 어렵습니다.
 
리디안 K. 엔데:
언어(모국어)
기준치: 65/32/13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러셀의 대체 인력, B, J, K ... ...
 
아무래도 러셀의 실종으로 인한 부재를 채우기 위한,
 
후보들의 이름이었던 모양입니다.
 
...
 
당신이 텐트 내부를 얼추 돌아봤을 때.
 
텐트 안에 놓인 무전기에서부터 거친 기계음이 흘러나옵니다.
 
잡음 섞인 소리가 텐트 내부에 울려 퍼집니다.
 
아니.
 
그런 알량한 정부의 방송이 아니라,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메이데이,
 
그런 구조신호가 존재한단 사실조차.
 
어쩌면 발음조차 생소합니다.
 
그야, 당연하죠.
 
당신과 러셀은 언제나 인류 최강이었는걸요.
 
.
 
바짝 마른 코끝에서 혈향이 느껴지고,
 
전투의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본능이 치밉니다.
 
안온한 본부 한복판에 안주했다간,
 
러셀이 다양한 사인 중 하나로 죽어버리고만 말 것 같습니다.
 
당신의 심장이 거세게 고동칩니다.
 
이상합니다.
 
4년 후를 살다 온, 당신이 그 증거일 텐데도.
 
.
 
텐트에서 빠져나오면, 사방에 눈이 쌓여 질리도록 하얗습니다.
 
이곳은 도시 외곽,
 
아득하게 휘몰아치는 흰 눈보라 너머로.
 
저 멀리 도시의 노을이 지고 있습니다.
 
드문드문 땅거미가 잠식한 풍경은 어쩐지 위태롭고 불안합니다.
 
...
 
비명과 함께 무전이 끊깁니다.
 
고요하던 AOC 작전 본부도 금세 들썩입니다.
 
리디안 K. 엔데:... (기이합니다. 감이 이상하게도 더럽습니다. 이런 일이, 4년전에도 있었던가?)
(미간을 찌푸리며 주머니 속에서 바늘이 없는 시계를 바라보다, 주먹을 쥐고 헬기로 향합니다)
 
혼란한 틈을 타, 당신은 헬기에 올라탑니다.
 
당신을 발견하고, 고함을 지르는 AOC 요원들이 저 멀리 보입니다.
 
이미 질리게 운전해 본 것인지라, 당신은 능숙하게 조종대를 붙듭니다.
 
...
 
단 한 사람을 태운 헬기는 상공으로 날아오릅니다.
 
창 아래로 펼쳐진 설원은 눈이 시리도록 하얗습니다.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닙니다.
 
러셀의 안위가, 이토록 불안하긴 처음입니다.
 
당신이 떠난 지 오래된 곳이지만, 지도의 구조는 이미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능숙하게 광장으로 헬기를 몹니다.
 
광장 근처 건물, 백화점의 옥상에 헬기 주차장이 보입니다.
 
거대한 프로펠러가 멈추는 진동이 온 몸을 울립니다.
 
옥상에 내려앉은 헬기의 문이 열리고,
 
따가운 겨울바람이 휘몰아칩니다.
 
복잡한 머릿속이 한결 식는 것 같습니다.
 
저 아래 점처럼 보이는 사람 중, ... ...
 
리디안 K. 엔데: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똑같은 AOC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광장 주위에 무수히 쓰러져 있어,
 
도저히 찾을 수가 없습니다.
 
맞은편에 선 생체형 크리처는 이리저리 형체를 바꾸며,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합니다.
 
그 순간,
 
당신은 고개를 든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칩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 리디안? (크게 뜬 눈으로, 분명 이 곳에 있으면 안 되는 이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리디안 K. 엔데:(그 모습에 머리가 쿵, 쿵 하고 울립니다. 도움이 하등 되지 않는 그저 민간인 신분. 그러나 눈앞에서 동료가 죽어나가는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데클란. (크리처가 아닌 자신과, 러셀은 되살아나지 않지만, 적어도 제 목숨으로 나머지는 살릴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곧장 뛰쳐내려갑니다)
 
러셀의 생존을 확인해도 불안함은 가시지 않습니다.
 
달리고, 달리고, 달립니다.
 
옥상을 벗어나 백화점 건물 내부로 향합니다.
 
작동하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내버려둔 채,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미친듯이 뛰어내려갑니다.
 
8F, 7F, 6F... ...
 
불안한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오고,
 
다음 순간.
 
투둑,
 
떨어져 내리는 콘크리트의 잔해와 함께.
 
가까스로 잔해를 피해 달려보지만,
 
무너지는 속도에 비해선 역부족입니다.
 
곧, 가까스로 천장을 지탱하던 기둥이 무너지고.
 
당신의 시야를 덮쳐옵니다.
 
...
 
.
 
몸이 제 말을 듣지 않습니다.
 
무너진 바닥 탓에 몇 미터쯤 추락한 것도 같습니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당신은 부서진 건물 안에 완전히 매몰되었습니다.
 
리디안 K. 엔데:헉.. 헉.. (주변을 살펴도 어둠뿐입니다. 거칠게 숨을 내쉬며 잔해를 딛고 서려 하지만, 연약한 몸은 비명을 지를 뿐입니다)
(더 이상 차분하게 사고가 되지 않습니다. 오직, 러셀을 찾고 있습니다. 그가, 그가 자신을 버려두고 홀로 죽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남겨진 자신은 이제 무얼 보고 살아야 하지)
(평생을 매몰된 침묵 속에서, 홀로 발버둥 치다 죽어갈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식은땀이 흐릅니다)
...데클란, ...데클란. 어디 있습니까.
 
...
 
중얼거림에도, 들려오는 대답은 없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지옥 같은 침묵 속에 침몰합니다.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자신은 이 작은 암흑같은 공간에 홀로 남겨져버린 거라고.
 
영원히 고독함을 짓씹다 죽어갈 거라고.
 
그렇게, 당신이 붙들고 있던 희망의 끈을 놓으려던 찰나.
 
.
 
아,
 
붕괴가 다시 시작되려나 봅니다.
 
이번에야말로 이 잔해는 완전히 제 몸을 짓누르고,
 
이 삶에도 마침표가 찍힐지도 모릅니다.
 
리디안 K. 엔데:(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속죄를)
 
무언가 다릅니다.
 
어둠 뿐이던 당신의 시야에,
 
미약하지만 분명 한 줄기의 빛이 들어찹니다.
 
잔해 사이로 파고드는 빛이 아릿하게 당신의 시야를 좀먹고.
 
곧,
 
억센 힘이 당신의 팔을 틀어쥐고 잡아당깁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 ...야, 이번에도... 내가 너 살린 거다.
 
힘주어, 끊어지듯 울리는 목소리는.
 
당신의 귓가에 맺혔다가 흐려집니다.
 
배려 없이 끌어당기는 힘 탓에, 날카로운 잔해에 긁혀 온 몸이 상처 투성이입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아파도 좀 참아 봐, 일단... ...살고 봐야 할 거 아냐?!
 
그렇게 윽박지르는 그의 목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당신의 몸이 무너진 벽 사이에서 완전히 빠져나옵니다.
 
먼지 투성이인 러셀을 마주한 시야에 흐르는 건, 붉은 피.
 
그에 의해 빛을 되찾고 나서야, 제 한 쪽 눈이 다쳤다는 걸 자각합니다.
 
리디안 K. 엔데:(이대로 죽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긁힌 상처와 시야를 가리는 붉은 피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온전한 한쪽 눈 역시 저를 응시하는 붉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이럴 시간 없어, 언제 저 크리처 자식이 이쪽을 눈치챌 지 모르니까... 아니, 넌 여긴 대체 왜 온 거야?! (리디안을 끌어내자마자, 그의 어깨를 꽉 붙들고 이리저리 흔듭니다)
 
리디안 K. 엔데:(그제야 제 얼굴이 엉망인 것을 깨닫습니다. 눈물, 땀, 후회, 절망, 추악한 감정이 뒤섞여 최악입니다. 그러나 차마 거둘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풀린 동공으로 러셀을 바라봅니다) ...당, 당신이. 죽을까 걱정, 이,
 
러셀 데클란 켄트:역시, 넌 보기 드문 또라이 자식이야... (헛웃음을 흘리곤, 크게 베인 리디안의 눈가의 상처를 봅니다) 그거 지혈하지 마. 누르면 더 상태 구려질 테니까.
... ... 비켜! (잠시 멈칫한다 싶더니, 리디안을 옆으로 거칠게 밀칩니다)
 
다음 순간,
 
거대한 크리처의 팔이 리디안이 서 있던 자리를 정확하게 부수고, 무너뜨립니다.
 
불길한 피 냄새와, 지독한 악취.
 
당신이 '그것'과 눈이 마주치면... ...
 
'그어그어'하고 우는,
 
클리셰 SF 세계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크리처의 눈동자.
 
짐승처럼 가느다란 동공은 어느 생명체를 합성한 흔적일까요.
 
그 교활하고 자아를 잃은 결과물이,
 
초승달처럼 가늘게 휘어집니다.
 
문득,
 
머릿속에 어떤 문장이 스칩니다.
 
...
 
눈을 깜박이면,
 
리디안 K. 엔데:...살려, 줘...!
 
탄환의 장전을 위해 잠시 시선을 떼어냈던 러셀이 고개를 들면,
 
무척 놀란 얼굴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구한,
 
자신이 구한 당신입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리디안, ...! (찰나의 순간,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의 모습에 최악의 판단을 가해. 방아쇠를 당기길 망설입니다)
 
그는 한순간 머뭇거리고,
 
퍽.
 
...
 
리디안의 형태를 가지고 있던 크리처의 얼굴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길쭉한 팔을 휘두릅니다.
 
그 타격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맞은 러셀의 배가 꿰뚫립니다.
 
아니, 배가 아니라. 어쩐지 조금 더,
 
위인 것 같은... ...
 
무너진 잔해 위로, 흘러 넘치는 피가 흥건히 적십니다.
 
크리처가 쓰레기를 버리듯 러셀을 내팽개치면,
 
텅 빈 동공을 가진 몸이 가차없이 버려집니다.
 
상처 부위에선 끊임없이, 끊임없이, 끊임없이.
 
붉디 붉은 피가 샘솟습니다.
 
리디안 K. 엔데:...데, ...클란, (불규칙적으로 숨을 내쉬며, 놀란 눈을 깜빡이지도 못합니다)
 
리디안 K. 엔데: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 그래요.
 
러셀은 낙오되어 설원을 헤매다 뒤늦게 작전 본부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 회의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겠죠.
 
그러나 생각은 언제나 한 박자, 늦습니다.
 
몇 발자국도 채 되지 않는 거리.
 
당신이 러셀에게 다가가면,
 
최강의 인류지만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 이가.
 
색색, 밭은 숨을 몰아쉽니다.
 
가물거리는 시선,
 
붉게 물든 방탄조끼,
 
멈추지 않는 피는 바닥마저 그의 눈동자처럼 새빨갛게 적십니다.
 
그는 최강의 크리처가 아닙니다.
 
이대로 죽으면 되살아나지 못할 겁니다.
 
전투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는 흐물흐물 반쯤 녹은 입으로,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우물거립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 ... (리디안을 바라보며 입술을 간신히 달싹이면, 흘러넘친 피가 입가를 타고 흐릅니다.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쿨럭, 피를 토해내며 신음합니다)
 
리디안 K. 엔데:...리셋을.. 돕겠습니다. 데클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몸을 품에 안습니다) 이깟 상처는, 당신, 당신에게는... 별거 아닌...
.... (긴 침묵이 이어집니다) 거짓말...
 
러셀 데클란 켄트:..., ... ...리, 디안... (간신히 팔을 들어 리디안의 등을 끌어안고는, 나지막하게 속삭입니다. 끊어지는 단어들이 이어지는 침묵을 미약하게 깨뜨립니다)
... 당, 장 ... ...도망쳐.
 
당신이 얼떨떨해진 사이,
 
당신의 등을 끌어안은 팔은 힘이 다해.
 
툭, 하고 지면에 떨어집니다.
 
너덜너덜한 머리는 축 늘어지고,
 
당신의 품에서 고개를 떨굽니다.
 
기나긴 적막만이 이어지던 그 때,
 
최강의 인류인 러셀의 핵이 박살 난 순간.
 
...
 
.
 
긴 이명이 들리고,
 
심장이 쿵쾅거리더니.
 
"도망쳐."
 
단말마 같은 당부와 함께,
 
눈앞이 핑 돌며... ...
 
.
 
.
 
...
 
폐부에서부터 강한 압력이 치솟고,
 
이내 거센 기침 소리와 함께.
 
어떤 덩어리가 목구멍을 열고 왈칵 쏟아집니다.
 
그와 동시에,
 
당신은 눈을 뜹니다.
 
믿기지 않게도, 울음이 터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닥에 떨어진 건 눈물이 아니라... ...
 
금속 재질로 은색을 띠고 있으며,
 
내부에 든 것은 새빨갛게 빛나는 점액질과... ...
 
복잡다단한 태엽들.
 
크리처의 핵.
 
당신이 이야기의 시작에서 파괴했던 바로 그것.
 
...
 
러셀은 L시 탈환 작전에 투입됐습니다.
 
상급으로 각성한 생체형 크리쳐 α와 고전 중,
 
그럴싸하게 민간인을 흉내 낸 접근 방식에 넘어가.
 
늑골이 박살나고 심장의 2/3를 잃는 치명타를 입습니다.
 
4년 후를 살다 온 당신이 그 증거입니다.
 
최강의 크리처가 되지 못한,
 
단 한 번의 삶과 죽음만을 부여받은 그가.
 
어떻게 이 일을 겪고도 살아있던 걸까요.
 
우연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클리셰 SF 세계관에 단순한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러셀이 C.V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실험체여야 했던 이유,
 
당신이 그의 파트너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이날의 당신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러셀이 크리처의 핵을 주입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 ...
 
...
 
당신의 손에는 크리처의 핵이 놓여 있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산산이 조각난 크리처의 살점과 부품을 몽땅 끌어모을 정도로 강력한 재생력을 지닌 핵.
 
사지가 멀쩡한 러셀의 신체를 수복하고,
 
되살리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겁니다.
 
자, 봐요.
 
죽어가고 있으나, 아직 삶을 연명하고 있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텅 빈 구멍은 딱 적당한 자리를 내놓고 있습니다.
 
핵을 꽂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러셀은 살아날 겁니다.
 
죽지 않는 신체를 얻어,
 
저편의 괴물을 물리치고 동료들을 구해내겠죠.
 
모두 입 모아 그를 칭송하길,
 
...
 
그의 소생은 C.V 실험의 완성을 이루는 열쇠가 되는 장면.
 
그야말로, 클라이맥스입니다.
 
멸망하는 세계에서 당신은ㅡ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창조할, 유일한 연출가입니다.
 
주연은 오직 러셀과 당신, 두 사람뿐.
 
리디안 K. 엔데:.... (무엇인가가 툭하고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어쩌면 자신이 미쳐버린 걸지도요. 아니, 미친 것은 이미 한참 전일 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현재의 4년 전인지, 앞서 겪었던 4년 전 인지는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젠, 정말로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제 손으로 그를 생지옥으로 밀어 넣는 죄악감은, 그를 눈밭에서 구해내 간접적으로 죄를 짓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손을 내려봅니다. 분명 붉은 피로 적셔져 있지만, 새까맣게 보입니다. 이것은 과업이자 생입니다.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가 없는 거대한 클리셰. 자신의 생을 구제할 이는 이제 어디에도 없습니다)
(텅 빈 눈이 러셀을 향합니다. 미안하다는 말도 감히 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선택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당신은 내게, 의지할 다른 것을 찾으라고 했지만...
... (핵을 쥔 손이 러셀의 가슴께로 향합니다. 수없이 본 구멍이지만 유독 공허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착각이겠죠) 나는 어떤 것도 의지할 수 없습니다.
(러셀의 가슴에 핵을 꼭 맞춰 끼워 넣습니다. 질척한 감각이 생경하게 느껴집니다. 그를 껴안자 이마에 입술이 스칩니다. 눈물 같은 것이 뺨을 타고 흘렀으나,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서 일어나 나를 죽여주십쇼.
 
...
 
.
 
텅 빈 자리에 핵을 쑤셔 넣으면,
 
심장의 잔해를 가르고.
 
이 세계를 점령한 괴물의 중심이 뿌리를 내립니다.
 
익숙한 시계의 바늘 소리가 들리고.
 
카운트다운처럼 순식간에 영점을 향해 달려가던 시간은,
 
잠깐.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섞이지 않았나요.
 
러셀 데클란 켄트:... ...너,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야?
 
눈을 뜬 러셀이, 당신을 멀뚱히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당신은 하나의 확신을 얻습니다.
 
러셀은,
 
인류의 멸망을 저지할ㅡ
 
기계로 구성된 심장이 째깍째깍 돌아가기 시작하면,
 
러셀의 몸은 급속도로 회복합니다.
 
터졌던 내장이 복구되고,
 
찢어졌던 근육이 달라붙고,
 
구멍이 난 피부는 아물기 시작합니다.
 
핵은 흔적조차 사라져,
 
온전히 그의 심장이 되고.
 
눈에 보이는 증거라곤 무엇 하나 남지 않았는데도... ...
 
...
 
.
 
긴 이명이 들리고,
 
5,
 
심장이 쿵쾅거리더니.
 
4,
 
"...바보같은 녀석."
 
3,
 
마지막 목소리가 멀어지고,
 
2,
 
눈앞이 핑 돌며... ...
 
.
 
1.
 
.
 
...
 
???: ...차려.
정신 차려 이 자식아, ...엔데!!!
 
눈을 뜨면,
 
다시 싸라기눈이 흩날리는 음울한 검은 숲입니다.
 
이파리를 떨구고 빈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 위로,
 
흰 눈이 소복하게 쌓였습니다.
 
설원이라고 불러도 모자람 없는 넓은 공터.
 
당신은 새하얗게 얼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러셀은 짜증 가득한 얼굴로 당신을 살핍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뇌주름은 소생이 덜 된 거냐? 뭔 말을 해도 들어처먹질 않네...! (리디안의 멱살을 붙잡고 마구잡이로 흔들다, 질렸다는 듯 툭 놓아버립니다)
 
끝이라기엔 허무하게도,
 
당신의 주위엔 38개의 부품이 흩어져 있습니다.
 
무엇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이 박살낸 새로운 크리처의 핵이니까요.
 
러셀 데클란 켄트:네가 박살낸 순간 가속하더니 폭발했다고, 저게. 크리처면 다냐? 멍청하게 서 있다가 휘말리기나 하고. (구시렁대며 바닥에 흩어진 잔해를 발로 찹니다)
그래놓고선 소생도 존X 느려 빠졌지. 너 그대로 뒈지는 줄 알았다, 새꺄. ...듣고 있으면 대답 좀 하지?!
 
리디안 K. 엔데:(멍하니 잔해를 응시하다, 러셀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를 껴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전부 망가진 이후입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악, 이, 이 새끼가... 다짜고짜 왜 이래?! (단숨에 껴안기자, 놀란 탓에 버둥거립니다. 언뜻 추위에 언 귓가가 붉게 물든 것도 같습니다)
 
리디안 K. 엔데:(목덜미를 껴안아 빈틈이라고는 없이 그와 몸을 밀착한 후 러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댑니다. 신체능력이 뛰어나게 돌아온 후에야 그의 고동소리를 듣습니다. 얼핏,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린 것도 같습니다)
(그저 눈을 감고, 가만히 그 소리를 듣다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립니다) ..내가 죽었습니까?
 
러셀 데클란 켄트:좀, 떨어지고... 말해!! (꽉 껴안긴 채 리디안의 팔을 밀어내지만, 역시 최강의 크리처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입니다. 씩씩대다 이내 저항을 포기하고는)
...이렇게 느려 터질 줄 알았으면, 너 버리고 밥이나 먹으러 갈 걸 그랬다. (작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립니다)
 
리디안 K. 엔데:(그 말에도 꿈쩍 않고 마음껏 러셀의 허리를 끌어안다가, 시간이 지나자 얼떨떨하게 놓아줍니다) ...당신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만.
 
러셀 데클란 켄트:네 목숨은 이미 내 건데, 멋대로 혼자 나자빠져 죽어버리면 곤란하거든. (미간을 구기면서도, 뾰족한 이를 드러내며 입꼬리를 올립니다)
...이젠 존X 한계야. (리디안이 놓아주면, 제 옷을 툭툭 털어내 정돈하고는) 가자고, 파트너. 내가 이 빌어먹을 눈밭 한가운데서 정말 아사하기 전에...!
 
리디안 K. 엔데:...그랬죠. 내 목숨은 당신 것이니. 날 죽이기 전까지는 죽지 마십쇼. 데클란. (낮게 웃고는, 총을 들고 나아갑니다)
 
러셀 데클란 켄트:내가 쉽게 죽어줄 것 같냐? 허튼 꿈 꾸지 마. (반박하면서도 제법 안도한 듯, 마주 웃으며 걸어나갑니다)
 
...
 
안전지대의 최전방을 수호하는 인류의 영웅,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강의 인류.
 
검은 가지에서 흰 눈이 우르르 떨어집니다.
 
커튼보다 두껍고,
 
오래도록 거둬지지 않을 종류의 막이 내립니다.
 
가까운 곳에서,
 
오래된 라디오의 잡음 섞인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
 
.
 
새로운 크리처를 물리치기 위해선, 핵을 파괴하는 것에 그쳐선 안 됩니다.
 
그 핵이 가속할 수 있도록 같은 알파의 접촉이 필요합니다.
 
오직 당신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아니, AOC에 희생당한 실험체들만이 할 수 있는... ...
 
물론,
 
당신의 파트너는 끝까지 함께할 겁니다.
 
당신의 등 뒤를 지키고,
 
때아닌 자장가를 부르면서까지도.
 
크리처는 진화하고, 위험은 끊임없습니다.
 
인류는 결속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용하고, 해치고, 분열합니다.
 
상황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괜찮습니다.
 
함께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겠죠.
 
.
 
우리는 존재 자체로 세계를 위한 최강의 클리셰니까.
 
세계는 아마, 우리를 이렇게 부를 겁니다.
 
.
 
・ 。゚☆: .☽ . :☆゚.
 
시간은 정방향으로 흐르고 사건은 순리대로 이루어집니다.
 
당신의 선택으로 러셀은 핵을 이식받아 부활,
 
4년 전의 사건에서 몇 번이고 죽고 되살아나기를 반복하며.
 
첫 생체형 크리처, α를 물리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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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은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4년 후의 당신이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간 것처럼, 당신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4년 전의 당신이 돌아왔으니까요.
 
언젠가는, 리디안. 당신이 기억해주길 기다렸을지도 모르지만,
 
동료들의 증언과 CCTV의 확보,
 
신체검사의 수치 이상으로 그는 첫 번째 C.V 프로젝트의 대상자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모든 기억은 말소되었으니... ...
 
다 지난 일이 되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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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처는 진화하고,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은 절망적인 미래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두 사람은 제 운명을 향해 망설임 없이 나아갑니다.